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aka & Kyoto Film Sketch
오랜만의 여행이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연휴였고, 처음 방문하는 일본이었다. 삼박자가 너무 잘 어우러져 출발 전부터 마음이 꽤 설렜다. 후다닥 정신없이 흘러버린 4박 5일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오니 강추위가 우리를 반겼고, 언제 여행을 다녀왔냐는 듯 나는 다시 똑같은 하루에 익숙해졌다. 4박 5일이라니 얼핏 긴 여행 같겠지만,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교토에 이케다의 료칸까지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덕분에 첫 일본 여행은 여운만 길게 남았다.
매번 여행을 갈 때마다 왜 그리 카메라 욕심을 냈던지. 사실은 아이폰으로도 채 못 찍는 풍경이 여럿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애초에 카메라를 집에 두고 아이폰과 필름 카메라만 가지고 떠났다. 귀찮음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드디어 필름을 현상했다. 손에 쥔 사진은 한 롤도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진을 보니 추억이 참 새록새록해 오랜만에 글을 남겨본다.
난바역에서 10분 이내라던 우리 숙소는 덴덴타운 근처였다. 중고등학교 때, 애니메이션을 워낙 좋아했어서 덴덴타운에 가면 피규어도 사고 건프라도 구경하고 해야지! 마음먹었는데 막상 오빠와 나는 1층 인형뽑기에서 돈만 탈탈 털리고 돌아왔다. 딱 봐도 각 안 나오던 무민 인형을 뽑아보겠다고 동전을 엄청 썼지만 실패하고는 두 번 다시 찾아가지 않았다.
오사카는 낮보다 밤이 더 좋았다. 워낙에 번쩍번쩍 유흥가를 좋아하는 성격 탓일까? 여기저기서 많이 봐왔던 전광판들을 직접 보고 있으려니 그게 그렇게 설레더라. 딱히 맛집을 찾아가지 않아도 들어가는 모든 음식점이 다 맛있다고 칭찬이 자자한 도톤보리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곳을 가보진 못했다. 그래도 모두의 말마따나 맛있게 잘 먹고 왔다. 현지인 기분 낸답시고 지나가다 훅 들어간 꼬치집은 실패였지만..
오사카 여행을 다녀오면 누구나 찍는다던 글리코 아저씨 앞에는 정말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너나없이 들이대는 셀카봉 틈을 비집고 나도 한 장 남겨보려 했는데, 사진을 뽑고 나니 왜 이렇게 하얗게 나온 건지. 글리코 아저씨는 파란 바탕에 붉은 해 아닌가요... 찰나의 타이밍을 잡지 못한 내 탓이오.
오사카에 도착했던 첫날은 비가 와서 더 번잡스러웠는데 덕분에 도톤보리 운하는 운치 있었다. 돈키호테에서 사람에 우산에 치었던 기억은 딱히 좋진 않았지만.
알아주는 회 마니아인 오빠가 해외여행을 싫어함에도 일본여행을 흔쾌히 응한 것은 회의 본고장인 일본에서 제대로 즐기고 싶었던 것일 게다. 그런데 생선을 입에 못 대는 내가 모든 일정을 짜다 보니 단 한 번, 선심 쓰듯 초밥집에 갔다. 한국인에게 더 유명했던 도톤보리의 '우오신(어심) 스시'. 맛도 맛이지만 생선회가 아주 크고 두툼하다 하여 보란듯이 가자 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오빠가 실망이라 해서 괜히 미안했다.
둘째 날은 온전히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쏟았는데 다음날 너무 지쳐 제대로 일정을 소화하지 못한 것만 빼면 최고였다. 특히 여길 꼭 방문해야겠다 마음먹은 게 해리포터 때문이었는데, 정말 하루 온종일 돌아다니며 얻었던 피로가 싹 날아가는 쾌감이 있었다. 포비든 저니 꼭 타세요, 꼭! 입장료에 익스프레스 5 티켓까지 했더니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지만, 길게 늘어선 줄을 익스프레스 티켓으로 앞지를 때의 기분이란! 돈 주고 새치기한다는 말이 딱이었다. 그래도 이거 안 사갔음 어쩔 뻔했나 싶을 인파더라.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다녀온 다음날이 교토 방문 일정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면 아침 일찍 일어나 교토에 가고 은각사니 철학자의 길이니 다 걷고 카페도 가고 했어야 했지만, 전날 무리하는 바람에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즐겁자고 여행 와서 병 얻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일정을 포기하고 점심 다 될 무렵까지 푹 자고 일어났다. 덕분에 힘을 얻고 늦게나마 교토로 이동.
그런데 막상 교토에 도착하고 나니 모든 게 후회스러웠다. 오사카가 마치 명동 같은 기분이었다면 교토야 말로 일본스러웠다. 내가 상상하던 그 크리스마스의 일본. 기모노를 입은 여자들, 크리스마스 장식, 역사를 품은듯한 건물들. 조금 더 빨리 올걸! 교토에서 하룻밤이라도 묵을걸! 후회의 연속. 특히나 기온 거리와 기요미즈데라 올라가는 거리는 정말 좋았다.
첫날 오사카의 주택박물관에서 기모노 체험도 못한 터라 교토에서 기모노를 대여하고 싶었는데, 오빠 왈, 외국인이 한국 와서 한복 빌려 입고 돌아다닌다고 생각해봐-라는 말에 얼마나 내가 동동 떠보일까 싶어 결국 포기했다. 그럴 바엔 대여하지 말고 기모노를 그냥 사 오는 게 어떠냐고 했는데 빠듯한 예산 탓에 꿈도 못 꿨다. 그런데 한편으로 교토 거리를 돌아다니며 만난 기모노 입은 여자들이 너무 추워 보여서 그래, 안 입길 잘했다 싶더라. 슬쩍 기모노 입고 총총 거리는 여자들을 찍어보고 싶었는데 아직 그럴 용기가 없어 사진은 남기지 못했다.
아직도 기온마치(기온거리)에는 게이샤들이 있다고 한다. 사진을 찍는 중에 게이샤로 보이는 분들이 청소를 하거나 가게 안으로 쏙 들어가는 모습도 보긴 했다. 돌아다니다 보니 기온에도 교토에 가면 먹으리라 했던 스키야키집이 많이 보여서 기분 내며 들어갈까 하다가, 맛집 검색의 달인 한국인 습성이 나와서 결국 검색해둔 맛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구글맵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카가리비'에 찾아갔다. 가는 길에 빛이 예뻐서 찰칵. 눈에 보이는 풍경만큼 사진에 담아지지 않을 때면 아, 정말 사진 잘 찍고 싶다- 사진 실력 좀 늘었으면- 하게 된다.
꽤 높은 예산을 책정해 놓고 한껏 기대하며 찾아간 카가리비. 특히 점심때 다 되어 교토에 오고 기온거리며 걷다 보니 이미 오후 두세시가 된 무렵이라 배가 무척 고팠다. 아무리 맛집이라도 이 시간이면 당연히 자리는 있겠지? 하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는데- 웬걸, 오늘은 예약이 다 찼다고 죄송하단다. 그런데 예약이 다 찼다는 식당은 조용하기만 하던데.... 재료가 모자란 걸까, 우리가 너무 궁색해 보여 돌려보낸 걸까? 기분 상해서 돌아섰다.
다행히도 카가리비 때문인지 혹은 이 동네가 그런 건지 그 옆으로 스키야키집이 줄을 서있더라. 우리가 찾아간 집은 그럴듯한 외관의 식당이었는데 지금은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거의 백 년 가까운 전통을 가진 집이었다. 카가리비보다는 저렴하고 소박한 상이었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즐거운 한 끼 식사였어, 말할 정도는 되어서 기분이 풀어졌다.
시간이 늦은 탓에 기요미즈데라는 어둑어둑해 잘 보이지 않았고 그저 사람이 많다는 감상이 다였지만, 올라가는 길은 골목골목 참 예뻤다. 아기자기한 가게들 구경하고 사진 찍느라 정신없었는데, 아쉽게도 아직 필름을 다 찍지 못해 현상을 못했다. 몇 장이나 건졌을진 모르겠는데 그래도 꽤 기대된다.
겨울이라 대여섯 시면 해가 지는 바람에 교토 일정은 정말 반나절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정말 오기 잘했다 싶었다. 그리고 다음 여행은 꼭 벚꽃 필 무렵에 교토에 다시 오자고 혼자서 약속했다.
2015년 크리스마스의 일본 여행, 즐거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