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하다 문득
'주말에 일 좀 보고 시간이 남으면 천혜향을 사러 가도 좋겠어' 라며
해도 안 해도 되는 일처럼 그가 흘린 말이
'매우 천혜향을 먹고 싶다'는 말이었음을 불현듯 깨닫고
후다닥 몸의 물기를 대충 닦고 급히 나와
온라인으로 맛있음을 보장해 주길 바라며 조금 가격대가 있는 천혜양 한 박스를 주문한 뒤
의기양양하게 그를 부른다
"너의 마음을 읽었고 난 이미 천혜향을 주문했어"
그리고 깜짝 놀랐지만 감동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만끽한다
나의 급한 행동은 사랑한다이며
그의 눈빛도 사랑한다이다
엄마와 통화를 하던 중
수화기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 들려오는
'밥은 먹었니!!' 라는 아빠의 외침도
지독히 사랑한다이다
김치를 스스로 덜어먹어야 하는 식당에서
자기네들이 먼저 리필하러 가겠다며 서로 편히 먹고 있으라고 싸우는
엄마와 아들의 김치그릇 쟁탈전도 사랑이고
호떡만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와이프에게
설탕을 줄인다던 사람이 호떡을 끊지 못하면 어쩌냐고 조롱하지만
호떡가게마다 걸음을 멈추고 먹을 거냐고 물어보는 것도
사랑한다이다
네가 밥을 했으니
내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우리 서로 사랑한다이고
바쁘니까 조금 이따 전화한다고 딸이 전화를 끊은 후에
6시간이 지나 깜빡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걸지 못하는 엄마가 보는 눈치도 사랑한다이다
사랑한다고 말로 표현하는 건 언제나 백번 옳은 일이지만
그 말 없이도
그들의 행동과 행동하지 않음에서
사랑을 읽어내고 충만해하는 것은
표현이라는 아웃풋 이전에
오롯이 나의 역량에 달린 인풋
귀뿐만 아니라
눈을 바삐 움직일수록, 마음으로 그들을 살필수록
더 많이 흘러넘쳐 들어오는 것
어제도 오늘도 사실은
내가 알아채지 못한 것일 뿐
차고 넘치고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