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미리 습관과 헤어질 결심

by 방송과 글 사이

아이를 낳기 전에는 미리 하는 법이 없었다. 학창 시절, 시험 볼 때는 벼락치기가 통했다. 암기 과목의 경우 전날 바짝 외운 것들이 줄줄 기억났으니까.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그분’이 오신다. 나는 초능력자는 아니지만 ‘그분’이 오면 마치 초능력적인 힘이 샘솟았다.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기분을 즐길 정도였다.


아이를 낳고는 ‘그분’의 능력만 믿고 있기엔 너무 많은 변수가 생겼다. 스스로 통제하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가 돌 지날 무렵부터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감기는 내내 달고 살고, 집에서 애를 돌보면서 일할 때가 많아졌다. 미리 일을 해두지 않으면 일에 차질이 생겼다.

처음엔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일을 미리 하려고 했다. 마감 시각보다 2~3시간 빨리하고 나니, 남는 시간에 다시 확인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 여유 덕분에 실수가 많이 줄었다. 마감 자체가 누군가와 언제까지 넘기겠다는 약속이지 않겠는가. 나는 그 약속도 지키게 되었고, 업무 능력도 확실히 높아졌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종종 “아기가 있는데 그때까지 가능하시겠어요?” 묻곤 한다. 나를 배려해 주려는 의도인지, 내가 아이를 돌봐야 하니까 우려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주로 후자 쪽이 많았던 것 같다.) 나는 그때마다 사무적인 미소를 지으며 “아기 아니에요. 벌써 다 커서 자기 앞가림 다 해요.”라고 응수한다.

일할 때만큼은 다른 사람에게 워킹맘의 빈틈을 혹시라도 보이게 될까, 노심초사했다. 아이를 무기 삼아 변명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까. 설령 아이가 아파서 내가 병간호해야 할 상황에서도 밤새워서라도 했다. 당시에 ‘마감을 지키냐, 못 지키냐’는 내게 생존의 문제였다. 행여 잘리게 될까 봐 나는 몹시 두려웠다.

아이가 벌써 13살이다. 그건 내가 두려움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버텼던 시간 역시 13년이 흘렀단 얘기다. 내공이 이쯤 쌓였으니 내가 마감 시각 몇 시간 전에 일을 다 끝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지금은 내 일정에 맞춰 통제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소 하루나 이틀, 최대 일주일 전에 일을 마친다. 꼭 100% 끝맺지 않아도 괜찮다. 미진한 부분은 마감 시각 전에 확인하거나 수정하면 되니까.

일을 미리미리 해왔던 것처럼 다른 일도 미리미리 할 수 있을 거라고 자만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지금 하는 100일 글쓰기는 매일 밤 11시가 마감 시각인데 하루 앞당겨서 쓰면 되겠다고 쉽게 여겼다. 내 예측과 달리, 매일 미리 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13년 전의 나로 돌아가 다시 초치기 자세로, 임박해서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못마땅했다. 앞당겨서 하지 못하는 나를 채찍질했다. 그럴수록 머릿속이 하얗게 되기 일쑤였다. 내가 만들어놓은 부담감 속에서 옴짝달싹 못 했다.

간과했던 부분이 있었다. 100일 글쓰기에만 매진할 수 없는 현실이다. 육아와 집안일도 있고, 일도 해야 하고, 요가와 피아노도 배우고, 영어와 재테크 공부도 하고, 내 방에 쌓아 둔 책도 읽어야 한다. 너무 바쁘다. 어느 것도 소홀해지기 싫다. 지난 두 달 동안은 아이 방학이라는 변수도 있지 않았던가.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사사로운 내 사정을 전혀 봐주지 않는 야박한 사람이었다. ‘항상 이래야 해, 저래야 해’ 강박 속에서 살았던 나는 미리 하지 않는 것은 실패한 것과 다름없었다. 오랜 시간 몸에 밴 좋은 습관이 와르르 무너지는 거니까. ‘앞당겨서 하냐, 못하냐’는 내게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으니까.

100일 글쓰기가 50일이 넘어갈 무렵 나는 미리미리 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내가 나를 괴롭히는 걸 그만뒀다. 해결책은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육아 13년 차, 냥이 집사 3년 차가 아니었던가. 아이도, 고양이가 어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뭔가를 시킬 수 있었던가. 아이에게도 자주 했던 잔소리가 떠올랐다.

“꾸마야, 숙제 미리 해도 되고, 미리 하지 않아도 돼!”

사실 내 속내는 다른 것보다 숙제를 먼저 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결국 숙제를 끝낼 아이에게 나의 미리미리 습관을 강요하는 건 내 욕심에 불과했다. 차라리 내가 앞당겨서 하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결심했다. 성실하게, 충분히 보여줬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아이에게 보여주기식 그럴싸해 보이는 엄마 되기를 포기할 때가 왔다.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서 해줬던 말을 이제 나에게 해줘야겠다.

“미리미리 하려고 너무 애쓰지 마. 미리 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