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재로 인해 문제될 것은 1도 없더라"
출발 전, 장기간 외유임을 감안해 나의 부재로 인해 문제 될만한 일들에 대해서 차근차근 생각하고 실행하려 했으나 몇가지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첨삭 선생들에게 예약이체 할것
영화사 로고 컨펌하고 이메일로 보내기
연락할 사람들 메일 및 전화번호 확인하기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되었는데, 항목이 단촐하여 마음에 들었다. 존재감 제로로 살다보면 이렇게 홀가분하게 떠날 수도 있다.
문득 이번 여행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몇 개월간의 배낭여행이라 목적이라 할 것도 없지만, 살면서 도망치고 숨느냐 구부러진 내 욕망과 말(言)들이 여행을 통해 약간이라도 펴지는 것만큼의 소망은 가지고 출발하기로 했다. 그리 될 것이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고려해 짐을 싸기 시작하니 두 개의 배낭에 갖가지 짐이 무질서하게 한가득이다. 더군다나 이번 여행은 노트북에 카메라까지 지고 가는 여행이라 고생문이 훤하다. 지고 다니는 것은 내 어깨와 등판에 맡겨두면 될 일이지만 도난에 늘 주의해야 한다는 것은 내 몸 전체를 속박하는 일이라 내내 신경쓸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않다. 일단 18-55 미리 렌즈는 빼두었다. 16미리와 85미리 정도면 충분히 피사체를 담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16미리보다는 30미리가 아쉬웠지만, 굳이 여행을 위해 추가 구입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85미리 렌즈는 찍어보니 인물사진 외에도 많이 쓰일것 같아 무겁지만 챙겼다. 그렇지만, 사진에 얽매이지는 말도록 할 것이다. 똥손에 아이폰이면 감지덕지지.
무조건 만만디 정신으로 현재의 것만을 생각하고 즐기자...라고 생각했건만 비행기 안에서조차 방콕에 도착하여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 것과 짐을 다시 꾸리는 것에 대해 궁리를 하고 있으니 스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천성은 그렇지 않은것 같은데 요즘에는 늘 쫓겨다니고 이런 조급한 마음을 더 조급해하는 것 같다. 며칠 다니다보면 풀어지겠지. 한 사람을 정확하게 관찰하고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부모라고 했을때, 나는 조금만 넋 놓고 있거나 어떤 것에 빠지면 그게 좋아서 정줄 놓고 헤헤거린다고 타박하는 울 엄마 말씀에 기대어보면, 며칠 지내다보면 조급함은 사라지고 본래의 느긋하고 게으른 성격으로 돌아올 것이다. 하여간 방콕에서는 트레킹 전야를 충분히 즐겨야지. 물품이야 조금 없기로서니 불편한 정도일 것이고 짐은 어디에 처박혀 있건 배낭안에 '존재'해 있는 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여행 첫날 기념으로 120,000 원짜리 호텔에 묵기로 했다.통상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숙박비의 15배!! 이번 여행의 최고의 사치가 아닌가 싶었는데, 매번 출입때마다 문을 열어주기 위해 끙끙대는 벨보이를 보니 민망한 사치인가도 싶었다.
9월에 와서 만났던 태국 친구들은 대부분 홍수때문에 고향집으로 돌아간 상태라 조금은 쓸쓸하게 하루를 보냈다. 사실, 돌아다니면서 트레킹 준비에 쓸 물픔을 사느냐 바쁘긴 했다.
<날 반겨주는 태국여인....이었으면 좋으련만, 공항 입국장에 걸려있는 사진. 2006 미스 타이라는데.. 태국은 솔직히 여자들이 너무 이쁘다. 충격적일 정도로 이쁘다. 그래서 많은 남정네들이 로맨스를 위해 오지만, 정작 대부분은 노망만 나서 간다.>
방콕은 생각보다도 덥고 습했다. 몇 주전 난리났던 홍수의 직접적인 피해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밤에 숙소로 돌아가면서 쥐와 바퀴벌레를 보았다. 쥐는 그러려니 했지만, 바퀴벌레는.. 일단 사이즈가 너무 크고 등딱지가 검붉은 색이 도는 게 무섭기까지 하다. 새삼 우리 나라의 자연과 생물은 정말 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다르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