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에서 했던 발표
오늘 저는 이 자리에서 미학과 윤리교육이라는, 다소 거만해 보일 수도 있는 주제로 발표를 하고자 합니다. 학술제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어떤 내용으로 할지에 대해 제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습니다. 학술지에 낼 글을 발표 형식으로 만들어서 발표할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때 썼던 글이 지금의 저에게는 그렇게 큰 의욕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할 것 같아서 이 주제로 선택했습니다. 혹시라도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시민교육론에서 배웠던 정치철학과 관련된 긴 글이었습니다. 네, 듣기만 해도 벅차는 내용이죠.
그렇다면 왜 하필 미학이냐.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제 개인적인 경험을 소개해드리자면, 올해에 영화를 좀 많이 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학에 관련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질 들뢰즈나 발터 벤야민 같은 이름부터 어려운 철학자들의 책들을 조금씩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전장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를 봤는데요, 이 영화가 전쟁과 인간성에 관련된 영화라 자연스럽게 예술이 갖는 도덕교육적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또한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건 또한 개인적으로는 미학에 관한 관심을 다시금 환기시킨 사건이었습니다. 예전에 채식주의자가 멘부커상을 받았을 때 부랴부랴 한강 작가의 책을 읽었던 기억도 제가 중학교에서 고등학생 시절이었으니, 그 작품들이 은근히 이번에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치철학보다는 미학과 관련된 내용을 이 자리에서 해보는 것이 저나 여러분이나 괜찮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라는 다소 거만한 소망도 있었습니다.
일단 예술과 관련된 부분은 우리 교과서에서도 나오는 부분입니다.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에서 한 단원을 이루고 있는 예술과 대중문화 윤리라는 단원이 있지요. 우리 교과는 어쨌든 윤리를 초점으로 맞추기 때문에 예술 또한 윤리적인 의미를 기준으로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지학사 교과서에선 예술을 인간이 미적 가치를 담고 있는 작품을 창작하고 감상하는 활동이라 정의합니다. 그리고 이 예술이 도덕적 감수성을 풍부하게 하고 삶을 통찰하게 만들고, 인간과 사회가 변화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고 하군요.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예술의 정의에서 나오는 미적 가치라는 말입니다. 미적 가치? 여러분들은 이 말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저 같은 경우에 어떤 미적 가치라는 말의 이미지를 떠올려보게 된다면 자연과 관련된 것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교과서에서는 이 미적 가치와 윤리적 가치를 구분하면서 예술과 윤리가 관련된 논의들을 전개합니다. 이 미적 가치, 미적으로 경험되는 것들을 논하기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누군가는 모두가 미적이라 여기는 것들이 다 다르니 미적이냐, 비-미적이냐를 구분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미적 가치라는, 미적 경험이라는 것을 다루는 학문을 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겁니다.
철학자 벤체 나너이의 미학이라는 책에 따르면 미학의 기원이 그리스어 아이스테시스 Aisthesis, 지각이라는 의미의 말에서부터 시작해 독일 철학자 알렉산더 바움가르텐이 1750년에 미학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고 합니다. 이때 이 미학은 그 말의 어원에서도 예상할 수 있듯이 감각 경험 연구라는 의미로 쓰였다고 하네요. 우리 교과서에서는 미적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상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예술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이나, 미적 가치, 심미주의 등 여러 용어들을 활용하고 있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우리가 오늘 주되게 다루는 미학이라는 개념과도 아주 근접한 개념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벤체 나너이는 미학과 관련한 네 가지의 견해들을 검토합니다. 여러분도 지금 당장 생각해 보아도 떠오를만한 주제들입니다. 미학은 아름다움을 다루는가? 아니면 어떤 즐거움인가? 아니면 감정? 아니면 그 자체를 목적함인가? 저는 여기서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서 나오는 합목적성이나 미적 즐거움에서의 무관심적 즐거움이라는 개념을 상세히 다루진 않겠습니다. 그 지점은 추후에 제가 엄밀하게 다루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건 이번 시간이 충분하진 않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디까지나 벤체 나너이의 견해들을 나름대로 정리해서 여러분과 나눠보고자 합니다. 어쨌든 각각의 견해들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아름다움. 우리는 무엇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까요?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의 얼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장엄한 자연이나 미술관에 걸려 있는 뛰어난 작품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어떤 구분법의 기준을 제시해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방금 말한 미학의 의미인 에스테틱스가 나너이의 설명대로라면 미용실 간판에서 많이 쓰이는 것처럼 어떤 미용에 관련된 용어가 미학의 의미일 수도 있겠습니다. 미용이라 함은 어떤 것이 아름다운가에 대한 구분법을 제공해주기도 하죠. 우리는 적어도 예뻐지려고 미용실이나 피부과에 가지 않나요? 나너이는 이것을 미용실 접근법이라고 부릅니다. 이 미용실 접근법은 무엇이 미이고 미가 아닌지 구분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보면 이 구분법은 조금 고상한 것 같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힙합은 음악이 아니다, 마리화나는 악마의 작물이다, 성교는 음... 성교니까 아니다 하는 식의 설교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이러한 구분법이 고상한 것과 더불어 이 아름답거나 아름답지 않은 것에 대한 구분도 살짝 애매하다고 느껴집니다. 우리는 세상을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이라 감히 구분할 수 있을까요? 조금 거친 방법일 수 있겠습니다만 우리는 세상 모든 것들을 붉은 것과 붉지 않은 것으로 구분할 수는 있습니다. 뭐 사과, 옷 그런 것들을 보면 무엇이 붉은 것인지 붉은 것이 아닌지 구분이 가능하죠. 하지만 아름다움은 난해합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일정한 명암 조건, 혹은 다른 것들과의 일정한 인접 조건에서도 추해 보일 정도로 추한 대상은 없으며, 그런 환경에서도 아름다워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대상 역시 없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무용하게 만듭니다.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왜 그 기준을 나누려고 할까요? 나너이는 아름다움을 우리 경험의 성격을 임의로 지칭하는 플레이스홀더라 말합니다. 플레이스홀더란 임시로 대신하는 기호나 텍스트 일부를 말합니다. 영어에선 가주어 it이 플레이스홀더라는 것이죠. 형식적으로 쓰지만 그 자체론 의미가 없는 것을 뜻합니다.
다음으로 미학이 즐거움을 다룬다는 견해는 여러분도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부분입니다. 나너이는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즐거움의 개념을 자신의 말로 안도의 즐거움과 북돋는 즐거움으로 설명합니다. 안도의 즐거움은 어떤 불쾌한 감정이 사라졌을 때의 감정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배고플 때 밥을 먹으면 그 포만감 때문에 우리는 즐거움을 느끼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즐거움은 사라집니다. 불쾌함이 사라졌으니 그 순간만 즐거울 뿐이죠. 이 즐거움은 그 행위의 결과일 뿐 그 행위를 더 하도록 부추기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나너이가 말하는 북돋는 즐거움과 대비됩니다. 북돋는 즐거움을 상상해 볼까요. 사랑하는 애인과 데이트를 할 때의 즐거움은 그 자체로 즐거운 것입니다. 오히려 이 행복한 순간이 더 오래갔으면 하는 바람이 느껴지지요. 이제 곧 크리스마스이니...그 즐거움은 대부분의 연인들이 느낄법한 즐거움입니다. 미적 즐거움도 이러한 즐거움을 다룬다고 볼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미적 즐거움은 북돋는 즐거움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성교나 마약 자체도 북돋는 즐거움이니 미적으로 즐거운 것이 아닐까요? 또한 아까 전에 말한 먹는 것에 있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료를 마실 때에도 북돋는 즐거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근육작용과 그러한 기제들이 미적 즐거움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굉장히 난해한 문제로 다다르는 것 같습니다. 감정에 관한 문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술 작품을 보거나 영화를 볼 때 어떠한 감정이 드는 경험들을 우리 모두가 해봤을 경험들입니다. 하지만 이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에 대해서 정의하기 또다시 난해해지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같은 대상이라도 상황에 따라 그 감정들이 달라질 때도 있지요. 예컨대 가족들과 같이 영화를 본 것과 같은 영화를 애인과 본 상황은 확연히 다른 감정을 유발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등장하는 성교나 마약의 문제 또한 이 부분에서 매우 애매한 판단을 하게 만듭니다. 성교도 마약도 감정적인 경험이니까요. 그렇다면 그 자체로 목적하는 참여가 미적 참여라는 견해는 어떨까요? 예를 들어서 과제를 위해 소설을 읽는 것과 소설 읽는 것이 재밌어서 소설을 읽는 경험을 비교해 봅시다. 그 자체로 목적으로 하는 소설 읽기는 분명 미적 경험을 유발하는 것으로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제를 위해서 소설을 읽더라도 미적인 경험을 할 수 있지 않나요? 교과서 공부를 위해 시를 읽을 때도 우리는 그 시에 깊은 감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미학과 관련한 네 가지 견해들을 살펴본 결과 도대체 미학에서 다뤄야 할 것은 무엇인지 난감하기만 합니다. 이 자체에 관한 고민으로도 여러분이 만약 예술과 관련된 단원을 지도하시게 될 때에 아마 새롭게 보실 법한 견해들을 가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 나너이라는 철학자는 미학이 도대체 무엇을 다룬다고 말하는 걸까요? 나너이는 미학은 가치 있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석하는 방편이다. 미학은 판단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본인이 앞에서 살펴본 네 가지 견해들의 공통점을 주목하는 방식이라는 방향과 결부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무엇을 주목하느냐에 따라 나의 경험이 달라지고, 미적 경험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왜 우리가 그런 감정이 드는지, 아니면 그러한 감정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지 주목의 관점으로 살펴보면 이것이 어떻게 미적인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앞의 그림을 한 번 봐주시겠습니까? 이 그림은 브뤼헐이 그린 16세기 플랑드르 풍경화입니다. 배도 있고 나무도 있고 사람도 있네요. 그냥 좋은 풍경 같습니다. 이 그림의 제목이 이카로스의 추락이라는 걸 알기 전까지요. 이 그림을 처음 보시고 제목도 처음 들으신 분들이라면 재빨리 그림에서 이카로스를 찾으실 겁니다. 이카로스? 그런 게 있다고? 그리고 오른쪽 지점 배 아래에 이카로스의 허우적거리는 발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우리의 주목이 변환되면 별로 생각하지도 않은 풍경이 달라 보입니다. 뭔가 이카로스랑 관련이 있는 것 같은 풍경 같고 하나하나의 의미가 있어 보이죠. 나너이가 설명하는 미학은 바로 이러한 것들을 다루는 겁니다.
일단 저는 미학에 관해서는 단 한 가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너이의 견해라는 것이죠. 지금부터 저는 나너이의 이러한 주목의 방식으로 미학이 나와 타자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것이 또 윤리교육에 어떤 방향과 결부될 수 있는지에 대해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이번 학기에서 저를 고민에 빠지게 한 주제 중 하나가 어떻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타자에게 환대를 할 수 있는가였습니다. 이것은 도덕심리학이 극복해야 할 감정과 관련된 문제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감정적인 측면과 어떤 도덕 감수성과 미학은 어떻게 결부될 수 있는가? 이것이 윤리교육과에서 할법한 질문처럼 느껴집니다. 미학은 어떻게 나를 바꾸고 그리고 타자를 바꿀 수 있을까요?
전 파트에서 말씀드린 주목의 방식에서 우리의 미적 경험이 달라진다고 제가 얘기해 드렸죠. 이 미적 경험과 미적 판단은 다른 개념입니다. 나너이에 따르면 미적 판단은 서양 철학사에서 계속해서 등장한 개념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칸트의 개념이기도 합니다. 나너이가 말하길 미적 판단은 특정 대상이 아름답거나 우아하다, 흉하다, 역겹다고 언명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나너이는 미적 경험을 하는 미적 참여가 미적 판단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고상한 판단을 위해서 우리가 영화를 보지는 않죠. 평론가라면 그럴 수 있겠습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재미있고 가치 있는 걸 하기 위해, 앞서 말했던 주목의 방식으로 미적 참여를 합니다. 사람들은 다 별로라고 하는데 어릴 때 경험이나 개인적인 경험으로 나만은 이걸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여러분들도 한 가지씩 가지고 있으실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모든 게 열려 있다는 겁니다. 단순히 고상한 판단만을 이유로 우리가 미적 참여를 하거나 미적 경험을 했다고 하진 않는 거죠. 그러면 이러한 미적 경험이 우리의 취미나 판단들,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이 옳은 미적 판단인가, 옳지 않은 판단인가의 문제, 주관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는 미적 경험을 타인과 같이 나눌 수 있고 여기서 의견이 갈리거나 의견이 일치해서 놀라웠던 일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데이비드 흄의 비유를 들자면 포도주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포도주 전문가가 포도주를 마셨는데, 한 사람은 포도주에서 미묘한 가죽 맛이 난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비릿한 쇠 맛이 난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둘 중 하나는 명확히 틀린 판단일 것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포도주통에서 가죽끈이 달린 열쇠가 나오게 됐다... 뭐 이런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둘 다 옳았다는 것이죠. 물론 갑자기 포도주에서 맥주맛이 난다고 뜬금없이 이야기한다면 이건 잘못된 판단일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미적 경험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솟아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말만 한다고 그 경험이 생성되는 것이 아닌 거죠.
미적인 경험들과 경험들을 나누는 과정에서 우리가 차이가 나는 이유는 개개인이 다른 경험을 했을 것이기에 차이가 나는 것이겠죠. 반대로 일치한다면 우리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겠죠. 이렇듯 미적인 경험은 나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어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술은 어떻게, 미학은 어떻게 윤리교육과 연관이 되는 것일까요? 우선적으로 예술이 삶에 미치는 영향들을 검토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너이의 경우에는 미적 판단을 접어두고 미적 경험에 초점을 맞추려는 경향이 강한데요. 그의 책을 읽으면 이해할 만도 합니다. 평론가로서의 삶은 더 이상 영화가 분석의 대상으로만 남을 것이고 자신이 좋아했던 예술을 더 이상 향유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저는 미적 판단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향유할 때 느끼는 감정들과 우리가 주목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주목을 명확히 분석해 보는 일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저는 윤리교육에서 예술이 도구적으로 기능하는 측면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이라는 영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괴물은 학교폭력을 둘러싼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원치 않으시면 귀를 막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영화는 각각의 사정들, 학부모의 입장, 교사의 입장, 학생의 입장을 구분해서 영화를 이어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기치 못한 그들의 사정을 알게 됩니다. 학부모는 이런 점 때문에 학교에 민원을 넣었구나, 교사는 잘하려고 했지만 어떤 오해들을 겪는구나. 동성애와 관련한 학생의 문제는 이렇게 이루어질 수 있겠구나. 이 영화는 교묘하게도 관객에게 인물을 오해하게 만들고 그 오해를 허물어버리는 작업을 반복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개인적으로 초연해졌습니다.
괴물은 누구인가? 계속해서 가해자를 찾으려는 내가 괴물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여기서 주목의 방식을 적용한다면 예술이 우리 삶에서 은연중에 작동하는 것들을 잘 포착했다고 느낍니다. 그림을 볼 때 단순히 미적인 충격, 뭔지 모를 감정을 발견하면 이상한 쾌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예술인 사회를 반영하고 주목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거기서도 우리는 의의를 발견합니다. 자, 여기서 미학과 윤리교육의 연관성이 자세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미적 경험으로 인한 예술에 대한 향유도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우리는 미적 판단으로, 미학적 관점으로 예술을 판단하다 보면 윤리적인 의의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타인의 얼굴을 발견해서 그 고통을 마주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윤리 교사는 예술에 대해 가르칠 때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판단하는 기회를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교사는 아니라서 오만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감히 이 예술에 대한 단원에서 우리가 무엇을 탐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하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부족한 발표였습니다. 벤야민의 아우라와 시네마에 관한 내용도 하고 싶었지만 제 역량 부족으로 여기까지 하게 되었네요. 시간상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