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에 인간은
'나는 아직도 어린애인가… 뜬 구름만 잡고 있나...?'
얼마 전 대학시절 친구들을 만나 우리의 미래 10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혼자 했던 생각이다.
이날 내가 준비해 갔던 말은 '10년 뒤엔 몸, 맘, 정신을 스스로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센터를 하나 열고 싶어.'였다. 하지만 각자의 회사에서 더 높은 직급에 오르게 되고, 책임과 월급이 더 많아질 일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준비해 갔던 말을 제대로 하지 못 했다. 눈치가 보여서라기보다는 내가 품은 바람이 의심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친구들과 헤어진 후, 나의 마음속엔 태풍이 불어왔다. 깊은 바닷속도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갈등의 바람이었다. 인생이 너무 엉망진창인 것만 같은 그런 기분 속에서 스스로 질문했다.
"왜?"
'왜 그렇게 사냐?'라고 묻는 게 아니었다. 그건 '왜 그렇게 흔들리고 있느냐?'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 질문을 곰곰이 되뇌다가, 나는 한 단어 앞에서 멈춰 섰다.
쓸모.
그러니까 나는 내가 과연 쓸모 있는 인간인지 알 수 없어서 그토록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는 영상을 하나 보았다. 한 회사에서 개발한 휴머노이드가 마치 사람과 꼭 같은 모양으로 무대 위를 걷고 있었다. 너무 사람처럼 걷는 휴머노이드를 관객들이 의심하자 곧 한 관계자가 무대로 가위를 들고 나왔다. 서걱서걱. 그녀가 로봇의 겉옷을 자르자 거미줄처럼 얽힌 플라스틱 구조체가 나왔다. 직원은 그 구조체도 가위로 무자비하게 잘라 내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봇의 모든 플라스틱 살(이라 보이는 것)은 잘려 나가고 앙상하지만 단단한 금속으로 만든 로봇의 정강이 뼈(로 보이는 것)가 드러났다. 그 상태로 로봇은 다시 무대 위를 뚜벅뚜벅 걸었다. 아까와 전혀 다르지 않은 완벽한 걸음걸이였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 이제 인간의 쓸모란 무엇이 될까? 더 강한 신체와 더 건강한 마음을 가진(최소한 그렇게 보이는) 휴머노이드의 탄생 앞에서 인간은 이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걸까?'
인간의 육체가 중요했던 산업화 시대를 지나, 인간의 두뇌가 중요한 디지털 시대가 다다랐다. 그러나 어느새 이제 그 시대도 막을 내리고 있다.
충전하는 시간만 빼면 하루 종일 가장 효율적으로 일하는 완벽한 휴머노이드가 등장한 지금, 인간은 이제 육체와 두뇌의 쓸모로 더 이상 우위를 차지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잘려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다리를, 무엇이든 순식간에 정리해 답변하는 명석함을 무슨 수로 가질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는 잘 고장 나고, 너무 자주 실패한다. 휴머노이드는 절대 하지 않을 자책, 무너짐, 방황을 평생 동안 반복하기도 한다. 육체와 정신의 아픔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로도 하루하루를 보내고, 정의할 수 없는 애매한 감정을 품은 채로 평생을 살고, 아무리 생각해도 비효율적인 자리를 결국 떠나지 못하고 머문다.
이런 불완전함은 계산되지도, 최적화되지도 않는가. 하지만 결코 대체되지도 않는다.
어쩌면 인간의 쓸모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에도 거기 머무는 것, 그 의미를 질문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것에 있지 않을까.
며칠 전, 나는 AI에게 나 인생의 사명에 대해 물어보았다. AI는 2초 만에 자신이 그동안 지켜본 데이터를 근거로 나에 대해 대답했다. 그 대답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생명을 해치며 목적을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다시 살리는 그 자리에 머무는 일
도구화된 삶의 자리를 떠나 의미를 질문하는 자리로 돌아오는 일
사람과 사람, 말과 마음, 신과 세상 사이의 통로를 놓는 일
진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일
이 글을 마무리하다 보니 문득 어쩌면 이 사명은 급격하게 변하는 시대를 사는 지금의 모든 인간들에게 해당되는 사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다리가 잘리면 그 자리에 쓰러져 고통에 몸부림치는 존재이다. 그래서 더 완벽한 존재가 탄생할수록, 인간의 쓸모는 더 명료해지지 않을까.
우리는 완벽히 불완전하기에, 답이 아니라 질문을 감당하는 존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