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abella Jul 15. 2024

240701-0714

그 해 여름 아라에게 일어난 일


이 주만의 일기.


이렇게 오래도록 블로그를 찾아오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정말 내가 감당하기엔 어려운 일이 너무나 많이 일어났다....정말이지 인생은 아름답다고 누가 했느냔 말이다.(난 이 영화를 8번 봤다....)


물론 어떤 방문자분들은 언제부터 그렇게 일기를 꾸준히 썼느냐고 일갈하실지도 모르겠다. 그전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몰아 쓰던 참이었으니. 그래도 이 주씩이나 들어오지 않은 건 처음이지 않나. 가능하면 앞으로도 이럴 일은 없기를 바라고 있기는 하다.




자, 그래서 무슨 일로 이 주씩이나 일기를 쉬었는가. 대단하신 변명을 한 번 늘어놔볼까 하자면......




파혼을 당했다.




그래요, 파혼. 약혼을 깬다고 할 때의 그 파혼 말이다. 약혼자라는 게 보통 두 명씩 있지는 않으니 나를 헌신짝처럼 내다버린 그놈은 그러니까, '다음 생에는 비즈니스석' 편의 그 놈이 맞다. 해외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 약혼자에게까지 버림받은 꼴이라니...'삼류 멜로드라마도 이 정도면 욕 먹는다'는 소제목은 이번 편을 위해 아껴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적으면 지금도 심장이 찢어질 듯 먹먹하니 생략하고....그랬다. 그는 내 여덟 번째 남자친구이자 처음으로 사귄 기간이 1년 이상을 기록한 연인이자 첫 약혼자였다. 사람은 맞지 않으면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지만 결혼하기로 하고 집까지 합친 후 떠나왔는데 이렇게 내팽개치다니. 찰 거면 결혼 약속을 하기 전에, 하다못해 떠나오기 전에, 집을 합치기 전에 그랬어야지.....하지만 속으로 아무리 그 남자를 욕하고 울부짖어봐야 깨진 약혼이 머쓱해하며 다시 붙진 않는다....적어도 나의 세상에선 그랬다. 2주 동안 하루에 세 번씩 머릿속으로 '언제나 이혼보단 파혼이 낫다'며 중얼거렸다. 멀리 사는 친구들도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내 친구 수잔, 캐나다로 떠난 파르디스 역시도 위로하는 메세지를 보내 주었고, 집에 남아있는 마르코는 '아라, 벌써 너를 이틀이나 보지 못했어. 괜찮은거니?' 라며 안부를 묻는 왓츠앱 메세지를 보냈다.




파혼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신청하고 온 소죠르노에 지문을 찍어야 하는 날짜가 드디어 문자로 날아왔다. 두근두근, 완전 랜덤가챠라던데 난 언제일까? 11월....말? 반 년 정도인가? 보통 정도인가보다.....라고 생각을 하던 와중, 내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두면 좋은 잡지식 하나! 각국의 날짜 세기.




1.한국에서는 보통 연-월-일 순으로 표기한다.(YYYY-MM-DD)


2.미국에서는 보통 월-일-연 순으로 표기한다.(MM-DD-YYYY)


3.유럽에서는 보통 일-월-연 순으로 표기한다.(DD-MM-YYYY)




날짜 세는 게 갑자기 여기서 왜 나오냐고? DD-MM이 내 눈에 먼저 들어왔다는 얘기다. 그리고 뒤에.....2025년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 때의 내 표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뭉크의 '절규' 마냥 일그러져 있었으리라. 2025년 11월 말까지 체류 허가가 나온다는 뜻인가? 내가 읽은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모든 것을 나의 모자란 이탈리아어 실력 탓으로 돌리고 싶어 번역기까지 돌려 보았다. 사진 신호 및 식별을 위해 2025년 11월 DD(말)에 오란다. 아냐. 구글 번역에 오역이 많은 건 다들 익히 알고 있어. 챗 GPT가 요즘 번역 쪽에서 성능이 두드러진다더라. 2025년 11월 DD(말) 오전 10시 4분에 사진신호 및 신원 확인을 위해 소집 통지를 드립니다..................으악!




워킹 홀리데이 비자는 1년짜리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연장이 불가하다. 그리고 내 비자는 25년 7월까지이다.


그러니까, 7월에 만료되는 비자의 체류 허가증을 받기 위해 11월에 오라고요. 어이가 없었다. 이민국에 전화를 했지만 전화는 안 받지, 메일도 답이 없지, 대사관의 일처리는 정말 불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이 소죠르노 실물 카드가 없으면 이탈리아에서 제대로 된 직업 내지는 파트타임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다.




이 모든 일들(+여타 자잘한 문제들)이 겹쳐 정말....넉 다운이라고 해야 딱 좋을지. 2주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하루하루 살아 숨쉬느라 버티는 것만으로 모든 힘을 다 썼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2주가 지난 지금, 체류 허가증은 여전히 1%도 해결된 것이 없지만 파혼의 아픔은 이겨나가는 중이다. 그래, 뭘 하든 해 봐야지. 애써 보고 최대한 발버둥쳐 봐야지. 그러려고 이태리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으니까.


우선은 블로그부터 밀리지 않고 써 보려고 한다. 최대한 밀려도 일주일에 한 번까지. 나와의 약속이다.


토스카나 투어,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인스펙션 하는 이야기 등등......2주 동안 있었던 일 중 쓸 만한 소재는 두었다가 나중에 꼭 작성하려고 한다. 모쪼록 여러분도 나의 일정에 여전히 함께 해주시기를 바라며.....In bocca al luppo!


작가의 이전글 24063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