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는 봄이 왔는가
당신에게는 봄이 왔는가. 나에게는 왔다.
나는 어제까지 입던 코트 대신 오돌오돌 떨 각오를 하고 얇은 바람막이를 걸쳤으므로, 나에게는 봄이 왔다. 냉장고에 두부, 호박, 감자 등속의 된장찌개 재료가 다 있는데도 겨우 한 줌 넣자고 일부러 시장에 가서 냉이를 사왔으므로, 나에게는 봄이 왔다. 봄 잠바라는 게 아침 저녁으로 춥기나 하고, 며칠 입지도 못한 채 세탁소 맡기는 게 아까워 오늘도 어제의 코트를 입고 나온 당신에게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죽은 줄로 버려뒀던 튤립 알뿌리에서 무언가 움트려는 것도 모른 채 어제의 찌개에 어제의 묵은지로 한끼를 때운 당신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봄은 이토록 정성으로 얻어내는 계절이다. 가진 거라곤 잠재력 밖에 없는 반(半)생명들의 사투로 봄이 쟁취되었듯 우리도 수고를 기울이지 않고서는 봄을 누릴 수 없다. 길고도 독했던 겨울의 끝에, 뜨겁고 요란한 여름의 앞에 익숙하고 여전한 일상을 비집고 나와 자기 자리를 챙긴 혁명의 계절. 봄은 찬바람과 더운 공기가 뒤엉킨 짙은 안개를 헤집고 나온 개벽의 계절이요, 수십 수백 개의 씨앗 중 죽기를 각오하고 앞장 선 열사의 계절이다.
봄의 시작은 투쟁이다. 그 시작에 동참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당신도 투사이다. 어제와 같은 날, 같은 계절 살기를 포기하고 정반합의 진일보를 실천하는 당신은 당신 일상의 주체요, 혁명가다.
나는 기꺼이 봄 산에 오른다. 소파에서 뒹굴면 딱 좋을 주말에 머뭇거리는 남편과 아이들 손을 잡고 봄 흙을 밟는다. 몇 발짝 가다 말고 쪼그려 앉아 민들레를 살피고 복수초를 응원한다. 겨울 꽃과 봄 꽃이 한데 어우러진 봄 산은 마치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황금어장 같다. 그물 가득 걷어 올린 어부의 감탄이 쪼그려 앉고, 허리를 숙이고, 목을 빼든 채 이어진다. 콧물을 달고 돌아 왔어도 나는 내 봄을 쟁취했으므로 나는 승리하였다.
나는 기꺼이 봄 치마도 입겠다. 다리가 휑하니 썰렁하더라도 어제의 안감바지를 과감히 벗고 연노랑 가물거리는 봄 치마를 입겠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자신의 두툼한 옷차림을 한 번 되돌아 볼 수만 있다면, 하여 집에 가는 길에 달래 한 봉지 사 들고 갈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겠다. 봄의 시작을 함께 열어가고 만끽할 동지들을 감화시키는 일은 선구자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레몬즙'이라는 말만 들어도 입에 침이 고이곤 한다. 하지만 같은 뜻의 외국어라면 아무리 보고 듣는 들 그러한 화학작용을 기대할 수 없다. 자극을 자극으로써 인식하고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는 것에 달린 것이다. 새 계절 또한 우리가 능동적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감흥의 침샘을 고이고 넘치게 할 수 있다.
레몬 색깔의 봄 치마가 당신에게 환기가 되길 바란다. 봄 기운에 동행할 의지를 고이게 하길 바란다. 옷장 정리를 하고, 먼지를 닦고, 봄동을 무치고, 산책을 하길 바란다. 겨우내 버틴 갸륵한 것들을 치하하면서, 힘든 계절 납작 엎드렸던 이웃들이 살금살금 기지개를 켜려 하는지도 살펴봐주시길. 고독과 상실로 아사한 사람은 없는지, 회복할 수 없는 내상을 입고 다시 일어서기를 저어하는 이 없는지 기왕에 먹은 수고로 마음 다해주길 바란다. 이 명실상부 위대한 시작의 계절에, 첫 불을 지피느라 솟구치는 이 온기에 모든 아궁이 모든 마음이 훈훈해지기를. 어느 집 하나 빼먹지 않고 봄의 행렬에 다시금 나설 수 있도록 조금은 남세스러운 응원도 아끼지 말길 바란다.
추운 시절을 이겨낸 스스로를 칭찬하시라. 흔해 빠진 상실에 물들지 않고, 대유행의 역병에 휩쓸리지 않고 줏대 있게 몸과 마음 붙잡은 스스로를. 나와 남을 안전하게 하느라 요란스레 삼가고 아낀 이들, 끈질지게 기다리고 희망한 이들. 순진해서도 물정을 몰라서도 아니고 우리 삶 뿌리의 생기를 살려두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역동의 전사들. 이제 새 삶을 일깨워 새 판에서 시작해볼 시간이다.
자, 다시 한 번 묻는다. 당신에게 봄이 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