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와 평범함, 그 경계에서
우리는 흔히 ‘모차르트’라는 이름만으로 천재성과 자유로운 예술가상을 떠올린다. 하지만 연극 아마데우스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비틀며, 천재와 평범함 사이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무대 위에서 그려낸다. 신동으로 불리며 음악사에 큰 흔적을 남긴 모차르트와, 그의 재능을 바라보며 끝없는 질투와 고뇌를 겪는 살리에리의 이야기를 이번 연극 '아마데우스'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다섯 살에 작곡을 시작하고 여덟 살에 교향곡을 발표하는, 서양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한 명이다. 어린 시절부터 왕실 혹은 궁정에서 연주하며 신동으로 불렸지만 이후 체제에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예술가가 되었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했고, 35살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으나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은 음악사에 큰 흔적을 남겼다.
다만 아마데우스 연극에서 그는 우리가 알던 모차르트와는 다소 다르다. 극에서는 그를 미성숙하고 천진난만한 예술가 또는 광기에 사로잡힌 괴짜로 묘사한다. 따라서 모차르트에 대해 잘 모르는 관객이라면, 이 표현으로 인해 위대한 작곡가에 대한 환상이 흔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의 모차르트는 광기의 천재가 아닌 계산된 천재였다. 그는 악보를 머릿속에서 완성한 뒤 종이에 옮겨 적을만큼 구조적 사고가 뛰어났고,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철저한 음악 교육을 받으며 귀족 사회에서 성장했다. 사회적 예의와 형식에 익숙했고, 다만 인간적으로 자유롭고 유머러스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극 중 모차르트는 실제 인물이라기보다, 예술적 자유와 본능의 상징으로 각색된 존재로 봐야 한다. 살리에리의 시선 속에서 그려진 ‘광기의 예술가’는 현실의 모차르트가 아니라, 그가 감당할 수 없었던 재능의 안도감이 만들어낸 상징적 인물이라 생각하고 연극을 바라보는 게 좋다.
안토니오 살리에리 또한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인 재능을 보여 가족의 후견과 지원으로 오스트리아 빈에 유학을 하며 오랜 노력 끝에 오스트리아 궁정악장으로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오페라, 종교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했다. 오스트리아 황제의 후원을 받아 교육자로서도 활약하여 베토벤, 슈베르트 등 뛰어난 음악가를 길러낸 위대한 교육자이다.
그러나 그 앞에 등장한 모차르트는 방탕하고 천진한 성격을 지녔으나, 그 음악만큼은 완벽했다. 처음엔 모차르트를 경멸하던 살리에리는, 그의 음악을 듣고 신에게 선택받은 천재임을 깨닫는다. 모차르트의 재능을 시기하고, 신에게조차 분노를 품는다. 그는 매일같이 기도하고 노력했지만, 신은 자신이 아닌 모차르트에게만 재능을 주었다는 사실에 절망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음악에 깊이 매료되기 시작한다.
실제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와 직접적인 경쟁관계나 악감정을 가졌다는 증거는 없다. 문학과 연극, 영화는 그를 ‘모차르트를 질투한 2인자’로 각색하였으며 ‘살리에리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만들어지며 모차르트의 그림자로만 만 소비되게 만들었다. 극 속 살리에리는 천재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지만, 실제의 그는 뛰어난 음악적 역량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존경 받는 인물이었다. 사실보다는 극적 효과와 심리적 공감을 위해 살리에리를 비극적 상징으로 재구성한 셈이다.
그리하여 연극 아마데우스는 제목이 모차르트의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사실상 주인공은 살리에리다. 관객들 또한 자연스럽게 모차르트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될 것이라 예상하고 방문하지만, 연극은 살리에리가 늙은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아 등장하며, “내가 모차르트를 죽게 만들었다"라고 고백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의 고백과 함께 무대는 젊은 시절로 전환되고, 이야기는 살리에리의 회상 속에서 펼쳐지며 그를 중심으로 모차르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출연진들이 나오는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일인극을 보는 듯한 몰입감이 드는데 그만큼 살리에리의 역할의 중요성과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살리에리는 자신은 주인공이 아닌 척 행동하지만, 실제로 모든 사건과 이야기는 그의 시선과 내면을 통해 표현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살리에리의 질투와 고뇌, 인간적 고통을 직접 마주하며, 극 전체의 사건과 인물들을 그의 시선으로 새롭게 경험하게 되며 실제로 그가 이 연극의 진정한 주인공임을 깨닫게 된다.
연극 아마데우스는 천재와 평범함 사이의 간극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신에게 헌신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살리에리와 달리, 재능은 방탕하고 자유로운 모차르트에게 주어졌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바라보며 끝없는 질투와 분노를 품고, 자신의 고통을 신에게 고백하는데, 그의 비극은 단순한 질투가 아니라, 신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살리에리에게도 음악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주어졌고 이 능력으로 인해 그는 모차르트의 재능을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었기에, 천재적인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재능을 받지 못하는 자신의 질투와 좌절은 더 깊고 잔혹하게 느껴진다. 이를 통해 자신의 계략으로 모차르트를 극단적으로 몰아세우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또한 연극의 흥미로운 점은 연극에서 실제 궁중 음악과 오페라 장면이 일부 삽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나 교향곡 등이 극의 일부로 활용된 연극을 보고 있으면 필자가 진짜 그 당시 관람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음악은 연극의 몰입을 돕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무척 훌륭하였지만 전반적으로 음악이 어우러지며, 관객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느낄 수 있는 지루할 수 있는 부분을 깨뜨리고, 모차르트의 음악이라는 음악적 공감대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
아마데우스는 단순히 모차르트의 전기적 이야기가 아니라 천재와 평범함, 선택받은 자와 이해할 수 있는 자 사이의 아이러니와 비극을, 살리에리라는 인물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보는 동시에, 살리에리의 내면과 인간적 고뇌를 마주할 수 있는 그 경계를 만나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