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딩 비하인드 스토리 1.
저는 첫 사회생활을 생활 한복 브랜드에서 시작했습니다. 한복이 좋아서 시작했다기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오랜 기간 사용해 온 소재들이 가진 그 결을 더 많이 다뤄보고 싶기 때문이었는데요.
이번 작업에서는 오래간만에 한국에서 오랜 기간 사랑받아온 소재인 누빔으로 자켓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한국에는 다양한 종류의 누빔 기법이 존재하는데, 옷에 사용하는 누빔은 주로 세로 간격이 일정한 결을 사용하는 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세로결을 보고 있으면 차분하게 흘러가는 물줄기 같아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기에 정말 좋아하는 소재입니다.
누빔은 그 어원이 승복의 납의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납"이라는 단어 자체가 기워입었다는 뜻으로 세속의 번거로움을 내려놓고 불자의 길을 가기 위해 남들이 버린 천 조각을 모아 기워입은 것이라고 하는데요.
올 한 해 동안 진행한 프로젝트는 "행동"에 대한 이야기 이전에,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동안 사회에서 겪은 이기심, 질투, 경쟁심 등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 또는 다른 이의 삶을 온전히 바라보고 인정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프로젝트 취지와 잘 맞아 사용하게 되었지요.
처음 디자인을 보여주기 이전에 누빔 옷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했을 때 반응이 "스님이나 특정 종교 종사자들만 입는 옷이 아니냐?" 또는 "현재 자신의 나이보다 시간이 더 지나야 입을 수 있는 옷인 것 같다"라는 말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브랜드 소속으로 있을 당시에는 겨울만 되면 누빔 옷을 입으러 오는 사람들밖에 없었고, 저 또한 누빔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런 반응이 나오리라 생각도 못 했습니다. 또한 생각보다 누빔에 대해 낯설어하는 반응들이 많아서, 모델을 섭외하는 단계부터 어려움이 있었는데요.
물론 누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단순히 취향의 문제로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넘어온 솜을 넣은 로브 형태의 옷들은 몇 년 전부터 인기가 많은 것에 비해, 누빔으로 만든 옷에 대한 반응이 갈리는 것을 유심히 관찰해보았지요.
제가 내린 결론은 누빔이 들어간 옷 자체가 사람들의 일상에 적용되기엔 심리적 거리감이 있다는 점입니다. 즉 부담스럽다는 뜻인데요.
사람들이 가진 심리적 거리감에 대한 요인 중에는 세로결의 누빔이 가지는 독특한 분위기도 한몫을 합니다.
실제로 별이나, 다이아몬드, 넓은 간격의 결들에 비해 좁은 간격의 세로결의 경우 원단에 솜을 대고 누비게 되면 그 분위기가 무겁고 차분하게 가라앉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고급스러워지지만, 동시에 쉽게 입기 어려운 분위기를 가지게 되지요.
그래서 시중에 나와 있는 가을이나 겨울용의 어둡고, 탁한 계통(카키, 그레이, 블랙, 올리브 그린 등등)의 원단에 솜을 누비면 눈으로 봤을 때는 예쁠 수 있어도 실제 사람이 입는 옷에 적용했을 때 굉장히 중후한 분위기를 가지게 되는데요.
실제로 이런 분위기의 누빔 옷을 일반 인들보다는 특정 종교 계통이나, 전통과 연계된 분야의 일을 하시는 분들이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옷이 가진 이미지가 어느 정도 만만해야, 입는 사람 입장에서 자신의 일상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편하게 입을 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작업에서는 한국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옥색 빛이 도는 아이보리와, 진한 초록색의 원단을 사용해 보았습니다. 두 원단의 색상 덕분에 누볐을 때, 고급스러운 결은 살리되 동시에 청량하고 편안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요.
또한 초기의 1cm 정도의 좁은 간격의 결을 예상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을 변경해 2cm 간격으로 넓혀 작업을 진행했고, 이 작업을 위해 37년 동안 승복 및 다양한 종류의 누빔 작업을 해온 작업자와 함께 했습니다.
형태적인 측면에서도 후드티나, 청바지, 등의 다른 일상복들에도 잘 어울이게 디자인해보았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김고래라는 사람의 과정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7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온전히 바라보고 지지해 주신 덕분에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런 의미에서 11/4~11/22 동안 진행하는 펀딩의 제목을 "온전히 바라볼 준비가 된 사람들을 위한 옷"으로 지어 보았지요.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펀딩 사전 알람을 신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펀딩 비하인드 스토리로 다음 주 금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무탈하고 평온한 하루 보내세요.
김고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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