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보드를 만들어 놓고, 사실 자주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이루어질 거라고 믿고 보기는 했는데 쉽사리 이루어지는 것은 없으니 슬슬 지쳐갔다는 말이 맞다. '역시 시크릿은 나한테 이뤄지는 것이 아니구나'라며 다소의 실망과 함께 조금씩 잊혀 가고 있었다.
나는 상담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어느 분야나 그렇지만 상담사의 세계도 좁은 편이다. 보통은 상담사로 일하고 싶을 때에는 관련 대학원을 졸업하고, 수련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한다. 그리고, 병원, 군대, 정신보건센터 등의 공공기관에 취업을 하거나 사설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한다. 슈퍼바이저급의 전문가가 되면 수련생을 지도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나는 늘 고민을 했다. 대학원까지는 나에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후의 길은 정해진 대로만 가고 싶지 않았다. 개인상담을 위주로 하다 보니 작은 공간에서 상담을 원하는 분들만 만나기엔 세상에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였다. 그들은 마음이 힘들 때 상담을 받으면 도움이 된다는 것도 몰랐고, 오히려 상담을 받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두려워한다. 또, 막상 상담을 받고 싶어도 어디서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도 몰랐고, 50분에 몇 만 원씩 하는 상담비용도 부담스러워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건강해진다고 무엇을 얻게 되는지도 확신이 없었을 것이다.
마음 한편에는 심리상담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욕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내향적이고,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고민을 깊게 하는 나에게는 세상과의 접점을 찾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그래도 분명 이런 나의 마음과 맞닿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믿었다. 삶이 믿는 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힘은 어느 정도 자란 덕분이다.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 우연히 아는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상담 관련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좋은 상담사 추천을 부탁했고, 내가 생각났다고 하셨다. 이미 내가 원했던 일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밑미'라는 팀을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상담 플랫폼이라면 생소한 분위기였다. 숙소 플랫폼의 선구자적인 '에어비앤비' 출신이었던 밑미 분들은 본인들이 번아웃을 겪으며 마음을 돌보는 것의 중요성을 알았고, 사업인 동시에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기획단계부터 미팅을 할 때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잘 맞았고, '나'를 만나고, 느슨한 연대로 힘이 됨을 모토로 삼게 되었다. 상담사로 대중분들과 가벼우면서도 진중하게 만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장면들이 펼쳐지게 되다니.. 더 이상 허황된 꿈이 아니었다.
몇 달이면 사라질 것이라 예상했던 코로나는 생각보다 끈질겼다. 사람들은 악수조차 피해야 할 만큼 당연했던 일상이 무너지는 것에 당혹스러웠고, 큰일이 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사회적 거리를 둬야 했다. 생소했던 온라인의 세상을 오프라인 대신으로 대체해야 했다. 인생은 동전의 양면처럼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사회적 거리를 두며 혼자 지내는 시간 속에 그동안 등한시했던 마음의 이야기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밑미도 세상의 수면 위에 본격적으로 떠오를 준비를 시작했다.
차근차근 준비를 마쳐가고, 마지막 단계에서 프로필 사진이 필요했다. 밑미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멋이 살아나도록 멋지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알려주셨다. 감사하게도 내가 가장 먼저 프로필 사진을 찍게 되었는데, 약속 장소에 들어가자마자 환호성이 나왔다. 혜화동 번화가에 아늑한 한옥집이라니, 생각보다도 근사했다. 사진 찍자는 말만 들어도 얼어붙는 내향인의 내가 이 날 프로필 사진 찍기를 자연스럽게 마칠 수 있었던 건 장소와 밑미 분들의 에너지 덕분이었던 것 같다.
내심 기다렸던 프로필 사진이 드디어 메일로 도착했다. 와우, 한옥과 어우러져 카메라는 응시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분위기의 내가 보였다. 너무도 갖고 싶어 했던 스타일의 프로필 사진을 얻게 되었다.
그때부터 신이 나서 SNS에도 올리고, 카톡 프로필도 바꾸고 자랑 같지 않은 자랑의 기쁨을 누렸다. 그런데, 나와 가까운 지인께서 이런 댓글을 달아 주셨다.
"작가님, 이 사진 드림보드에 있던 사진이랑 정말 비슷한데요~"
"네? 저의 드림보드에 있던 사진요?"
얼른 드림보드 사진을 찾았다. 순간 3초는 멈춰있었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상담사의 이미지라며 잡지에서 발견하고 얼른 선택한 사진이 마치 현실이 된 듯 프로필 사진에 담겨 있었다.
내가 이 드림보드를 만들어 두지 않았어도 이런 프로필을 찍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게 이 징검다리가 있었기에 원하는 것을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더 믿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