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창 12:1-3
내가 왜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요즘처럼 삶의 이유를 찾기 어려운 때가 없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너무 무거워서 침대 밖으로 나오기까지 많은 다짐이 필요했다. 이대로 삶의 끝이 찾아와도 좋겠다. 하는 생각은 곧 구체적인 계획으로 연결 되었다. 주식은 누구에게 양도하고, 빛은 보증금 빼서 갚고, 회사에 제출할 사직서 문구도 생각하고, 주위 몇명에게 유서 겸 편지를 남겨야 할지...
하나 하나 정리해야할 것들을 생각하다보면 금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빌어먹을. 이대로 출근을 안하면 제대로 된 정리도 못한다. 그러니까 우선 침대에서 일어났다. 내 몸을 질질 끌고 집안을 누볐다.
그런 내게 누군가 영상을 하나 보내주셨다.
"자기 인생에서 도망갈 데가 없다는 걸 인정하셔야해요.
괴로워하세요. 비명을 질러야죠.그 것 밖에 할 게 없거든요.
비명을 지르는 이유는 죽지않고 견디겠다는 표시입니다."
영상 첫 마디부터 마음을 후벼 팠다. 나는 아직도 도망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비밀이지만 아프지않게 죽는 법에 대한 나름의 연구를 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사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약간의 균열만 생겼을 뿐. 여차 하면 나름의 연구가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지 찾아보면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지구가 완전히 망가지고나서 다른 행성 이주나 식민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아직 회복 가능성이 있을 때 노력하는 게 낫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도 살아갈 수 있을 때 조금만 더 삶의 이유를 찾아보면 안될까? 이렇게 나를 다독이고 설득 하고있다.
지난 29년의 삶에서 늘 사랑받기위해 모든 것을 했다. 사랑받지 않는 삶은 내게 곧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내게 활을 겨누고 있는 것처럼 두려움에 앞으로 달려갔다. 내 행동의 동기는 결국 두려움이었다. 그런 내게 하나님은 누군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천천히 알려주셨다. 내 뒤에 활을 겨누고 있는 이가 없음을.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사실을 알고난 후로 달려가야할 이유를 잃어버렸다. 생존을 위해 살던 내가 존재의 위협을 받지 않게되자 삶의 이유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어차피 도망갈 곳도 없는데 나아갈 방향도 잃어서 그자리에 누워버렸다. 이대로 모든 것을 놓게되면 언젠가 다시 회복될 때 수많은 시선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이미 겪어서 안다.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아 올리는 것은 처음보다 열배는 어렵다. 그래서 최소한의 일상만 유지하기로 했다.
1. 아침에 눈뜨기
2. 지각하지 않고 출근하기
3. 자기전에 씻고 자기
그 외에 내게 무엇도 요구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조금 힘이 생기면 청소기 한 번 돌리고, 분리수거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근근히 버텼다. 매일 아침 병가 내는 것을 고민하지만 하루 안나가게 되면 이틀은 더 쉬워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다 결국 덮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되면 도망쳐버릴 것 같아서 물꼬를 트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누군가의 괴로움을 듣는 것을 힘들다. 읽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목까지 답답해지는 기분을 느끼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늘 마음까지 시원해지거나 따듯해지거나 둘 중 하나는 느낄 수 있는 글을 쓰고싶었으니까. 하지만 내 존재 자체가 나날이 희미해져가는데 아닌 척 따듯한 글을 쓸 수 없었다. 사실 하나 써봤지만 좋은 이야기는 못들었다. 내 글이 '멈칫거리는 관흉인' 같다고 했다. 여기저기 구멍 숭숭 뚫려있더라도 그냥 이야기를 폭팔시키라는 조언을 들었다. 소년도 어른도 아닌 저주받은 청년의 강을 건너고 있다고. 그래서 내 안에 있는 필터를 여러 장 빼버리고 글을 쓰기로 했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일까요?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설득하시는 작업, 곧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리킵니다.
그동안 '믿음 좋은 청년'으로 살기위해 들였던 노력들을 이 책은 정확하게 짚었다. 그래서 이 책을 더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걸어갈 힘도 남아있지 않아 겨우 바닥을 짚고 일어서는 내게 필요한 건 노오력이 아닌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말이 마음 저미게 위로가 되었다. '내게 힘을 주세요, 방법을 주세요.' 하던 기도는 '하나님, 저를 설득해주세요. 이미 받은 게 많아 염치 없지만 목덜미를 잡고 끌고가주세요.'라는 기도로 바뀌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오히려 자유를 주었다. 오늘 성경을 읽지 않아서, 기도가 부족해서, 아침에 독서를 하지 않아서 등. 내 부족한 노력을 찾아 헤메이지 않을 수 있어서 숨통이 조금 트인다. 오늘은 잠에 들을 때 혹시 무언가 놓친 게 없는지 걱정하지 않고 조금은 편하게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여기가 어디쯤일까요? 아 마 이제 막 가나안에 들어왔을까요. 가나안에 들어온 지 얼마 되 지 않아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은 리를, 이삭을 바치는 자리까지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 나님의 인주 , 하나님의 설득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수준에 대해 당황하거나 절망하 지 않기 바랍니다. 서울발 부산행 기차를 탔다면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입니까? '어디까지 왔을까?' 하며 하염없이 창밖만 쳐다본다면 참으로 미련한 일입니다 편안 하게 앉아 가끔 시계만 보면 됩니다.
기차를 탔으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하듯, 내가 지금 어디인지 헤아리지 않고 책도 읽고 노래도 들으며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폐를 쥐고 놔주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에서 벗어나 내 마음 가는대로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