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링 하버에 갔습니다. 부둣가답게 다양한 배들이 지나다니고 있더군요. 누가 쳐들어오는지 모르겠지만 대포 달린 군함도 있고, 수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허덕이며 나아가는 페리도 있더군요. 하지만, 무엇보다 저는 요트에 사로잡혔어요. 흰 색으로 도색한 요트가 날렵한 몸매를 뽐내며 눈 앞을 지나가는데 그 앙증맞은 자태란!! 정박해 있는 요트의 갑판위에선 시원하게 옷을 입은 사람들이 와인을 마시며 선상파티를 벌이고 있더군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훗날, 아마도 인생의 노년쯤에, 땅 위의 집을 대신하여 바다 위 요트에서 살아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요트를 타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삶에 대해서 곰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달링 하버, 로즈 베이, 왓슨스 베이, 눈길만 잠시 주고 스쳐간 항구와 해변들.
새초롬하게 떠 있는 새햐얀 요트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세상 어떤 화가도 이렇게 아름다운 흰 점을 찍을 수는 없을 거라고. 사진 한 장으로 모든 걸 설명해줄 수 있는 여행이 있는 것처럼 이 곳의 어떤 삶도 푸른 바다 위의 하얀 요트로 설명 가능할 것 같군요. 요트 위의 여생(餘生)이라.. 평생 중력에 저항하며 살아왔다면 남은 인생은 부력에 의지하며 흔들흔들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군요. 얼음에 재인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며 꽤 먼 바다로 나가볼 계획도 세워보고, 갑판 위로 딛고 선 구릿 빛깔의 탄탄한 자신의 종아리를 보며 흡족해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와인에 취해 낮잠 한 번 자고 일어나니 문제가 발생하는군요. 부두를 비추던 아름다운 석양은 기지개 한 번 하는 동안에 사라지고 사방은 곧 어둠에 들 겁니다. 저녁으로 부둣가 식당에 있는 괜찮은 닭고기 요리쯤을 먹을 수 있겠죠. 문제는 다시 발걸음을 요트로 돌려야 하는데, 은퇴까지 남은 20여 년의 로망을 끌어모아 상상해봐도, 좀처럼 그쪽으로 발이 떼지지 않습니다. 소리마저도 차가워진 검은 바닷물 위에 떠 있는 요트는, 낮의 날렵한 유랑과 자유가 아닌 그저 위태롭고 좁은 집이 되어 있을 테니까요. 똑같이 작은 집이라도 나무 냄새가 나는, 땅 위에 우뚝 박혀있는 집에서 밤을 보내고 싶어요. 한밤중에 흔들리는 갑판 위에 서면 검은 바다와 차가운 파도는 온통 인생의 환과 멸의 메타포가 되어 내게 달려들거에요. 그걸 바라보며 어떤 생각들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것보다는 단골 재즈바에서 드러머가 잘 생긴 퀄텟이 연주하는 곡을 들으며 박수를 치고 밤거리를 쏘다니다가 푹신하고 넓은, 아주 넓은 침대에서 사막여우님과 잠들고 싶어요.
요트는, 그저 가끔 동네 친구들과 한 바퀴 도는 정도로 쓸 거예요. 그걸 가질 여유가 있다면요.. 없음 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