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그리고 안도감
큰아이의 입시면접은 12월 초였다. 줌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면접이라 주변이 조용하기만 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는 작은 소리 하나까지도 제거하고 싶어 했다. 선배들이 면접용 스튜디오를 대여해서 진행한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알아보았다. 정말 그런 공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는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고, 무엇보다 오픈 시간이 9시부터였다. 아이의 면접은 8시 30분까지 면접링크로 입실을 해야 했다. 동네 스터디카페에도 화상회의가 가능한 공간이 있었지만, 역시 시간이 맞지 않았다. 고민 끝에 아이는 집 거실에서 면접을 보기로 했다. 대신 엄마와 동생은 집 밖에 나가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른 아침, 아이는 셔츠를 단정히 입고 재킷까지 갖추어 입었다. 평소 웬만한 일에는 긴장하지 않는 캐릭터인데, 얼굴이 제법 상기되어 있었다. 입실 시간까지 여유가 좀 있었지만, 아이는 서둘러 우리를 집 밖으로 내보냈다. 작은아이와 함께 상가의 카페에 앉았다. 책을 읽으려고 가져갔지만, 영 마음이 들떠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작은 아이는 잠이 덜 깬 채 내 곁에 기대어 졸았고, 나는 괜스레 마음이 추워 커피만 홀짝였다. 한 시간 남짓 지났을까. 면접을 마쳤다는 전화가 왔다. 어떻게 할까 묻자 카페로 오겠다고 했다. 잠시 후 카페에 들어선 아이의 얼굴은 아침에 보았던 것보다 좀 더 빨개져 있었다. 아마도 태어나 가장 긴장된 순간을 보냈겠지. 하지만 그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 표정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아이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교수님 두 분이 들어오셨고, 예정된 시간에 맞추어 들어오셔서는 면접 시작이란 말 대신 가벼운 대화를 하시며 긴장을 풀어주셨다고 했다. 수험번호가 2번이라 1번 면접이 끝난 뒤 시작될 줄 알았는데, 별다른 말씀 없이 자연스럽게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고 했다. 이미 서류와 포트폴리오를 확인하고 진행하는 것이기에, 질문은 대부분 작품에 관한 것이었다. 교수님들은 아이의 작품에 큰 관심을 보이셨고, 덕분에 아이도 점점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
"입학하게 되면, 졸업 작품은 무엇을 할 계획인가?"
아직 학교에 입학도 안 했는데 졸업 작품이라니. 아이는 순간 당황했지만, 숨을 고르고 이렇게 답했다고 했다.
"솔직히 졸업 작품은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저는 OO을 좋아하고, 그것을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같은 작품을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니 그것들을 활용하여 새로운 작품을 구상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럼에도 차분하게 자신의 말을 제대로 해낸 것이 대견했다. 가능성이 보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끝나야 정말 끝나는 것이다. 긴장이 풀린 우리는 함께 밖에서 식사를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곳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근처 단골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고양이를 쓰다듬는 아이를 보는데,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겠구나.'란 생각이 몰려왔다. 한동안은 담기 어려웠던 이 아이의 얼굴. 여전히 눈을 가리지만, 순순히 렌즈에 내어주어 고마웠다. 너의 어린 시절도 내 추억이니 간직하겠다며 반쯤은 억지로라도 계속 찍어왔더니 순순해졌다고나 할까. 아이가 삶의 의미를 잃었을 때,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로 가겠다고 했을 때도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지켜보고, 믿어주는 것. 이제는 정말 날아가겠구나.
다음날, 아트페어에 가서 전시 중인 친구를 만났다. 오랜 친구인 그분은 오랫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작가로 항로를 바꾸신 분이다. 그분의 첫 전시회에서 아이들은 용돈을 털어서 엽서 크기의 작품을 샀었다. 미술 작품을 소장한다는 것이 꼭 거창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사주지 않고 스스로 지불하게 했었다. 그분은 아이가 진로를 바꿀 때 좋은 선생님을 소개해 주었고, 여러 갈림길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기도 했다. 내게도 아이에게도 고마운 은인이다.
근처 백화점에 들러 아이의 첫 구두를 샀다. 드레스코드가 필요한 자리에 갈 예정이 있어서다. 내 동생의 결혼식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낯선 구두를 신은 아이가 몇 걸음 걸어보았다. 어색하고 쑥스러워 보였다. 구두는 쉽게 편해지지 않을 것이다. 몇 번쯤은 발에 생채기가 나 아플 수도 있다. 그래도 아이는 이 구두를 신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한 발짝씩 걸어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