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았어요."
호프집에서 만난 후배이자 동료교사 L은 시작부터 목소리를 높였다.
"사랑이니 뭐니 그것 다 필요 없다니까요. 그냥 가르치고 조지면 돼요. 지 애가 이상하고 못 하는 걸 뭘 봐줘요."
P는 허탈한 표정으로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K 얘기 알죠? 걔 옛날에 학부모한테 싸대기 맞았잖아요."
"응, 알지."
K는 매사 열정이 넘치는 당찬 여자 후배였다. 워낙 똑 부러지고 맡은 일을 싹싹하게 잘 해내 가끔은 대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야, 왜 못 해?"
"선배, 해보지도 않고 그런 말 하면 어떡해요."
K 앞에 거칠 것은 없었다. 그녀는 거침없는 대학 생활 4년을 보냈고 교사 임용도 순탄하게 되었다. 그리고 첫 담임, 첫 학부모 상담.
K는 한 학생의 어머니를 상담하게 되었다.
그 학생은 문제가 안 풀리면 "왜 안 풀려, 왜 안 풀려!"를 크게 반복적으로 말했고 심할 때는 머리카락을 쥐어뜯거나 머리를 잡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다가 책상을 주먹으로 친다고 했다.
학생들은 자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고 K는 이 사실을 좌시할 수 없었다.
"금쪽이 어머니, 학생들이 금쪽이를 좀 이상하게 봐요."
"완벽한 학생이 어딨어요. 우리 애가 조금 부족해도 담임선생님이 중간에서 잘 어울리게 해 줘야죠."
"금쪽이 어머니, 검사받아 보시는 게 어떠세요? 제가 보기에는..."
짝.
아악.
K의 뺨에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어디서 알지도 못하는 게 함부로 지껄여? 우리 애가 자폐라는 거야, 뭐야? 네가 뭘 알아?"
"아니, 어머님, 저는 그냥..."
"누굴 가르치려 들어! 내 애는 내가 잘 알아! 니 까짓게 뭘 얼마나 배웠다고 말대꾸야!"
"..."
"평소에 그런 눈으로 우리 애를 보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지. 우리 애 이번에 수학 점수 몇 점인지나 알아?"
"어머님, 수학 점수와 이건 다른 이야기예요."
"야!"
고성에 옆반 선생님이 달려와 말리고 관리자가 교실에 도착해서 어찌어찌 마무리되었다고 했다.
"교사가 애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학생에 대한 사랑이 없어!"
학부모는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고 K는 서럽고 분함에 눈물을 흘렸단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해 상담과 특수교육 분야를 전공하기로 했다.
"그냥 수업에 방해된다고 했으면 되는데 어중간하게 나서 가지고는..."
L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사실 다 알고는 있었던 거잖아. 걔 엄마만 안 받아들인 거지."
"제가 뒤늦게 그 학교 발령받았잖아요. 딱 봐도 알겠더만. 갈수록 심해져서 소문 다 나고 그 엄마 다른 엄마들과는 말도 안 했대요. 다 피해 다니고 담임한테만 잘 봐달라고 난리 난리..."
L의 동기인 J가 말을 이어갔다.
"부모가 다 그렇지..."
이제 막 학부형이 된 P가 말했다.
"그런 부모가 나중에 뒤통수 때린다니까요. 그 시절에 도청기 없어서 다행이지."
"그건 모르지. 가방에 있었을지도."
L이 흐릿하게 웃으며 J를 보았다.
"그때는 학폭도, 뭐도 없었으니까요. 해봐야 걔만 손해지. 소문 다 나고. 그나저나 이젠 끝났어요. 그냥 원칙대로 하면 다 끝."
"뭐가 끝?"
P는 힘겹게 J의 말을 받았다.
"이제 조용히 해라, 안 하면 분리시키고, 안 되면 교무실 보내고, 그러는 거죠."
"그게 되겠냐?"
"안 되면 어쩔 건데. 요새 부모들 장난 아냐. 지 애 공부 피해 본다고 하면 난리 날걸."
"모르겠다. 어찌 될는지."
"알아서 되겠죠, 뭐. 형 한 잔 해요.'
"그래, 다들 1년 고생 많았어."
P는 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녀석들은 자기 반 문제아들 다 끝까지 끌고 갈 녀석들이란 걸. 승진 안 노리고, 행정직을 생각하지 않는, 현장에 있을 몇 안 되는 남자교사들이다.
오늘 있었던 녹취 결론에 다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해 수고 했다, 모두.
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