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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봄 Jul 04. 2021

누구나 존재, 그 자체로 사랑스럽다

아들ㅣ딸ㅣ여자ㅣ남자 ….. 그런 거 말고


#여자 1 : “애가 넷이야!”

#여자 2 : “아들 낳으려다가 그랬나 보다”



종종. 자주. 빈번하게 들어온 말이다.

아니, 6년째 듣고 있는 말이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어보고

첫째부터 넷째까지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우리 부부를 번갈아 가며 보고 … 말을 주고받는 사람들.


하다못해 이런 말까지 들어 봤다.

“아들 없으면 제삿밥도 못 얻어먹는다.

얼른 하나 더 낳아라.” (지나가시던 할머니 말씀)




이럴 때면 나는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우리 아빠는 2남 2녀 중 장남이자 장손이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결혼하면서부터 명절과 관계없이 한 달에 한 번꼴로 질릴 만큼 제사상을 차렸다.

(어느 할머니가 말씀하신 그 제삿밥 말이다)


엄마가 나를 출산했을 때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녀라 실망을 하셨다고 한다. 아빠가 장손이니까 대를 이을 아들을 원하셨던 게다. 그것도 있거니와 내 태몽이 시골집에 들어온 황소란다. 그러니 더 손자를 기대하셨던 터라 손녀라니 믿기 힘드셨나 보다. 하긴 태몽만 보면 기대감이 있었다는 건 인정한다.


여하튼 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셔서 내게 큰 기억이 없지만 할아버지는 내가 자라면서도 몰래 한 살 터울의 남동생에게만 용돈을 주는가 하면, 맛있는 반찬을 밀어주는 건 일상이었다. 왜냐하면 걘 장손이니까.


뭐 그래도 크게 섭섭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자랐다. 동생은 의리 있게 몰래 용돈을 받은 날이면 나에게 5:5 정확하게 나누어 주었고 우리 부모님은 딸과 아들을 차별하지 않으셨고 가까이에 사는 외갓집에서 나는 무한 사랑을 받고 자랐으니까.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 내가 딸을 넷 낳기 전까지는.




‘아들’에 대한 이름 모를 감정이 남아 있어서일까? 아들을 낳고 싶었다. 시부모님도 손자를 바라셨다. 짝꿍은 2남 중 차남인데 이미 아주버님 댁에는 딸이 두 명이 있었다. 그래서 시부모님도 기대가 있으셨다. 물론 나에게 압박감의 부담을 주신 건 아니다. 어쩌면 나 혼자 더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로또의 확률을 뚫고 자연 임신이 된 이란성 딸둥이까지 딸 넷을 낳고 보니 사람들이 놀라는 것도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늘 마음 한편엔 속상하기 마련이다.


얼마 전에도 아이들과 공원에 놀러 갔는데 놀라며 우리 가족을 보는 눈, 아들 낳으려다가 딸을 넷 낳았다는 말을 들었다. 6년이나 듣는 말인데도 그 말에 무디지 못하고 마음이 상해 버렸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나는 우리 딸 넷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요 녀석들이 우리 부부의 딸이라는 게 그저 감사함이다. 나를 엄마로 만들어 준, 우리 부부를 부모로 만들어 준 소중한 존재.


내가 주는 사랑보다 아마도 내가 더 사랑을 받고 있지 않을까? 맞다. 나는 딸 넷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는다. 욘석들에게 엄마인 나는 전부다. 곧 친구들에게 전부의 비중을 나눌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좋다!  

그리고 단언컨대 다섯째가 아들이라도 나는 노땡큐다! 진심 400%


아마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이 상할 수도 있다. ‘괜찮은 척’은 못하겠다.


이럴 때마다 확고해지는 마음은 나는 우리 딸들을 더 사랑할 것이고 아이들이 자신을 사랑하며 행복한 여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전심으로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내가 먼저 보여 줄 것이다. 사회적인 잣대로 남과 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그 존재를 존중할 것이다. 여자라 엄마라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 마음으로 브런치 작가도 도전했었다. 그 결과 지금 나는 내 마음을 내어 놓는다. 그리고 아이들은 엄마를 작가라 부른다. 우리 엄마 브런치 작가라며 동네방네 자랑한다.


점점 괜찮은 것 같지만 아직도 ‘남자와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 (이 외에도 알게 모르게 우리 안에 자리 잡은 고정관념이 많다) 많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지만 고정관념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누가 더 존중받는다, 누가 더 희생한다의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있는 그대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봐주면 좋겠다. 나도 노력이 필요하다. 알게 모르게 내 안에도 고정관념과 판단이 서지만 그럴 때마다 정신을 가다듬는다. 사회적 기준을 떼고 그 사람을 존재로 보려고 한다. 그럴 때 우리 모두가 더 행복해진다. 개인의 역량이 올라온다. 더 빛난다.


아이들(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면서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남자라 여자라서가 아니고,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가 아니고, 운동을 잘하고 못하고 가 아니라 그냥 한 사람으로 존재로. 반짝반짝 빛나는 행복을 느끼며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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