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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나 Apr 25. 2023

나그네와 된장국

새로운 오두막의 주인


봉산이란 이름을 가진 마을에

현재의 삶이 남의 옷을 주워 입은 듯 이물스럽게만 느껴지는 나그네가 하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의 귀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진귀한 보석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다.

세상에 하나뿐이라는 그 보석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

한 번도 마주한 적조차 없지만

그는 그 존재라는 것 자체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그 보석을 찾아 지도도 없는 길을 정처 없이 떠돌기 시작했다.

마주한 적도 없는 그 보석의 실체는

이상하리만큼 너무도 간절하게 느껴졌다.

간절함에 그는 제 배를 채우는 일도 잊고 살았다.

보석을 찾아 발길 닫는 모든 곳을 떠돌다 너무나 지쳤음을 깨달은 어느 날,

물 한 모금 얻어 마시려 어느 오두막에 멈췄다.

다행히 오두막엔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는 주인이 살고 있었다.

주인은 기꺼이 시원한 냉수를 내 주었다.

얼마만인지.

시원한 물을 한 사발 들이킨 나그네는

그곳에서 오랜만에 낮잠에 빠졌다.

봄날에 햇살처럼 포근하고,

어릴 적 키우던 강아지처럼 다정한 잠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나그네는 그곳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러다 마당 한편에 숨겨진 푸른 잎을 보았다.

땅 위로 삐죽 솟은 잎이 눈에 띄었다.

누가 심었던지, 저절로 자랐던지 알 수 없었다.

손가락으로 살살 잎사귀 아래 흙을 조금 긁어보았다.

흙 아래 동그란 뿌리가 제법 통통한 듯 했다.

'한번 뽑아보면 어때요?

찾던 게 그 속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주인이 다가와 이야기 했다.

'이 안에 내가 찾던 그 보석이 있을 거야.'

시원한 냉수와 달콤한 낮잠에 잠시 잊어버렸던

진귀한 보석에 대한 염원이 다시 생각났다.

단잠을 자고 일어난 그는 더이상 떠돌 마음도 없어졌다.

이제 이 알뿌리가 그의 마지막 염원이 된 것이다.

두 손으로 잎을 잡아 당겨 보았다.

좀처럼 뽑히지 않는다.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영차'.

옆에서 오두막 주인이 거든다.

'한 번 더 해봐요.'

한 번도 내 것인 삶을 살아보지 못했던

떠돌이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몇 번 더 '영차, 영차'.

'쑤욱!'

드디어 뽑혔다.

한 덩어리의 흙뭉치가 세상에 나왔다.

이 흙뭉치 안에

보석을 품은 알뿌리가 있을 것 같은데,

흙덩이는 알뿌리에 딱 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아마.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주인이 또 한 번 곁에서 거들어 준다.

당장 들여다보고 싶지만

얼마간 기다려야 함을 수긍할 수 밖에.

뜨거운 볕에 며칠을 널어 말린다.

이리 저리 돌려주며 정성으로 말린다.

내가 게을러 잊으면

언제인가 누군가가 말리는 일을 돕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뜨거운 볕을 충분히 쬔 흙덩이는

저절로 부슬부슬 떨어진다.

'드디어!'

그 날, 오두막 주인은 여행을 간다 했다.

이제 오두막을 나그네에게 지키라 말하고

나그네를 힘껏 안아주고는 자신의 길을 갔다.

알뿌리를 모셔와 깨끗한 물에 씻는다.

땅 위로 푸르게 존재를 알리던 잎사귀는 이제 누렇게 말라 잘려진다.

주황빛 껍질을 사르륵 벗겨낸다.

 얇은 껍질이 많기도 하다.

가슴이 뛴다.

처음 세상 빛을 보는 것 같은 하얀 껍질이 드러난다.

냄새가 알싸하다.

하얀껍질을 벗겨낸다.

어느새 코끝에 땀이 맺힌다.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알싸한 향기 때문인지,

그간의 간절한 염원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아마 둘 다 이었겠지.

한 겹,

두 겹,

세 겹,

네 겹,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끝도 없이 벗겨지다 마침내 멈추었다.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

모두 다 벗겨냈으나

손에 남은 것이 없었다.

알맹이.

진귀한 보석 따위는 거기 없었다.

그는 한동안 주저앉았다.

아무도 없었지만

누가 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어미 잃은 고라니같은 초점 잃은 눈동자로

멍하게 앉아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항문만큼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것 같은 웃음이었다.

그리고 배가 고팠다.

일어나서

하얀 껍질들을 주워 모았다.

보석의 껍질일 뿐이라 여긴 그것들을

보듬어 안듯이 정성으로 손질해

자신을 위한 된장국 한 그릇을 끓여 먹었다.

배속이 따뜻해 졌다.

간절한 염원은 잃어버렸지만

눈동자는 초점을 찾았다.

늘 메고 다니던 봇짐을 풀고

그는 가벼워졌다.

이따금씩 과거의 염원이 그를 다시 찾으면

이제 그는 따뜻한 된장국을 끓인다.

나그네가 오면 언제든 함께할 따끈한 된장국 한 그릇을.

사람들은 이제 그를 오두막 주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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