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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나 Sep 12. 2023

당신의 이야기를 써야 할 이유

내 글의 가장 첫 번째 독자를 위해

"엄마. 엄마는 꿈이 뭐야?"


 함께 점심을 먹던 일곱 살 딸아이가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질문 했다. 아이는 한창 꿈에 관심이 많을 나이였다. 순간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몇 초의 정적이 흘렀다.


"나는 과학자가 되고 싶은데 엄마는 뭐가 되고 싶어?"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에서 나의 어릴 적 모습이 잠깐 보였다. 세상 수많은 직업들 중에 뭐가 되고 싶은지 골라보고, 그 직업으로 살아갈 환상적인 삶에 대해 상상해 보았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는 생각에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살짝 고이는 눈물을 감추려고 고개를 숙이고 입에 밥을 넣으며 그저 본능적으로 입에서 나오는 말을 했다.

  

"음...... 엄마는...... 음... 엄마는... 작가가 되고 싶어."

 

대답을 하고선 스스로 흠칫 놀랐다.

'엥? 작가라니? 내가 작가가 되고 싶었던가?' 


"작가가 뭐야?"

"응. 글을 쓰는 사람."


 그때까지 나는 글과 그저 그런 관계를 맺어오고 있었다. 멀지도 않지만 그렇게 가깝다 하기도 어려운 관계. 꾸준히 독서는 했지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었다. 읽는 분야는 주로 자기 계발서, 육아서,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 전공분야인 농업에 관련된 서적 정도로 편향되어 있었다. 서사에 별 관심이 없어서 읽어 본 소설을 말하라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쓰는 일이라곤 아주 가끔 감정을 배설하는 정도의 일기를 썼다. 국어시간에 작품을 파헤치는 것이 싫어서 국어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 입에선 왜 갑자기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이 나왔을까? 당시에 나는 답을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나의 무의식은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딸의 물음에 내 무의식이 내게 답을 말해 주었을 것이다. "너는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너한테는 지금 그게 필요해."라고.


 딸에게 작가가 되고 싶다고 대답한 그날 이후, 나는 서서히 정기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왜 작가가 되고 싶은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스스로 써도 되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의심했지만 희한하게 나는 자꾸만 쓰는 사람의 방향으로 슬금슬금 걸어가고 있었다.


 이것저것 그날그날 되는대로 쓰다가 어느 날부터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어 써보기 시작했다.


탁. 타닥. 탁. 탁.


 키보드를 두드릴 때마다 미처 알지 못했던 내 안에 아픔과 서러움, 채 아물지 않고 덮어두었던 나도 몰랐던 수많은 상처들이 쏟아져 나왔다. 엉망징창으로 엮여 내 안에 들어있던 그 모든 감정들이 눈앞에 모니터에 활자로 적혀 나왔다. 내가 만든 문장들은 도저히 파악할 수 없었던 내 내면의 감정들을 담고 있었다. 그 모든 감정들을 눈앞에 두고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그 문장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만든 문장을 읽는 가장 첫 번째 독자는 언제나 나라는 사실을.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써서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판매 성적은 썩 좋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물질로는 살 수 없는 큰 가치를 얻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을 한번 훑어보고, 그 시간을 다시 정비하고, 하나하나 어루만져서 내 것으로 품을 수 있게 된 이었다.


 나를 찾는 일이 현시대의 트렌드가 되었다. 온, 오프 라인에서 나를 스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지만 정작 나의 본모습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다. 심지어 나도 내가 누구인지 잃어버린 것만 같다. 그래서 나를 찾고 싶은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이다.

 나를 찾는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바로 바라본다는 뜻이다. 바로 바라본다는 것은 온전히 이해한다는 말과 같다. '이해'라는 것은 사람, 상황, 메시지와 같은 것에 관한 심리학적인 프로세스다. 어떤 사건의 이유, 원인,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할 때 우리는 그것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의 과거가 내 안에서 뒤죽박죽 얽혀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나를 이해하지 않고 나의 존재를 바로 바라볼 수 있을까? 내 존재를 바로 바라보지 않고 내가 누구인지 찾을 수 있을까?

 나를 이해하는 과정, 곧 내가 누구인지 찾게 해 주는 그 과정이 바로 내 이야기를 쓰는 일이다. 내 이야기를 쓰다 보면 복잡하게 얽혀서 내 안에만 머물던 문제가 글자의 형태가 되어 바깥세상으로 나온다. 지금의 나를 만든 이유와 원인과 의미들이 눈앞에서 문장들로 나열된다.

 감정이 문장이 되는 과정에서 이미 한번 생각을 거치고 나온다. 1차 생각의 과정을 거친 그 문장들을 다시 곱씹으며 수차례 내면에서 정리가 일어난다. 내면의 감정을 활자로 옮기고, 그 글을 다시 읽어보는 과정. 그것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확실한 내면 치유 과정이다.


 왜 굳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지 질문하는 말에 시인 숀 토머스 도허티(Sean Thomas dougherty)는 이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세상 어딘가엔 당신의 이야기와 똑같은 모양의 상처를 지닌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진심을 가진 문장은 언제나 독자의 마음에 가 닿아 그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준다.

 언제나 가장 위로를 많이 받는 독자는 영원한 나의 첫 번째 독자, 바로 나 자신이다.


 이것만으로도 자신의 이야기를 꼭 한 번은 써 볼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당신 글에 위로와 새 힘을 얻을 첫 번째 독자는 이미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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