“방송 작가라고요? 무슨 드라마 써요?”
내가 방송 작가라고 하면 꼭 따라붙는 말이다. 열이면 아홉, 다 드라마 얘기였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처음부터 못 박는다. “드라마 말고, 시사와 교양 쪽 방송 구성 작가예요.” 그러면 또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 “그래도 드라마 한 번 써봐요.” 세상에, 드라마 쓰기가 어디 쉬운가. 그건 농구 선수한테 “요즘은 축구가 대세라던데, 축구 선수 해보세요.” 하는 거랑 별반 다를 게 없다.
더 실랑이를 하기 싫어진 나는 결국 “드라마 작가 되는 건 로또 당첨 확률이랑 비슷해요.” 하고 넘기곤 했다. 그런데 사실 속마음은 달랐다. 방송 구성 작가가 된 순간부터 내 안에 드라마 작가의 꿈이 조용히 자리 잡았다.
시사·교양 작가의 일은 기본적으로 남의 이야기를 대신 써주는 거다. 기획하고, 출연자를 섭외하고, 촬영 구성안을 쓰고, 피디가 다녀온 촬영본을 붙들고 편집 구성안을 쓴다. 지난한 파인(작가와 피디가 편집본 세부를 최종적으로 맞추는 과정)과 함께 내레이션 대본을 쓰고, 자막까지 넘긴다.(예능 쪽은 주로 피디가 자막을 뽑지만, 시사와 교양 쪽은 작가들이 대부분 자막을 담당한다.) 아무리 밤낮으로 내 영혼을 갈아 일해도 ‘이건 내 작품이다’라는 만족감은 없었다.
죽어라 자료 조사와 섭외만 하던 막내 작가를 지나, 3년 차에 드디어 방송에 나가는 짧은 VCR 대본을 직접 쓰기 시작하는 꼭지 작가 입봉. 그런데 선배들이 말하던 ‘3, 5, 7년 차 슬럼프’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건 그냥 안 오면 좋으련만, 꼭 온다.) 밤낮없이 자료 찾고 섭외하던 막내 시절보다 여유가 생기자, 내 이야기, 내 드라마를 쓰고 싶었다. 내친김에 드라마 작가 교육원 기초반에 들어갔다.
당시 나는 잘 나가는 연차였다. 메인 작가 원고료에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원고료로 잡무와 함께 VCR 대본까지 쓰는 꼭지 작가의 수요는 늘 많았다. 게다가 낡은 상가 건물 투룸에서 룸메이트랑 자취 중이었다. 습작은커녕 밥벌이가 먼저였다. 수업만 듣고, 정작 이렇다 할 드라마 한 편을 쓰지 못했다.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나는 메인 작가가 되었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런데 육아와 일을 병행하다 보니 이름난 프로그램보다는 작은 프로그램을 맡는 일이 많았다. 못내 아쉬웠다. ‘나를 드러내고 싶다’라는 갈증이 차올랐다.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로 남는 내 모습이 못마땅했다. 그래서 다시 드라마 작가의 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때 나는 알바를 하면서 드라마 교육원 연수반 과정을 시작했다. 이번엔 스터디도 하고, 습작도 하고, 합평도 했다. 전문반에 합격했을 땐 ‘드디어 꿈이 현실로?’라는 착각까지 했다. 그런데 여기서 길을 잃었다. 공모전 당선을 위한 먹잇감을 찾듯 글을 쓰다 보니 정작 내 이야기는 사라지고, 당선 욕심만 남았다. 결국 중도 포기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방송 구성 작가로 10년 넘게 달려온 사람이었는데, 그저 ‘드라마 작가’라는 타이틀에 잠시 눈이 멀었던 것뿐이라는 걸. 나는 타이거 우즈처럼 달리기도, 골프도 다 잘해 내는 만능형 인간은 아니었다. 그냥 골프채 들고뛰다 넘어지는 타입에 가까웠다. 내 종목은 이미 따로 있었던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 작가의 꿈을 접자 오히려 익숙하게 해 왔던 구성 작가의 일이 재미있어졌다. 들어오는 일을 가리지 않고 하다 보니 수입도 늘었고, 바쁜 만큼 실력을 인정받는 듯해 오히려 힘이 났다. 게다가 일 자체도 달라졌다. 예전엔 섭외하고, 구성안 짜고, 편집본에 맞춰 밤새 대본을 썼다면, 이제는 내가 먼저 대본을 쓰고, 그 대본에 맞춰 촬영, 녹화, 애니메이션 제작이 진행됐다. 주도권이 내 손에 있었다. 내 글 위에 영상이 얹히니 만족도도 훨씬 커졌다.
결국 나는 드라마 작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덕분에 내 일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는 알게 됐다. 드라마 시나리오는 못 써도, 시사와 교양 쪽 시나리오는 쓸 수 있는 작가. 누군가는 “그게 그거잖아”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겐 다르다. 꿈에 닿지 못해도 괜찮았다. 꿈 근처에 있어도 충분했다. 나는 지금 드라마 작가 대신, 꿈 근처에서 드라마를 쓸 줄 아는 방송 구성 작가로 살아간다. 비록 무대는 다르지만, 이야기를 쓰는 마음만큼은 여전히 같다. 어쩌면 나는 이미, 내 자리에서 나만의 드라마를 써 내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