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도쿄, 스무살 홍대

오쿠다 히데오, 스무살 도쿄

by 호압사저포기


시크릿가든? 유치해. 김범수, 대중가수 아냐? 수프림팀은 아이돌이지. 누자베스정도면 실눈 감고 들어줄 만 하고. 그래, common의 be. 여기의 베이스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어야만하는


여드름난 폭탄머리의 스무살. 내가 홍대 정문을 향해 걸어간다. 빨간 반스에 스키니진에 한껏 깃세운 더빨간 패딩. 주머니에 손 넣고 걷다가 홍문관 계단에서 자빠진건 비밀. 그건 뒤에 너도 못봤지?


2011년의 2월 중순. 대략 17일쯤 되는 날이었겠다. 예비대학이라는 걸 하는데. 펜대만 굴리던 애들, 그런 애들이 바글바글 모인댄다. 아무래도 이 몸 앞에선 한 수 접어줘야겠는데. 이래봬도 전날의 숙취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고. 하는 티를 팍팍 내고(누가 알아줬는진 모르겠지만)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같은과 학우들과의 첫 대면하던 날. 그래, 거기 와우관.


왜 그때 그 소설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와바타야스나리의 ‘설국’의 첫문장같은 날로 기억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난 입시에 실패한 거야. 기껏 3년 열심히 공부한 결과가 홍대라니. 라면서 나 자신을 자책하며 3개월을 보냈는데, 와우관에 오니 3초도 안돼 그 생각은 싹 가셔버렸다. 나만 빼고 이미 친한 것 같은 동기들. 동네 일찐 형아 누나들은 비교도 안되게 세련된 선배들. 야! 여기가 홍대구나.


라기엔 이 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 몸은 어제도 술을 이미 걸치고 왔노라.


그러니까 그 전날,(16일로 하자) 국경의 긴 터널을 가로지르며 대입을 조졌다며 자책하는 내게 전화가 왔다. 별로 반갑지 않은 동창 둘. 옆학교 여자아이들이었지만, 큰 의미는 없었고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소소한(?)비행을 일삼던 아이들. (물론 그중의 한명에게 고백 공격을 하여 사이가 소원해진 건 글을 쓰다보니 생각난 사실이다. 언젠지는 정확히 기억 안 난다. 진짜로.)


대학은 커녕 고등학교도 졸업 안(못?)한 친구들 앞에서 뻗대기란. 지금도 고개가 절로 숙어지는 그 광경. 야, 내일 나 ‘예비대학’이라는 걸 한다고. 빨리 들어가야돼. 라는 말을 하며 나는 은근 콧대를 세웠을지 모른다. 이 몸, 너희랑 놀긴 같이 놀았지만 대학은 갔다고.라며 은근한 동경심의 눈빛을 바랐을지 모른다. 그네들은 서운했을까, 비웃었을까. 아니면 웃었을까.


내 생각엔 웃어줬던 것 같다. 그날 뭔 헛소리를 뇌까리며 밤을 지새웠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다른 누구보다 날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던, 다른 출발 선상에 놓인 나를 진심으로 응원했던 그 애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이 조금은 기억날 듯 하기도.


라는 생각을 14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다시 14년 전의 17일로 가보자. 아주 시끌벅쩍한 틈에 그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는 빨간 패딩의 여드름 폭탄머리. (아무도 관심갖지 않고 쳐다보지 않지만) 나는 어제도 폭음을 했으며 니들같은 펜대하고는 별 관련이 없는 몸이니라.하면서 눈을 감고 귀를 최대한 벌려 주위 이야기를 듣는다. 왼쪽 앞의 저 선배. 얼굴따라 이름도 예쁘고. 오른쪽의 학교 동기. 벌써 학교 생활에 무르익어 여드름마냥 부러움도 터질 것 같던 그때.


이 몸은 너희에게 관심을 갖지 않노라.라며 예비대학의 하이라이트인 오후 일정은 당당히 도망쳤다.(물론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스무살이 삐꺽삐꺽 시작되었던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홍문관에서 한번 더 자빠졌는데, 그게무슨 전언같은 거였나? 하여튼 너, 못본거 맞지?)

국경의 터널을 빠져나온 나의 스무살.

돌이켜보면 14년 전 2월 16일의 아이들에게, 2월 17일의 동기와 선배들에게 덜 시니컬했다면 어땠을까.


어쩐지 사랑은 많이 했는데 그 방향이 잘못되어서 더 빛나는 스무살인 것 같기도 하고. 어둠속에 눈부시게 빛나는 휴대폰 라이트를 손으로 가릴 수 없는 것처럼.


에헴, 다들 잘 지내고 있는가요?

다시 돌아간다면 예비대학이란 걸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다시 돌아간다면 예비대학의 하이라이트인 오후 레크레이션에 최선을 다해 참가할텐데말이죠.


에헴, 그럼 다들 기억 속에 잘 지내시길. 빨간 패딩의 삐꺽삐꺽대는 나의 스무살도.

작가의 이전글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