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첫 사기를 당하다"
흥분되어 눈이 떠졌다. 몇시간 후면 꿈에 그리던 네팔로 날아간다. 히말라야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거다.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작정하고 가보리라 다짐한 곳은 오로지 히말라야 한 곳 뿐이였다. 웬지 절실했다. 죽고 싶어 가는 곳도 히말라야, 살고 싶어 가는 곳도 히말라야라는 말이 있다. 사실은 내가 지어낸 말인데, 그럴듯하지 않는가? 삶과 죽음은 본디 하나일터...
배낭이 두 개라 도저히 공항철도를 못 탈거 같아, 택시를 불렀다. 어제 오늘 공항에서 호텔로, 호텔에서 공항으로 택시를 타고 갔는데, 비용만 1000바트에 육박했다. 서울에서 거리낌없이 타고 다닐 때와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나는 가난한 배낭여행자야...라는 느낌 때문일텐데, 서울에서 거리낌없이 택시를 타고 다니던 요 며칠을 생각해보면 정말 우스운 개다리소반이야기다. 하긴 서울에서의 최근 일주일간은 택시 타고 다니지 않으면 과로사할 것만 같았다.
<비행기안에서 찍은 히말라야 산군의 모습. 비행기에서 내내 졸던 사람들도 깨더니 탄성을 내질렀다.>
여튼 방콕은 친구들도 없고 적적했는데, 더 머물지 않기를 잘 했다는 생각과 함께 비행기안에서 잠이 들었는데, 깨보니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며 창쪽으로 카메라를 갖다댄다. 히말라야의 설산!! 와~와~~ 눈 내리는 날의 강아지마냥 좋아했다.
드디오 도착. 사뭇 다른 출입국관리소. 어찌어찌 통과했다.
우어~~ 태국과 다른 것은 자연뿐만이 아니구만.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호객꾼들과 구걸하는 사람들의 악다구니에 깜짝 놀랐다. 인터넷이나 책으로 들은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 갑자기 이번 여행의 활력이 샘솟았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장기간의 여행에 대한 불안감과 회의가 있었는데, 매캐한 매연으로 둘러쌓인 카투만두를 보자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좋아졌다.
공항에서 사기도 당했는데, 택시를 타기 위해 택시 창문을 기웃거리고 있으니 한 놈이 택시기사인양 다가와 가격을 불렀다. 미터기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선불인줄 알고 몇번 실랑이하다가 10달러 달라는 걸 깍아서 5달러를 주고 뒷좌석에 턱하니 앉아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돈 받은 놈이 온데간데 보이지 않는거다. 한참 기다리니 진짜 택시기사가 다가와 어디 가냐고 묻는 것이었다. 니..미...
택시안에서 나를 픽업나왔던 마누지(여행사 현지 직원)가 껄껄 웃으며 사기 당했다며 놀렸다. 씨발...당했군.. 이란 생각은 잠깐이고, 태어나서 처음 당하는 여행지에서의 사기라 묘한 기분이 들면서 여행에 대한 흥분감도 업된 느낌. 겉으로는 어리숙해보이는 외모를 지녔지만 지금껏 여행 다니는 동안 의심하고 간보고 따져보는 바람에 사기 한 번 못 당했는데, 싸게 잘 당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기분이 좋아져서 원숭이처럼 끼약끼약거리며 덜컹거리는 택시에서 촐랑댔더니 마누지가 씩 웃는다.
오후에는 여행사 사무실에서 퍼밋과 팀스 카드 (트레킹을 갈때 필요하다)를 만들고 두어 시간 타멜 거리를 둘러보았다. 카메라를 숙소에 두고 나와 사진이 없는게 조금 아쉽다. 타멜 거리는 생각보다는 컸지만, 별로 흥미로운 곳은 아니라 패스. 론리플래닛에 소개되어 있는 코브라 아저씨는 대체 어디에??
참고로 타멜 거리는 카투만두의 여행자거리. 주로 산악장비 파는 상점이 주고 그외 게스트하우스, 음식점 등이 있다.
저녁에 숙소에 돌아와보니 같은 방에 중고딩으로 보이는 청년이 한 명 있길래, 나답지않게 살갑게 인사도 하고 그랬는데, 이 놈 시키가 버르장머리 없게시리 똥씹은 표정으로 대답도 짧게짧게 하는거다. 보아하니 같은 숙소에 있는 여행온 아줌마부대 중의 한 아들인것 같은데, 중2병에 걸렸는지 반항기 가득한 눈빛으로 사람대하는 것을 보니 죽탱이를 한대 날리고 싶었다. 나한테 크게 잘못 한거는 없지만, 밉상이라 다음날 아침에 내 핸드폰 알람소리를 일부러 크게 울리게 해서 잠을 깨웠더니 짧게 혼잣말로 불평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하. 소심한 사람은 소심하게 복수하는 것 같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