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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나 Aug 05. 2024

책방이 취미는 아니고요

나에게 지키는 신의에 대하여

[사장님은 아마 건물주가 아닐까요?]


 오픈한 지 며칠 안되었을 때, 손님께서 감사하게도 블로그에 책방 후기를 남겨 주셨다. 간판이 없어 찾기 힘들었지만 아늑한 공간이 마음에 드셨다는 내용이었다. 손님의 글 곳곳에서 간판도 없는 시골 책방에 대한 걱정이 묻어 있었다.

 글에 달린 댓글 중 사장님이 건물주가 아닌지 추측하는 내용이 있었다. 댓글을 읽고 혼자 피식 웃었다. 작은 시골에 책방을 차리면 갑자기 건물주가 되기도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방의 생계를 걱정하는 어디 이분들 뿐이랴.

 "여기는 뭣 허는 곳이요?"

 "아. 서점이에요."

 "서점? 저 바로 옆에 도서관 생긴 거 모르요? 얼마 전에 새로 크게 생겼는디."

 "알고 있어요."

 "알고 ? 근디 여다 이걸 했는가?"

 "도서관은 책 빌려 보는 곳이고 여기는 책을 사서 보는 곳이거든요."

 "아. 거. 참. 이해가 안 가네. 시골에서 누가 책을 사보겄소?"

  여기까지 묻고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가시는 분들이 절반, 좀 더 묻고 가시는 분들이 절반이다. 다음 질문은 대게 이렇게 시작한다.

 "그래. 결혼은 했소?"

 "네. 결혼했어요."

 "아. 했어. 남편은 뭐허는가?"

 "남편은 저기 공단에서 일해요."

 "그려? 참 다행이구만. 그래그래. 잘해보소."

 여기까지 대답을 들으신 분들은 대부분 안도의 눈빛을 보내신다. 웬 처음 보는(여기 산지 4년째지만) 젊은 아가씨(시골에서 나는 언제나 젊은 아가씨다)가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사실을 확인하셨기 때문 일 것이다. 그러고 나면 커피 한잔 드시고 가시라고 해도 바쁘다며 쿨하게 뒤를 돌아가버리신다.

 이 가게를 향한 염려들을 마주할 땐 대부분 그냥 웃음으로 넘다. 하지만 웃어넘기지 못한 일이 있었던 날이 있었다.

 "저기. 전부터 궁금했는데... 이건 취미로 하시는 일이에요? 이게 본업은 아니시죠?"

 얼굴만 알고 지내던 아이 친구 엄마가 어느 날 자신의 퇴근길에 가게 문만 빼꼼 열고 물어봤다. 그녀의 방문에 반갑게 문간으로 달려가던 나는 가게 중간쯤에 멈추어 섰다. 왠지 마음이 쿡 찔린 느낌이 났다.

 그녀에게 어찌어찌 둘러댔고 그녀는 다시  웃으며 가던 길을 갔던 것 같다. 그 뒤로 그때 상한 마음이 한동안 두고두고 아팠다.

'참 나. 웃기네. 남의 가게를 취미냐고 물어보다니. 너무 무례하구만.'

 처음 며칠은 그녀가 내게 무례했다며 속으로 화를 내었다. 그러다 한 달쯤 지날 무렵부터 고민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왜 그녀의 말이 이렇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릴까?

 왜 그 말이 계속해서 마음에 남는지 찬찬히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시골에서 보기 드문 내 또래의 젊은 사람이라 그랬는지, 질문하는 눈이 너무 천진해서 그랬는지. 쉽사리 답이 마음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쯤 더 흘러갔을 때, 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건 그녀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사실 나, 나 자신 때문이었다. 그녀의 질문에 뭐라 똑 떨어지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저 얼버무리며 대답했던 나 자신에 대한 당황스러움, 그리고 그에서 오는 속상함. 그게 답이었다.    


 개업 4개월 차가 되어서야 인터넷을 설치했다. 2만 원 남짓의 고정지출비와 약정기간이 부담되서 미루던 일이었다. 인터넷을 설치했다는 건, 책방을 길게 보기로 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해볼 만하다는 의미를 가진 일이기도 했다.

 방문 손님이 거의 없는 매장이지만 오시는 분들이 기분 좋게 다녀 가실 수 있게 여기저기 먼지를 털고, 제빙기를 켜고, 커피와 차를 채워 놓는다. 먼지를 털다 보면 진짜 건물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책방이 정말 취미생활이라면 좀 더 가뿐하지 않을싶은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이내 그런 낭만적인 건물주가 가능할까 싶어 고개를 설래설래 휘젓기도 한다.

 건물주는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서점에서 수입을 좀 더 늘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언제나 마음 저변에 찰박찰박하게 깔려있다. 액세서리도 갖다 놔 보고, 엽서 제작도 해 보고, 인스타도 꾸준히 올리고, 스마트스토어 관리도 한다. 좋은 책을 큐레이션 하려는 노력도 당연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가짐을 이곳 구석구석에 디스플레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매일 배우고 있다.  

'잘 되지 않아도 나는 나의 의견을 지지해 줄 수 있는가? 내가 내린 결정에 최선을 다 하는 신의를 나는 내게 보여 줄 수 있는 있는가?"


 개업 6개월 차, 서점이 취미는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내게 매일 묻고 있다.

 '이곳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 나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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