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카 변이 예방 수술에서 난소난관 vs. 자궁전절제의 선택
난소는 여성의 생식기관으로 여성호르몬을 생성한다. 여성호르몬은 단순히 임신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뇌와 뼈, 신체 기능 등 여성의 몸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난소를 절제하면 더 이상 여성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아 흔히 말하는 갱년기 증상이 찾아오는데 안면홍조, 기분 장애, 식은땀 같은 증상들과(사실 모두 혈류장애에 기반한다) 골다공증, 노화, 체중 증가 등 자연스럽게 50세 이후 찾아올 문제가 갑자기 닥친다. 50세 이후 자연 폐경에서 오는 증상은 서서히 찾아오지만 강제 폐경은 한꺼번에 훅 덮쳐서 훨씬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예방적 수술에서 난소는 무조건 적출 대상이었으므로 조기 폐경 후유증은 필연적인 문제였다.
BRCA로 열심히 검색하던 어느 날,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하는 유튜브를 보게 됐는데 유전성 부인암 교수님이 갱년기 증상은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되니 걱정할 것 없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외래 가서 교수님께 호르몬 치료에 대해 여쭸더니 난소난관 절제시 최대 5년, 자궁까지 전 절제시는 기한 없이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자궁을 보존한 경우는 에스트로겐 외에도 프로게스테론도 써야 하고 이 치료를 5년 이상 하면 유방암과 심혈관 질환 위험이 올라가기 때문에 안된다셨다. 말이 치료지 그냥 호르몬 약을 복용하는 것인데 병원에 따라서는 폐경클리닉 등에 연계해주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수술이야 뭐 아파서 하는 것도 아니고 제왕절개 했을 때에도 회복이 무척 빨랐어서 그런지 하나도 겁이 나지 않았는데 조기 폐경 후유증만큼은 어떻게 찾아올지 몰라서 걱정이 됐다. 회의하다가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면 어떡하지? 안 그래도 열 많은데 여름 외의 계절에도 땀이 나면? 기분이 오락가락해서 아이한테 짜증을 내면? 지금도 불면증이 있는데 더 심해지면? 출산 후에도 한 번 아픈 적 없던 손목과 관절이 아파오면 어떡하지?? 미리부터 걱정하고 안달복달 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주다보니 불안감은 어쩔 수 없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인터넷 검색을 아무리 해봐도 괜찮은 사람을 그다지 없고 다들 너무 힘들단 이야기와 그나마 운동으로 이겨낸다는 말, 그래도 호르몬 약이 있으니 견딜만 하더라는 생생한 후기뿐이었다.
어쨌든 나는 이미 수술을 선택했고 결정해야만 했다. 1월에 병원에 가서 엄마 외에도 친할머니가 유방암으로 돌아가셔서 너무 불안하다, 만 40세까지 기다리기 힘들고 수술을 빨리 하고싶다고 말씀 드리니 그럼 외래를 잡고 다시 보자 하셨다. 그 날 바로 예약을 시도했지만 두 달 후인 3월 초로 예약이 되었다. 두 달이 흐르고 수술일을 잡던 날, 교수님이 난소난관 절제술을 하자셨다. 난소난관만 절제하면 호르몬 치료가 최대 5년인데 50은 너무 멀었잖아요, 그냥 자궁까지 다 하면 안될까요? 라고 하니 의외라는 눈빛으로 정 원한다면 바꿔주시겠다며 자궁 전절제술로 오더를 내렸다. 그 눈빛이 의아해 여쭤보니 자궁이 있든 없든 내게 생길 후유증은 어차피 동일하지만, 아무래도 여성성에 중요한 장기여서 그렇단다.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어차피 난소도 떼는데 자궁이라고 못뗄쏘냐. 나는 그런 거 없으니 전절제 하겠다고 말씀 드리고 업무 일정 고려해 4월 초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남편에게 수술 확정되었다 하니 굳이 자궁까지 들어낼 필요 있냐고 하는 거다. 사실 난소도 자궁도 모두 다 멀쩡한 장기인데 어쩔 수 없이 난소와 난관은 제거한다쳐도 뭐하러 애먼 장기를 떼어내냐며, 꼭 해야하는 게 아니라면 두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말하더라. 자궁을 보존하면 호르몬 치료에 제약이 있다고 말했더니 개인차가 있다 하니 나는 별 증상 없이 넘어가거나 혹은 증상이 있어도 잘 이겨낼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만약 너무 힘들다면 5년 후가 되어 자궁도 절제하면 되지 않냐는데 듣고 보니 그럴싸 했다.
'자궁 절제술', '난소난관 절제술', '자궁절제 후유증' 등의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보통 자궁근종 등으로 절제술을 하는데 최근에는 무조건적인 자궁 절제는 지양한다고 했다. 몸 안의 장기가 불필요한 것이 없을진데 문제 좀 있다고 굳이 제거하는 것보다는 최대한 장기는 살리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 때문이란다. 이런 글을 보다 보니 문제 있을 때에도 자궁 적출을 하지 않는데, 나는 생길지 안생길지 모르는 암이 두렵다고 아예 문제도 없는 장기를 너무 쉽게 들어내려고 한건가? 싶어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담당 교수님은 암센터 교수님이고 암 확진자만 진료를 보셔서 외래 때에도 정식 암 환자가 아닌 내가 이런저런 질문을 하거나 시간을 끄는 게 부담스러워 혼자 많이 찾아보는 편이었는데 이 부분만큼은 혼자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교수님은 자궁이 있으나 없으나는 별 차이가 없고 수술이 단일 복강경이냐 아니냐 정도만 다르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런걸까? 누구에게라도 상담을 받고 싶어 C병원 홈페이지 상담도 남겼지만 쉽지 않은 문제라 그런지 바쁘신건지 내 글엔 답변이 오래도록 달리지 않았다. 아까 본 유튜브의 교수님을 찾아가야하나 고민했는데 집에서 너무 멀어 엄두가 나지 않던 중, 집 근처에 곧 오픈한다는 산부인과가 생각났다. 오픈일을 확인할 겸 홈페이지에 가보니 Q&A 게시판이 있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현재의 내 상황에 대해 질문을 남겼더니 그 날 저녁, 장문의 답변을 달아주셨다. 이 선생님의 의견을 간단히 정리하면 난소암의 예방적 절제술에서 자궁까지 제거하는 것은 큰 영향이 없다는 것이었고 병원에 찾아오면 진심으로 같이 이야기 나눠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암센터 외래일이 동네 산부인과 오픈일이어서 암센터 가기전 병원에 들러 상담을 받았다. 난소암 예방을 위해서라면 굳이 자궁까지 절제할 필요는 없으며 몸 속에 떠 있는 난소난관과 달리 자궁은 방광과 장 사이에 있어 물론 잘 절제해주시겠지만 다른 장기에 손상이 갈 위험이 아예 없진 않다고 하셨다. 요실금, 잔뇨감과 같은 방광 쪽 문제, 아랫배 통증 등이 있을 수 있다며 이런 부분까지 다 고려하고 선택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혹시나 있을 부분도 말씀해주시는 거라고 덧붙이셨다. 호르몬 치료의 기한 때문에 고민했던 거였는데 그 부분은 여쭤보지도 못하고 자궁이 다른 장기를 받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래, 자궁은 살리는 게 좋겠어 라고 결정해버렸다. 어쩌면 나는 그냥 전문가가 "자궁은 살리는 게 좋겠습니다" 라고 말해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여성성이고 뭐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냥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하나라도 살리는 것이 컨디션에 좋을 것이라는 그 말이, 앞으로도 잘 이겨내면 된다는 그 말이 그냥 듣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동네 산부인과를 나오고 외래에 가서 자궁은 살리고 양측 난소난관 절제술로 바꾸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별 말씀 없이 그러자고 오더를 바꾸셨고, 이제 수술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