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살면 제일 무서운 게 정전이다.
정전이 되면 모든 게 멈춘다.
수돗물도 안 나오고 전기를 쓸 수 없으니 난방도 안된다.
작년 12월 초에 기름이 떨어져 아직도 기름을 못 넣고 있는데
그래도 나는 불평하지 않는다.
뭐, 이 정도의 불편이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름배가 빨리 올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는 안 하지만
대신 정전은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그런데 오늘,
밥 먹고 설거지하고 티브이 좀 보다가
물을 데워서 머리를 감으려고 막 욕실에 들어갔는데 정전이 되었다.
그야말로 암흑천지.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보이지는 않아서 허둥지둥하다 보니 잠시 후, 불이 들어왔다.
다행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갑자기 변했다.
이렇게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쓸 수 있는 것도 고맙고,
젖은 머리를 말릴 수 있는 것도 고맙고,
난방기구를 쓸 수 있는 것도 고맙고.
아직 창밖 바람소리에 불안은 남아있지만 그래도 다행이고
무엇보다 환한 세상이 참, 고마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