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세계 1

1장 미제사건

by 은졍









1장. 미제사건



사진관 앞에는 레버를 돌리면 뽑기가 나오는 작은 기계가 세 대나 있었다. 근처에는 어린이집이 있었고 또 그 인근에는 주공아파트와 놀이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와 오빠의 엄마가 아직 불혹도 맞지 않았던 시절, 불과 수 년 전 영화사에 다닐 적에는 배우 제의를 받았다고 했다.




남매는 한참 생김새가 다른데 엄마도 같고 착한 것도 똑같았다. 있으라는 곳에서 얌전히 있으면서 아웅다웅 보냈다. 엄마는 사진관 이모에게 우리를 곧잘 맡긴 뒤 출강을 갔고 학식을 먹었으며, 가끔 의미를 알지 못하는 나한테다 논문을 못 썼다 하소연을 했다. 나는 유치가 빠졌을지 모르는 입으로 엄마를 위로하기도, 사진관 이모가 차려주는 작은 밥상을 비우기도, 게임기 앞에서 오빠와 격정적으로 다투기도 했다. 세 대의 뽑기를 모두 뽑기도 했고 가장 갖고 싶던 끈끈이 때문에 다투기도 했다. 내가 돌렸으니 내것이었는데, 뭐가 문제였는지 모르겠다.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동전을 누가 넣었느냐 아마 그런 문제였을까. 그건 대단히 불합리한 사건이었는데 화두가 무엇이었을까,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 살이었을까. 아무래도 우리가 연년생이니까 오빠가 일곱 살이면 나는 여섯 살이고, 내가 다섯 살이면 오빠는 여섯 살이다. 덧셈 뺄셈만 하나 하면 되는 일인데 추억 속 노란 필터가 도통 사칙연산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내가 말하고 설명하려면 대단히 복잡한 수식을 써야 할 것만 같다.


가정사란 아이가 떠올릴 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은 차라리 키 크면 알려주겠다며 새끼손가락을 걸어줘야 한다. 이부남매. 그런 것을 무던히 알릴 수 있는 부모가 세상에 있기는 있나. 나는 살며 본 기억이 없다. 그런 게 대부분 청렴하지가 않다. 내 생각이다.


세상 모든 것이 장남을 중점으로 돌아가던 새천년 초기의 다소 야만한 시대였다. 유년기 나는 뽑기 기계 앞에서, 빼앗긴 끈끈이에 분통을 터뜨리다, 차후 그 사실을 절절히 알게 된다. 사실 오빠가 그저 정정당당히 나의 것을 빼앗아갔더라면 나는 그 약육강식의 세계에 어떻게든 적자생존을 했을 것이다.


지능적으로 주머니를 털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빠를 때리거나 박박 우기고 화를 내서 가져오는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 살 위 권위를 자랑하는 아량 있는 첫째가, 동생에게 다소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베푸는 가능성도 없지 않았던 일이다. 가장 좋지 못했던 것은, 어른이 아이들의 세계에 월권을 행사하는 문제였다.


석양이 지는 사진관 앞으로 우리를 보러 오는 엄마는, 언제나 피로에 절어 돌아오는 엄마였다. 얼굴이 찌푸린 표정이었는지 밝았는지, 배경이 은행이나 낙엽이었는지는 명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추위를 타지 않던 두 아이는 티셔츠 차림이었고, 가벼운 외투로 돌아오는 엄마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가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엄마가 어디서 무얼 어떻게 하고 돌아오는 건지를 조금도 알 수 없는 나이였지만, 왜 하고 돌아오는 건지 만큼은 본능적으로 반드시 알 수 있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이 순간 우리의 맥락에서 엄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힘들었을 것이다. 모두, 존재가. 영혼 같은 것이 깃들어 있지 않은 외계인 끈끈이를 제외하고서는 모두가 괴로웠을 것이다. 그런 끈적이 따위에 너무도 매혹되어 있던 아이 둘은 여전히 다투고 있었다.


갓 퇴근하고 온, 매몰찬 양육자는 슥 보던 중 아이 하나를 골라 혼을 냈다. 그 하나의 아이는 나였다.

대학교 강단에서 인문교양을 설파했을, 가느다란 성대였다. 그때 그 목소리로 인문교양적 소양이 대물림이라도 된 것일까. 나는 벌써 태어나 던져지고 만 것이 서러웠으니까.


삼십대의 아름다운 엄마가 나를 향해 화를 낸다. 바로 나를. 잘못하지 않은 끈끈이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잘못한 오빠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한테는 울음 그치라고 하며. 설움이 복받히는데 어떻게 그칠 수가 있나. 이게 다 아빠 때문이지. 나는 아빠를 저주하지 않고서는 엄마를 사랑할 수 없는 걸까.


이모는 사진관 샷다를 내리기 전에 왔다. 우리를 발견하고서 이모는 엄마를 혼냈다.

이모는 아이 편을 잘 들었고 젊은 엄마 혼내기도 잘 냈다. 오빠를 잘못했다고 했고 은정이는 잘못 없다고 했다. 왜 애를 울리고 그러니, 내 손을 들어주셨다. 삼인의 그 사소한 세계란 해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튿날, 갖고 놀다 아스팔트에 처박혀버린 끈끈이. 나는 잠깐 화가 솟았다.

그러다 말았다. 아이는 변덕스러웠지만, 사실 그런 건 처음부터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이것은 어느 정도 내 머릿속 오피셜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내 안에서 정직하게 공식적이다. ‘나에게 그런 기억‘ 아닌 “저에게 그런 기억이었습니다.”라고 해야 올바를 것 같은 문장 같은 기억이다.


감사했어요. 온점이 찍혀 미결되었다.


이모는 공정하게, 은정이가 착해서 좀 더 예뻐하는 어른이었다. 하지만 오빠도 착한 아이였고 서로 티격태격하며 잘 지냈지 않나. 불만이야 좀 있었겠으나. 그러나, 시간은 왜 흐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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