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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아라 Nov 15. 2022

대추나무

#대추나무


요즘 자기 전에 과거로의 여행을 자주 한다. 그냥 자연스레 생각난다. 엊그제는 pc통신 시절 이메일과 엽서를 주고받고 나중엔 전화로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누며 힘을 내 성장했던 친구 대추나무가 생각났다.


당시, 대추나무를 나보다 학교도 좋고(학벌 세대였으므로 지방대 학생은 그가 다니는 대학을 참 크게 생각했다^^;) 한참 똑똑하고 아는 것이 많은 남자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많이 모르는 것을 들킬까 멍하니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것 같다. 순전한 친구로 만나 얘기하고, 자기가 좋아하고 아는 것을 소개하고 선물하기도 했고, 절약해 배낭여행을 다니지만 부모가 원하는 성공적인 앞길을 계속 염두에 두고 고민하는 똑 부러진 아이였다. 그러다 나는 한참 연애를 하고 대추나무는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며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의 소소한 챙김에서 영향을 받아 자랄 수 있어 고맙다는 생각이 났을 때는 30대였고, 둘은 모두 직장인이었다. 마침 가까운 곳에서 일해, 만나서 고마운 마음이 늘 있다고 이야기했다. 20대 어느 때에 결혼이 사랑의 종착역이라고 우기던 대추나무와 버스에서 언쟁을 벌였던 것이 기억나냐고 물으며 크게 웃었다. 고민을 토로하며 나누던 이야기들, 학생 말고는 아무 사회적 지위도 수립되지 않은 사람으로서 나눈 무해한 이야기들이 지금도 생각나 자기 전에 빙그레 웃는다.


30대에 만나서는 일찍이부터 알고 키운 그의 야망, 가치판단, 앞을 대비하는 마음 같은 것을 듣는 일이 부담이 되어 편히 만날  없었다.  내가 식당에 취직혼란하고도 바삐 사는 동안 연락을 피하다 멀어졌다.


그런데 엊그제 ‘대추나무가 그때 속상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문득 궁금해졌다. 40대가 되어 이해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지는 것인지, 알 수 없던 지난날을 문득 이해하고 어떤 응어리 같은 것이 풀려 마음이 밝아지는 경험을 자주 한다. ‘한결 살기 편하다는 것’은 망각과 더불어 경험치와 함께 늘어난 이해력 아니, 이해력이라고 생각하는 무심해질 수 있는 능력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추나무는 자기가 그리던 삶을 살고 있을까? 찾아보니 그는 한 회계법인 지점의 대표인가보다. 장 자끄 상뻬와 칼릴 지브란, 데미안을 좋아했던 경영학과 친구는 지금은 어쩌면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기억 속의 사람들과 나눴던 귀엽고 진지한 말들이 오늘까지 웃게 한다. 그래서 굳이 연락해 지금의 그를 확인하고 싶진 않다.


노인들은 현재의 기억보다 어릴 때 기억이 더 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이가 더 들었을 때도 진지했고, 울음과 웃음, 감동이 많았던 20대를 기억하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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