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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아란 Jan 17. 2022

그날로부터


저 삔 하나로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코로나가 사람들을 집안으로 몰아넣던 시절입니다. 어린이집과 학교가 문을 닫았고, 출장은커녕 재택근무 단축근무에 삼시세끼 소리가 욕처럼 들리던 때였죠.


아이들 육아에 엄마들 허리와 손목을 갈아 넣는 건 다들 아시죠. 제일 먼저 다니던 운동부터 관두게 되는 그런 때에 말입니다.


바닥에 저 삔 하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이 머리에서 빠진 것인지, 내 손에서 놓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온종일 집에서 뛰고 구를 때이기도, 근력이며 운동신경이 떨어져 뭘 잘 떨어트릴 때이기도 하니까요. 그 삔을 주우려고 몹시 피곤하고 불량한 자세로 허리를 숙이는 순간..!!!


사실 모든 스포일러는 이미 드러난 셈이나 마찬가지죠.

그렇습니다. 허리를 숙인 순간, 투둑–으악-망해따, 의 순서로 일이 벌어졌습니다.


난생 처음의 통증이 시작되었습니다. 왜 난생 처음인지, 처음이어야 하는지 잘 알겠더군요. 두 번은 겪어서는 안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필사적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도수치료라는 것을 받게 되면서 열정적인 치료사로부터 운동 지도를 받았습니다. 일러준 동작을 집에서도 빠짐없이 이행합니다. 이후 이분과는 개인 PT로도 연을 잇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근력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간 하던 기구 운동, 펜싱 수업 모두 끊고 홈트로 전환했습니다. 책을 사 읽고, 인체 해부도를 살피고, 동영상을 참조했습니다. 둘째아이에게 책 한 권 읽어주고 나온 밤 한 시간 동안 상하체 운동을 섞어 루틴을 만들었습니다. 여행을 가더라도 이불을 깔아놓고 그날의 운동을 거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약속 지키는 데 있어 좀 답답하리만큼 철저한 것은 고백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다시는 그 고통을, 요추 4번 5번 사이에서 삐져 나온 디스크가 하반신 신경을 건드리고 인격적 소양까지 갉아먹는 그 비극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곧 만 2년이 되는 시간동안 단 하루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매일 팔천 보가량을 걷다 뛰다하는 유산소 운동과는 별개로 웨이트를 합니다. 운동 횟수와 중량, 난이도도 꾸준히 올려왔습니다. 전문가 도움없이 더 이상의 고중량은 무리라는 생각에 개인피티도 받고 있습니다. 50회 레슨을 마저 채우면 완전히 제 운동으로 프로그램 해볼 생각입니다.


번번이 시작은 쉽지 않습니다. 어쩜 이렇게 번번이 엄두가 안날까요. 그래도 일단 시작하고 나면, 두 번째 세트는 힘차게, 세 번째 세트는 가뿐히, 네 번째 세트는 뿌듯하게 밀고 나가집니다. 심지어 다섯 번째에는 아껴먹는 마음으로 꼼꼼해지지요. 오늘 어치의 운동은 이제 더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마지막 세트니까요. 


이 달달한 성취감은 내 돈 주고 반지 하나 사 끼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지요. 단단하게 쌓아 올린 자긍심은 매번의 도전에서 위력을 발휘합니다. 나는 글도, 친절도, 이타심과 유머도 강한 사람이 되어갑니다. 권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홈트를 권합니다.


정확한 자세를 배우되 정확한 복장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정확한 횟수도 정확한 무게도 없습니다. 땀이 났거나 근육통이 생겼거나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만 쓸 수 있는 용돈을 못 쓰고 잠들 때처럼 뭐라도 하지 않은 날이 찜찜하기만 하면 되겠습니다.


스스로의 고귀함을 믿고, 누군가의 엄마, 딸, 아내라는 위대한 소명에 걸맞는 건강한 마음과 태도를 갖길 바랍니다. 당신은 그럴만한 사람입니다. 충분히 건강하여 삶을 음미하고 즐겨야 할 사람입니다.


움직이세요. 오늘의 운동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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