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하게 다가오는 인간의 변화
이번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특별전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전시는 굉장히 클래식하는 것이었다.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소장품 65점을 통해 600년의 서양 미술사를 압축해 보여주는 구성은 숫자로만 보면 간결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묵직하였다. 참여 작가만 60명, 그중 25점은 국내 최초 공개로 미술관이 자신 있게 내놓는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가치 있는 진짜 컬렉션이라는 건 분명했다.
요즘 전시들이 테마를 화려하게 포장하거나 연출을 극대화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번 전시는 그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대표 컬렉션을 그대로 가져와, 불필요한 연출 없이 '이것이 서양 미술의 역사다' 하고 보여주는 그 담백한 구성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았다. 복잡한 의도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또한 매우 심플하다.
전시는 총 다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유럽 남부와 북부의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에서 신고전주의,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까지, 20세기의 모더니즘이다. 솔직히 이 흐름은 가장 교과서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정통적이다. 하지만 그 정통성이야말로 이번 전시의 미덕이다.
전시를 끝까지 보고 나니, 예술은 결국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인간은 다른 모습으로 정의되고, 다른 감정과 가치가 부여된다.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가들은 인간을 신의 창조물 중 가장 완전한 존재로 인식했다. 인간을 개별적이고 자연스러운 존재로 이상화하며, 조화로운 비례와 아름다움을 통해 손댈 틈이 없는 완결된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체포', '막달라 마리아의 회심'처럼 인간을 완벽한 존재로 그리면서, 신화를 모티브로 한 종교화가 다수 등장한다.
바로크 시대로 넘어가면 인간은 더 강렬한 감정과 신앙 속에서 흔들리는 존재로 그려진다. 빛과 어둠의 극적 대비는 인간 내면의 격정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하느님의 어린 양' 이었다. 평온하게 누워 있는 어린 양은 인류의 구세주 예수를 상징하지만, 자세히 보면 손발이 묶인 상태로 표현되어 있어 희생과 구원의 이중성을 더욱 강렬하게 드러낸다.
로코코와 신고전주의 시대로 가면 예술은 일상의 무게를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한다. 여흥을 즐기고 향락과 사치에 젖어 있는 인간의 모습부터, 가면을 쓰고 유희에 몰두한 여인들까지 삶의 가벼움과 화려함이 담긴 장면들이 많다. 유럽 상류층 자제들이 견문을 넓히기 위해 떠난 ‘그랜드 투어’의 기념품으로 제작된 '베네치아 산 마르코 분지에서 본 몰로 부두' 같은 작품도 이 시기의 특징적인 예다.
그러나 산업화가 본격화되자 사실주의는 이전 시대의 화려함을 단숨에 걷어낸다. 인간은 더 이상 빛나는 존재가 아니다. 노동에 지치고, 현실에 눌리고, 사회 구조 속에서 버티는 인물로 그려진다. 화가는 인간을 이상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혹은 그보다 더 가혹하게 직시한다.
인상주의에 이르면 인간의 존재감은 또 다른 방식으로 희미해진다. 작가들의 관심은 인간 자체보다 그 인간이 잠시 스며 있는 순간의 공기, 빛, 분위기 같은 감각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풍경의 빛을 탐구한 클로드 모네, 도시의 밤 문화를 솔직하게 포착한 툴루즈 로트렉, 발레리나들의 움직임을 집요하게 관찰한 에드가 드가 등 유명한 거장들의 작품이 등장한다. 이들의 세계에서 인간은 하나의 고정된 주체라기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찰나 속에 스쳐 지나가는 존재로 표현된다.
마지막으로 20세기 모더니즘은 기존의 모든 규범을 해체하며 새로운 시선을 탐구한다.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미니멀리즘 등 다양한 사조는 인간을 분석하고 해체하며, 인간의 내면과 본질을 탐구한다. 그 덕분에 인간은 더 이상 하나의 획일화된 모습으로 정의될 수 없다. 특히 전시의 마지막에 보이는 모딜리아니의 '푸른 눈의 소년'은 길게 늘어진 형태와 공허한 눈을 통해 현실의 소년이라기보다 내면의 영혼을 드러내는 존재로 표현된다. 그 눈을 마주하는 순간, 필자는 다시 한번 필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처럼 각 시대의 해답이 어떻게 등장하고, 충돌하고, 반박하고, 이어지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나면서, 결국 예술의 진화란 화풍이나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전시는 클래식하게 단순한 명화의 나열이 아닌, 당시 사람들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라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의 변화를 서양 미술사의 흐름에 따라 만나볼 수 있었던 전시라고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