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 버릇 고치기

반추 부작용

by Aragaya

위가 여러 개인 초식동물 중 반추 동물은 '반추위'가 있어서 1차 소화한 음식을 다시 입으로 올려와 씹습니다. 이 동물에겐 꼭 필요한 일이죠. 그런데, 사람에겐 반추 행위가 스트레스인 경우가 많아요. 지나간 일을 끄집어내 후회, 억울해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죠. 우선 잠을 푹 못 자요.


모임에 다녀온 후 '그때 딱 이렇게 받아쳐 줘야 했는데, 바보같이 왜 그냥 있었지?' 하며 '이불킥'하는 일이 나는 잦습니다. 물론, 일상에서 다반사로 생기는 소소한 '이불킥'들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이불킥이 '이불'킥인 이유

낮에는 어어어~ 하다가 대충 수습하고 지나쳤지만, 잠자리에 누워 그날 겪은 찜찜한 일을 떠올리며 분해하기 때문에 그 이름도 '이불' 킥입니다. 많은 이가 겪는 일이니 나도 창피해하진 않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못 받아친 내 성격이 하루아침에 당차고 직설적으로 바뀌진 않을 테니까요. 그냥 딱 한 번만 차고, 다음에 똑같은 사람이 비슷하게 나를 하대할 때를 대비해 문장 하나를 준비하고 연습해 보는 걸로 만족해야겠습니다.


예방: 불리한 요구(상황)에 즉시 대응하기

소소한 교우 관계가 아니라, 돈이 걸린 고객 응대에는 나도 시행착오와 연습을 거쳐 좀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내게 불리하거나 뭔가 찜찜한 요구를 받았을 때, 전화 통화가 끝나기 전에 놓치지 않고 다시 물어 명확히 해둘 필요가 분명 있습니다. 한두 번 당해 오면서 터득한 처세술이랄까요. 사적인 관계에서 좀 손해 보거나 분한 일이야, 당분간 그 친구 안 만나도 세상 무너지진 않습니다.


그런데, 꼼꼼히 짚지 않아 대충 수락하고 넘어간 고객의 요구로 며칠을 고생한 경험이 있다 보니, 이런 일 관련 '이불킥'을 예방하는 건 내 건강과 가족의 평화를 위해 훨씬 더 중요합니다('엄마, 바뻐! 비상이야,' 라고 허둥대지만, 속으론 '담엔 절대 구렁이 담 넘어갈 일은 없다'하며 이를 갑니다). 같은 프로젝트에서 유럽 언어를 하는 동료에겐 하지 않은 부탁을, 아시아 언어권에만 한 사건도 있습니다. 설마, 우리가 순해서 따지고 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걸까요? 이리저리 치이고 깨져가며 쌓아온 '짬'은 있습니다.


일하며 생기는 이불킥 예방은 일단 한 번 더 되물어 확실히 해 두는 겁니다. '이런 질문하면 내가 좀 덜 전문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초반에 1분을 더 들여서 고객 요구를 명확히 해 두면, 나중에 있을 불미스러운 일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일감을 주는 회사(고객) 입장에서도 오히려 더 편할 거라 느낍니다.


반추란 "어두운 극장에서 나쁜 영화를 자꾸 틀어서 감상하는 일"

오래전, 법륜 스님 글에서 반추에 관한 비유를 읽고 크게 반성한 일이 있습니다. 과거 아픈 일, 소위 '트라우마,' 후회스러운 일 등을 자꾸 끄집어내 되새기는 버릇을 극장에서 나쁜 영화를 틀어서 보는 일에 비유했습니다. 집에서 편하게 영화 보면 일시 정지 버튼 눌러 딴짓도 하고 화장실도 가고 하지만, 극장에서는 거대한 화면에 압도당하며 눈앞에 펼쳐지는 괴기스럽고 충격적인 장면까지 꼼짝없이 다 봐야 합니다. 나같이 표 값 아까워 나쁜 영화도 끝까지 다 보는 사람에겐 고역이죠. 영화 상영 중간에 박차고 나온 경험은 아직 없어요.


과거 경험을 재생해서 자꾸 돌려보다 보면 당시 느낀 부정적인 감정을 고스란히 다시 겪을 수 있죠. 영화 시작 전 이 영화는 '트라우마를 트리거할 수 있다'는 경고 문구가 괜히 생긴 게 아니겠죠. 어른 뇌와 어린이~청소년 뇌에서 이런 반추를 처리하는 방식은 다를 거라고 봅니다.


아이, 청소년에게 반추가 위험할 수 있는 이유

기억이란 조작이 매우 쉽습니다. 아이에게 어린 시절 사진을 보여주며 들려주는 어른의 이야기가 그 아이의 기억을 새로이 만들고, 수정 또는 왜곡할 수도 있듯이요.


사소한 사건으로 그냥 지나칠 에피소드가 어떤 귄위 있는 어른(상담사)에 의해 반추되고 강화되어 아이의 자기 인식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언가에 실패한 어린이가 부모의 무심한 반응에 좌절한 나머지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라고 느낄 수 있겠죠.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 아니라, 중간에 상담사의 개입으로 해당 사건이 부풀려지고 반추되면 뜻밖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본 아이가 반추를 통해 본인은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라는 자기 인식을 강화할 수도 있습니다.


전문가와 어른의 개입은 언제 그리고 어디까지 이뤄져야 하는 걸까요?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에 나온 상담사의 질문들이 어느덧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살인 사건이라는 극적 상황을 떼어 놓고 생각하더라도, 학교나 상담실에서 행해지는 '좋은 의도'의 질문이 어느 수위로, 어떻게 던져지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공백포함 2394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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