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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Jul 07. 2020

자극적인 드라마,
방송사와 시청자 누구의 문제일까

시대를 거꾸로 걷고 있는 한국 드라마


10년 전, 텔레비전 앞에 앉아 한국 드라마를 시청했던 아이는 해외 드라마를 감상하는 성인으로 자랐다. 성인이 되고 나서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등 여러 나라의 드라마를 접하게 됐지만 한국 드라마를 완전하게 끊은 건 아니다. 쉬는 날이면 소파에 누워 채널을 돌리다 흥미로운 장면이 나오면 그대로 시청한다. 마음에 들면 한국 드라마여도 끝까지 시청하는 편이다.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면 웃기도 한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가족과 소파에 앉아 KBS에서 방영하는 일일 드라마가 시작하길 기다린다.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 드라마를 자주 접하지만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같은 스트리밍 사이트를 열게 되면 한국 드라마는 자연스럽게 밖으로 밀려 난다. 볼 게 없어서 검색한 글에 한국 드라마가 올라와 있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매일 밤, 드라마를 시청해야 꿈나라로 떠날 수 있었던 아이가 한국 드라마를 멀리하게 된 이유는 뭘까?



외국을 선망해서 한국 드라마를 멀리하게 된 건 아니다. 사회적으로 한국보다 좋은 부분이 있다 해도 한국 드라마는 해외 드라마에서 찾을 수 없는 매력이 많다. 물론 매력이 많은 만큼 단점도 많다. 문제점을 설명하려면 간단하게 한국 드라마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과거 미디어엔 고부 갈등, 출생의 비밀, 이뤄질 수 없는 사랑 등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막장 드라마가 유행했다. 막장 드라마는 예상할 수 없는 전개에 나이와 성별 상관없이 사랑을 받았지만, 가부장제가 만연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마음 편히 사회생활을 할 수 없던 여자의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면서 하나의 장르로 발전했다. 2006년 <궁>, 2009년 <꽃보다 남자> 같은 작품이 인기를 얻으면서 후에 제작되는 드라마는 막장 요소가 많음에도 사랑 이야기는 무조건 등장했다. 개연성 없이 사랑에 빠지고 독창적이지 않은 클리셰에 지쳐갈 무렵, 한국 드라마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OTT 서비스를 사용하는 시청자들이 늘자 새로운 드라마가 쏟아졌다. <동백꽃 필 무렵>, <사이코지만 괜찮아>처럼 로맨스 드라마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대기업에 입사한 여자는 출근하는 길에 남자와 부딪힌다. 출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대충 사과하고 사무실로 뛰어간다. 사무실에서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된 여자는 아침에 부딪혔던 남자가 자신의 상사라는 사실에 놀란다. 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여자와 남자는 사랑에 빠진다. 남자의 가족이 여자의 존재를 알게 되고 여자를 찾아간다. 남자의 엄마가 여자에게 남자는 약혼자가 있다며 헤어지라고 하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몇 년 만에 한국으로 찾아온 약혼자가 여자를 찾아가서 괴롭힌다. 여자는 남자의 오해를 받지만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찾아 싸웠고 남자는 여자에게 돌아온다. 반대를 이겨낸 여자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산다. 


위는 로맨스 드라마의 클리셰를 모아서 적은 글이다. 가난한 여자가 부자인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가 인기를 얻자, 비슷한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달라도 여자가 어떠한 계기로 남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변함없다. 결혼이 결말이 된다거나 결혼하는 걸로 이야기가 시작하기도 한다. 전자는 여자가 자립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결혼을 시켜, 여자의 행복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후자는 전자와 달리 부자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할 수 없다는 전제를 깔지만 결말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돈을 위해서 나이 많은 남자랑 결혼하고 가족들에게 꽃뱀 소리를 듣는 작품도 방영 중이니, 이런 클리셰가 누구를 위한 작품인지 모르겠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범죄를 사랑으로 포장하는 데이트 폭력도 자주 등장한다. 남자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있는 것을 목격하고 화가 난다. 분노한 남자는 여자의 손목을 세게 잡고 자리를 빠져나온다. 그리고 여자에게 강제로 입맞춤하려고 한다. 예시처럼 데이트 폭력을 넣어 논란이 일어났던 작품이 많다. <우리 갑순이>, <함부로 애틋하게>, <또 오해영>, <나의 아저씨> 등. 이 작품들은 여자를 배려하지 않은 연출임에도 많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로봇이 아니야>에서는 데이트 폭력을 일삼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로봇으로 제작하고 신체를 만지려고 했던 남자도 등장한다. 미디어에서는 남자의 폭력을 강한 매력으로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폭력을 미화하다 보면 무감각해져 잘못된 범죄를 바로 잡을 수 없다. 드라마에서 여자를 성 상품화, 성적 대상화하는 문제도 심각하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선 여자들이 노출 의상을 입고 남성 손님들에게 애교를 떠는 장면이, <부부의 세계>에서는 남자에게 접근한 명품 가방을 사달라고 요구하면서 유혹하는 여자가 등장한다. 같은 날엔 여자를 목 조르는 장면도 포함되어 있어 논란이 더 커졌다.



여자를 성적 대상화하고 남자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준 웹툰을 실사화한 <편의점 샛별이>는 1화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좋은 요소만 따왔다던 제작진의 주장과 달리, 나이 상관없이 여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장면을 넣었고 성인 웹툰 만화가의 집에는 여자의 나체 그림이 등장한다. 오피스텔 성매매를 웃음 코드로 사용하기도 했다. 여자를 배려하지 않는 작품이 많아지는데도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반대로 여자가 남자를 희롱하는 장면이 나오는 <사이코지만 괜찮아>에는 불같이 화를 낸다. 남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것이 잘한 행동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성별 상관없이 사람을 대상화하는 건 잘못됐지만, 여자가 남자를 희롱하는 것은 안되면서 남자가 여자를 희롱하는 장면은 아무 문제없다는 듯 넘어가는 미디어와 시청자에게 화가 날 뿐이다. 사회적으로 많은 것이 바뀌고 있음에도 한국의 미디어는 아직도 여자를 위한 작품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남자의 판타지를 위해 여자에게 노출 있는 옷을 입히고 강제로 신체 접촉을 하고 차별적인 요소들을 코미디로 풀어 나간다. 혐오적인 시선에 맞서 싸우는 작품도 있지만, 남자를 대변하는 작품도 많다. 이런 현상은 제작하는 방송사의 문제일까. 방송사에게 일거리를 주는 시청자의 문제일까. 2020년, 모두를 위한 미디어를 만들어가기 위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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