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얇은 호갱이가 호강하다"
▲ 라오스 방비앵에서.
여행의 출발은 이랬다.
나이를 먹으니 겁이 났다. 늙는다는 것은 무서운 거다. 연골에는 물이 차고 매일 아침 똥 색깔은 이상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나름 정성을 들여 써 놓은 짧은 글에는 오타와 비문이 난무하게 되고 스포츠 중계를 보면서 "음..저 친구가 다크호스군!"이라고 말할 것을 "음..저 친구가 호스티스군!"이라고 태연하게 말하게 되는 나이.
게다가 여자로부터 사랑받을 기회도 적어지고 변태와 신사가 되는 갈림길에서 실존의 고민도 해야 한다.
30대 중반은.... 무언가를 시도했을 때, 추태냐 패기냐의 싸움에서 패기가 이길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는 나이다.
다 집어치우고 이런 것을 고민할 만큼 쓸데없는 걱정에 자기변명만 많아지는 나이다.
속절없이 까무룩 나이만 먹고 있는 데다 흘러가는 세월에 대한 증오만 남아 폭발하기 직전의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운전을 하다 라디오에서 이승기가 부른 우린 연애할까.. 어쩌고 하는 노래를 들었다.
와! 이 노래 정말, 좆같더라.
들으면서 계속 핸들을 내리치며 "아아 좆까! 좆까!"를 연신 내질렀다.
노래는 끝났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다.
바로 타이항공에 접속해 다구간 티켓을 끊어버렸다. 일단 방콕-카트만두-방콕. 나중 일정은 나중에 정하자.
네팔 트레킹을 제외하고는 여행 기간과 행선지는 그때그때 정한다. 최소 6개월이다!
그로부터 3개월 후,
"야호! 그지 깽깽이들아! 여긴 해발 5416미터 토롱라 정상이다!!"
즐거운 트레킹을 마치고 네팔에서 방콕으로 돌아오니 다음 행선지를 생각해야만 했다.
그치만 이곳은 방콕, 위대한 방콕!이다. 짜오프라야 강변에서 창 맥주 한 병들고 강물만 바라봐도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이곳.
게다가, Time is on my side!
열흘 정도 디디엠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면서 띵가띵가 했다.
띵가띵가 했다지만,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런 와중에 나 자신의 바닥을 들여다보기도 했고.
자신의 밑바닥을 확인하고 으스스한 한기에 떨어보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진미일 터.
하여간 방콕에서 어디로 튈까 고민하던 중, 디디엠에서 같이 방을 쓰던 쭌이 좋은 정보를 준다.
"형. 치앙마이 알아요?"
"잘은 모르는데..."
"거기 볼 것도 많고, 음식값도 싸고. 날씨도 좋아요!!"
짜식이 촌스럽게... 세상에 그런 데가 한 두 군데냐?
이때 희번덕거리는 놈의 야리한 눈빛.
"그리고, 거기 여자들 진짜 이뻐요."
앗! 잠깐, 뭐라고??
"야..그럼 씨암파라곤에 있는 여자들보다 이뻐?"
"(어이없다는 듯) 형!! 치앙마이에요, 치앙마이!! 비교가 안돼요. 형! 저는 치앙마이로 먼저 올라가서 기다릴께요"
막상 가보니 실망뿐. 역시나 천상천하 방콕지존이다!
특별히 치앙마이 여자들이 이쁜 것도 모르겠다.
귓방망이 한 대 치려고 쭌이 묵는 숙소로 찾아갔는데 그놈은 이미 이틀 전 빠이로 내뺀 상태.
죽탱이를 날릴 의욕도 사라져 놈을 추적하는 것은 그만두었다.
치앙마이에서 이후 여행에서 함께할 친구들을 만났다. 폴, 댄, 엘 남자 3명과 미, 숙 여자 2명이다. 우리 6명은
치앙마이부터 줄곧 붙어 다니면서 여행을 함께 했다.
좋은 친구들이다.
이들과 치앙마이에서 일주일 정도 즐겁게 놀다가 이런 허세가 스물스물 올라왔다.
- 배반은 이번 여행의 테마다. 좋을 때 주저앉지 말고 곧장 배신하고 떠나자-
오글거리는 여행 테마.
이것이 빠이로 간다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홀로 라오스로 건너간 이유였다.
이후 라오스에서 심심해서 온갖 사탕발림으로 친구들을 소환하는데 성공.
그 사탕발림 중 하나가 바로 라오스 여행기의 핵심이랄 수 있는 한국 상남자들과 라오스 절세미녀 여대생들 간의 친목의 밤 기획이었다.
폴, 댄, 엘은 다른 거 필요 없이 이거만 보고 설레며 라오스에 왔다고 보면 된다. 이걸로 그들의 캐릭터 설명은 끝.
여자 2명 중 숙은 일정이 끝나 한국으로 갔고 미만 같이 왔다. 미는 싸고 맛있는 곳만 있으면 지옥에라도 가는 처자다.
짧지만 강렬했던 라오스 여행기의 시작은 홀로 라오스에 넘어가면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