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abella Jul 15. 2024

프롤로그

대체 무슨 깡이었을까

나, 아라벨라. 조선시대에 한 권세 했다는 뼈대 있는 집안의 귀하디 귀한 장손(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자랐다).

한식도, 빠른 인터넷도 한국의 친구들도 밤늦게 즐길 수 있는 유흥 문화까지도(오해 마시길! 노래방과 펍 이야기다.) 너무 사랑하는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는 그와 동시에 어릴 때부터 해외에 대한 로망이 있어 왔다.

한국과 다른 나라의 문화를 겪어보고 체험하는 것이 좋았고, 외국어를 공부해서 외국인들과 직접 소통하는 것을 어릴 때부터도 좋아했더랬다. 하지만 그닥 풍족하지 못한 집안 형편에 해외 여행이란 사치였고, 결국 내가 처음으로 해외에 발을 딛어 본 것은 대학생이 된 이후 스스로 돈을 모아 '까미노 데 산티아고' 행에 몸을 싣었을 때였다.

처음으로 맛본 해방감이란 얼마나 짜릿한지! 게다가 낯선 것과 처음 보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의 성격은 까미노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해 주었고, 그 뒤로도 해외 생활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 후로 돈이 모였다 싶으면 다른 데 사용하지 않고 해외 여행을 가는 데에 투자했고, 덕분에 또래에 비해 제법 많은 경험을 쌓았다 자신한다.

그럼에도 항상 모자라다고 느꼈던 것은 해외 여행과 해외 생활이란 큰 차이를 갖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으리라. 여행은? 살아보는거야! 라는 모 숙박 플랫폼의 캐치 프레이즈처럼, 나는 한국 생활을 사랑하고 한국 문화를 사랑하며 이민 따윈 떠날 생각도 없지만 한 번쯤 해외에서 살며 여러 문화권에 살아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넓은 식견을 갖고 싶었다. 그건 유튜브로 아무리 여행 쇼츠를 많이 봐도, 아무리 도서관 한구석의 여행 에세이 챕터를 읽어봐도 직접 겪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내가 당연하게도 워킹 홀리데이를 꿈꿨다. 

정정하자. 정말로 가고 싶었던 것은 유학이었지만 상기했던대로 우리 집은 그 잘난 뼈대의 골수까지 몇 대 전 조상들께서 쪽쪽 빨아드셨는지 그닥 유복하지 못했기에, 현지에 살며 돈을 직접 벌 수 있는 워킹 홀리데이를 나이가 지나기 전 꼭 가고 싶었다.

그렇게 막연하게 꿈만 가지고 나이를 먹던 어느 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일이 너무 안 풀리던 때였다. 회사를 나오고서 프리랜서로 발돋움하겠다는 야심찬 커리어는 바닥을 빌빌 기고, 오래 나를 괴롭힌 불면증과 다른 또래 친구들보다 못나고 하잘것없다는 열등감이 밤과 낮마다 나를 좀먹던 때였다.

어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회색 오후 더이상 살고싶지 않아 당시 살고있던 오피스텔 7층의 창문을 열고 하염없이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날 떨어지지 않은 이유는 한 가지였다. 법의학이나 물리학 따윈 새 모이만큼도 모르지만 그런 문외한의 눈으로 보아도 7층에서 떨어져선 죽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머릿속에선 편해질 수 있다는 욕망 대신 춥고 젖은 도로에 다리가 부러진 채 눈물콧물을 흘리며 세상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는 내 모습과 병원비로 너절해질 것 같은 통장만이 맴돌았다.

그 날, 나를 걱정한 가족들이 고맙게도 우리 집으로 달려와 줘서 우울함의 극치를 겨우 넘기며 장례식 비용을 검색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차피 장례식에 이 정도 비용이 든다면, 이 돈을 들고 떠나야겠다. 정말 가고싶었던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와서, 스스로 뭔가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돌아와서 힘내서 커리어를 다시 쌓자고. 

그렇게 내 장례식 비용이 될 수 있었던 돈은 이탈리아행 워킹 홀리데이 자금이 되었다.(이에 관련해서는 웃지 못할 아주 긴 에피소드가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블로그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화장터에 있을 수도 있었던 나는 어떻게 잘 살아남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앞으로의 일 년이 어떻게 흘러갈지, 나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 년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모쪼록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나의 좌충우돌 외노자 라이프를 함께 즐겨주시길 바라며, 

Bravissima, Arabell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