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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 굽는 타자기 Dec 09. 2021

23년 전, 그 친구는 날 '바보'라고 불렀다

오래간만에 동네 친한 언니를 만났다. 그 언니의 5살 아들이 요즘 유치원 같은 반 여자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한다고 했다. 선생님이 보이지 않을 때 꼬집기도 하고, 밀기도 하고, 친구들과 놀 때 껴주지도 않는다고 했다. 왜 그러는지 이유라도 알면 좋을 텐데 답답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23년 전, 내 기억 속에 있는 친구 생각에 부글부글 속이 끓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여고시절 1, 2, 3학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아이. 베프가 아니라 그리 친하지 않고 늘 날 바보라고 불렀던 친구였다. 20년 전에 일이나 내 기억이 다소 왜곡될 수도 있지만 이유도 없이 그 친구는 날 바보라고 했다. 당시에도 기분이 좋지 않아 몇 번 그러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통하지 않았다. 결국에 철저하게 그 친구를 무시했다.


언니의 아들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불현듯 그 친구가 왜 날 바보라고 불렀을까... 몹시 궁금해졌다. 그리고 왜 그때, '바보'라고 부르지 말라고만 했지, 왜 그러냐고 물어보지 못했는지 후회스럽다. 이유라도 물어봤으면 속 시원할 것 같은데 말이다.


한편으로는 이유를 물어본들 그 친구가 솔직하게 말해줬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에 와서 이유를 추측해보건대, 처음에는 그냥 관심을 끌려고 그런 건지, 다른 친구들 무리와 잘 놀고 있는 날 시샘한 건지, 나중에는 자기를 무시하는 날 원망했던 건지...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날 바보라고 하면서 자기가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그랬다는 악의적인 의도만 없었으면 좋겠다.


23년 전, 좀 친했던 친구들 얼굴도 잊히 마당에 그 친구가 쇼트커트에, 안경을 끼고, 목소리가 중저음이었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선명하게 떠오른다. 부정적인 감정이 오래 남듯이 부정적인 사람도 오래 기억되나 보다.


그동안 내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내 뒤통수를 치는 사람도 있고, 날 오해해서 나쁜 소문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상처받았고, 억울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내가 덜 상처받기 위해서 부단히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면서 더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때로는 가면을 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내게 애먼 상처를 줬던 사람들은 내 행동과 상관없이 그들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 친구가 날 바보라고 불렀던 건 내 잘못이 아니라 그 친구 잘못이었다. 기억나진 않지만 어쩌면 어린 시절 그 친구가 바보라고 부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그 친구 바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부단히 긴장하고 애쓰지 않았을까 싶다. 실은 아직도 더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있음을 인정한다.


23년 전 좋지 않았던 기억을 소환해서 뭘 하나 싶었는데, 이렇게 브런치에 솔직한 마음을 쓰길 잘했다 싶다. 이렇게 풀어놓는다고 상처받은 내 마음이 갑자기 회복되는 건 아니지만 어른이 된 내가 어린 나를 공감하고 위로해준 것만으로 족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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