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1 ; 카투만두에서 불불레까지

"치질이 도질뻔하다"

by 블랙베어


아침 일찍 내 포터가 되어줄 "씨버 (24살, 남)"가 찾아왔다. 사실 씨바라고 쓰고 읽어야 정확하다. 교과서에 힌두신중 으뜸신의 이름이 씨바 혹은 시바 신으로 적혀있으니까. 씨버도 씨바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름이다. 많은 네팔인들이 신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는다고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기겁할 노릇이겠지만. 하여튼 쌍스럽게(성스럽게?) 씨바라고 부를수는 없잖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셈이다. 이제부터 씨버라고 부르겠다. 씨버라고 불러도 이름이 참... 씨바신의 업보지 뭐.


씨버는 삐쩍 마른 체구에 키가 작은 편이었다. 씨버의 체구를 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가지고 갈 두 개의 배낭 중, 큰 배낭을 맡겼다. 그는 배낭을 받은 뒤 자신의 옷가지면 몇가지 물품까지 더 넣어 짐을 꾸린다. 그렇게 넣다보니 65리터 큰 배낭도 꽉 찼다. 패킹을 마친 뒤 미안한 마음이 생겨 두 배낭을 들어보고 큰 배낭의 짐을 좀 덜어볼까 했는데 웬걸! 내가 들기로 한 작은 배낭이 더 무거웠다. 그도 그럴것이 큰 배낭은 주로 옷가지 위주였고 작은 배낭은 랩탑과 카메라, 렌즈, 책 등 무게 나가는 짐이 다 들어있었으니. 책은 미련하게 3권이나 싸들고 갔는데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다. 트레킹 내내 총 10페이지나 읽었을려나…트레킹 첫날 밤을 제외하고는 한 자도 읽지 않았다. 사방 온 천지에 신기방기한 풍경, 소리, 냄새, 사람이 가득한데 이게 무슨 서당 똥개짓인가 싶은 생각이 똬악!


결국 무겁기만 한데다 허리밴드도 없는 작은 배낭이 내 차지. 그렇다고 쫀쫀하게 짐을 덜자고 할 수도 없는 법. 걍 주어진대로 지고 가기로 했다. 무거운 배낭 들고 다니다보면 살도 빠지고 힘도 쎄지겠지라는 되도 않는 희망을 품고. 그렇게 휘청휘청대며 걸은지 며칠 지나지 않아 내 배낭에 있는 속옷 몇개와 가이드 북등은 씨버의 배낭안으로 몰래 넣기도 했다. 찌질한 짓이었지만, 일단 살고봐야지!


원래 포터는 고용하지 않으려 했다. 걷는데 자신이 있었고, 누군가 나의 짐을 져준다는게 웬지 면구스러워서. 하지만, 현지여행사 사장님의 강력한 권유가 있었고, 결정적으로 목디스크 증세로 고생했던 시기라 포터를 고용하기로 했다. 일단 고용은 하되, 모든 일정이며 진행은 내 뜻대로 할 것이라고 못박아 두었지만, 사실 내 뜻대로 하기에는 이번 트레킹 준비가 부실한게 사실이라 별반 의미 없는 엄포반 투정반의 발언이었다. 씨버는 언제나 내 뜻을 존중해주되, 너무 무리해서 걷지 않도록 조언도 잘 해주었다. 특히 씨버가 곁에 있어 안나푸르나 산군의 여러 설산의 이름과 유래 등도 알게 되었고, 그 외 네팔의 여러 사정도 나름 이해하게 되었다. 함께 웃을 일도 많았고. 결과적으로 포터비용으로 지불한 200불 정도의 금액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이유 외에도 나름 네팔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기에, 혹여 트레킹을 처음 가게 된다면 포터 고용을 고려해 볼 것을 권한다.


아직은 다소 어색한 분위기속에 함께 아침밥을 먹었다. 씨버의 밥 먹는 속도는 정말 빨랐다. 3분이 채 안 되는 것 같다. 우걱우걱 대충 씹고 넘기는 식습관이 나와 비슷해 정감이 갔다.


식사도 했으니 본격적으로 출발!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다. 여기서 8시간 동안 차를 타고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의 시작점인 베시사하르로 가게 된다. 아침에도 여전히 매캐한 공해 가득한 카투만두였지만, 휘발유 타는 냄새가 이리 설렐줄이야.. 씨버가 표를 끊고 버스 앞으로 온다. 역시 예상했던대로 폐차해도 무방할 정도의 낡은 버스. 버스를 보는 순간, 이건 자리 싸움이다! 라는 생각에 출입문 옆쪽의 자리를 선점해 두었다.



SAM_0235.JPG?type=w1 ▲카투만두 시외버스 정류장의 아침 풍경 - 수상한 들썩임으로 흥분되는 곳


SAM_0237.JPG?type=w1 우리가 타고 간 버스 - 왼쪽이 내 배낭, 오른쪽이 씨버 배낭


SAM_0238.JPG?type=w1 로벤을 능가하는 노안의 사나이 씨버 - 얼굴값한다 싶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노련했다.
SAM_0242.JPG?type=w1 으이구! 집 떠나면 고생이야~ 개님께서 기어이 한 마디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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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_0246.JPG?type=w1 네팔 자동차의 99%는 인도 타타 회사 제품 - 지저분한듯 쿨하다!!

가는 길은 별것 없었다. 우리네 시골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결국 졸다깨다 반복하며 갔다. 5시간 이상을 달리자 조금씩 설산이 드러났다. 흥분해서 눈이 벌떡 떠졌다. 이런 나를 보고 씨버가 씨익 웃다가 창 밖을 가리키며 이것 저것 알려준다.


"오른쪽은 마나슬루, 왼쪽은 안나푸르나, 저 멀리는 내 고향…"


"오오~~그레이트! 그레이트!"


씨버는 영어, 한국어 모두 능통했는데, 처음 며칠간은 무조건 영어만 썼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한국말 하는것을 숨기고 싶었던건지…

암튼 설산을 보고 흥분하다가 다시 꾸벅꾸벅 조는 나. 그러다가 다시 깨나면 더 가까이 눈에 들어오는 설산.


"씨버!! 저거 안나푸르나~~ 와와!!"


"노노! 저건 마나슬루"


"아아~ 애니웨이, 그레이트!"


그러다가 자고 휴게소에서 들려 요기하고, 책 두 문장 읽다가 잠들고, 그러다가 일어나서 설산보고 흥분해서,


"씨버! 그레이트 마나슬루"


"노..노…저건 안나푸르나.."


요러면서 갔다.








SAM_0252.JPG?type=w1 카투만두 시내의 모습


SAM_0256.JPG?type=w1 길은 대충 이렇다 - 꼬불꼬불 울퉁불퉁


SAM_0261.JPG?type=w1 아직 설산은 까마득하지만 희미한 설면의 흰색만 봐도 내 심장은 바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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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_0266.JPG?type=w1 밥을 먹기 위해 한 번 쉬어간 곳 - 휴게소 밥 맛없기도 힘든데 여긴 레알 맛없다. 씨버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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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서 안나푸르나와 마나슬루를 정확히 구별하게 되었다. (둘다 히말라야 14좌라고 불리는 8000미터 이상의 고봉) 일단 마나슬루는 크기가 다른 두 삼각봉이 날카롭게 솟은 형태인데 비해, 안나푸르나는 다소 둔중하게 생긴 사다리꼴 모양의 산들이 어깨에 힘주고 앉아 있는 형태. 멀리서 본 마나슬루는 신령해보였고, 안나푸르나는 경외로워보였다.



네팔인들은 어쩌면 하늘 위에서 군림하며 모든 것을 주재하는 유일신의 존재를 생각해 내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있더라도 각 산에 거처하는 신만큼 숭배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신령한 설산들의 모습은 그 외의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할만큼, 그 자체로 하늘이고 신이었다. 우리네 산에는 신과 사람이 더불어 살기도하여 각 거점 (나무나 바위 등)에 신을 모셨다면, 이들은 아예 신이 거주하는 영역을 별도로 여기고 그 곳을 신성시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신성이 깃든 나무나 바위, 사당등을 훼손시키지 않으려했다면, 네팔 사람들은 신의 영역 자체에 범접하지 않으려 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특별히 신성시 하는 곳의 입산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책을 보니 안나푸르나 산군에 속해 있는 마차푸차레만 개방하면 사실상 네팔인들의 신성한 산을 모두 개방하는 셈이라고 했는데, 그들의 경제적인 문제가 맞닿아있어 내가 쉽게 가타부타 평가할 문제는 아닌것 같다.어쨌든 인간에게 등반을 허용하지 않는 산이 남아있다면 영원히 입산금지가 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에게 아무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내 인성은 비록 개차반일지 몰라도 누군가의 신성은 지켜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해가 질 무렵 베시사하르에 도착했다. 베시사하르는 안나푸르나 라운드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베시사하르가 아닌 불불레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베시사하르~불불레 구간은 차가 다니는 먼지가 많은 길이고 별반 트레킹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지루할뿐이라고 하니 나도 불불레부터 시작하기로 미리 작정했다. 씨버도 내 뜻에 따르기로 하고 불불레행 버스표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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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_0276.JPG?type=w1 베시사하르 중심가. 다소 황량한 느낌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 많은 트레커들로 활기찬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SAM_0279.JPG?type=w1 문제의 불불레행 콩콩 버스


불불레행 버스를 타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강력한 느낌이 똥꼬를 타고 올라왔다. 아..씨.. 이거 30분만 더 타면 내 똥꼬 남아나질 않겠구나. 고3때 잠깐 고생했던, 이름부터 치욕스러운 치질이 도질수 있겠구나.. 좁은 벼랑길에 어찌나 굵은 돌들이 많은지... 게다가 뒷좌석에 아무도 앉지 않은 것을 보고 냉큼 앉았는데 출발 직후부터 바로 지옥행. 버스가 한 번 나를 튕겨주면 앉아있는 자세에서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니 말 다했지.. 이러다간 똥꼬가 파열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엉덩이를 떼고 구부정한 기마 자세로 앞좌석의 시트를 손에 움켜잡고 버텨보기도 했지만, 그런 자세로는 1분도 버티기 힘들었다. 에라… 이미 버린 몸..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걍 똥꼬에 힘을 풀고 모든 걸 다 대줬다… 씨버가 실실 웃으며 말을 건넨다.


"헤이~ 토롱라 넘어서는 짚차타고 내려갈수도 있어~~"


"쉣다뻑!! 나 이제 절대 차 안 타"


1시간쯤 모든 걸 다 대주니 드디어 불불레에 도착.


엉덩이는 개떡이 되어 있었지만 그 와중에 배는 고파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피곤이 몰려와 바로 잠이 들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둘러보니 서양인 트레커들이 대부분. 한국 사람은 없었고, 그나마 동양인도 싱가폴에서 온 가족 한팀이 전부. 씨버에게 물어보니 동양인들은 짧은 여정으로 안나푸르나를 느껴볼 수 있는 생츄어리코스나 푼힐코스를 선택하기 때문에 그렇단다. 아는 것도 많은 씨버. 힌두계의 대왕신, 나의 동반자, 나의 선생님.


SAM_0281.JPG?type=w1 네팔식 만두 모모 - 우리네 만두와 비슷하다. 간장이 저 뻘건 소스로 바뀌었을뿐. 이것 외에도 이것저것 잔뜩 처먹었는데 배가 차서 정신이 돌아오고 보니 남은 게 저 만두 4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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