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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밑줄 노트

사과상자

by 관지

아홉 살 된 어린 소년이

시장바닥에 서 있습니다.

바쁘게 소리치며 물건 파는 사람들을 신기한 듯 바라봅니다.


그러다가

이 아이의 눈이 사과장수 아주머니의 사과상자에 못 박히듯 꽂혔습니다.

너무나도 탐스럽게 익은 사과알을 보고 먹고 싶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아이의 눈은 마치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과학자의 눈처럼 빛을 내며

잘 보이지 않는 사과상자 속을 뚫고 들어갑니다.


거기

상자의 깊은 속에는 설익은 사과, 못생긴 사과를 덮고 채운 것입니다.


아이의 조그만 얼굴이 타는 숯덩이처럼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아홉 살짜리 작은 손이 사과상자를 움켜잡는가 했는데

어느새 상자는 엎어지고

거기 담겼던 사과들은 좌르르 시장바닥에 쏟아져 굴러갑니다.


사과장수 여인이 발악을 하며 아이를 붙잡고 마구 때립니다.

아이는 도망치지도 않고 여인의 욕설과 매질을 모두 받아들입니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걸쳐

흐물흐물 무너져 내리던 동구라파 유다민족의 신앙을 다시 견고하게 일으켜 세운

하시드 운동의 높은 봉우리였던 비극적인 인물.


라빠 메나헴 맨 돌의 어렸을 적 모습입니다.

그는 그 후로도 일생동안 허울 좋은 견본으로 나쁜 알맹이를 감싸는 것을 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과상자'를 둘러엎었습니다.


이 미친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냐고 누가 묻자 그는 단 한마디로 대답했습니다.


"모든 거짓에 종지부를 찍어라"




오래 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글인데 출처는 모르겠다.


브런치를 하면서 늘 사과상자 앞에 서있는 느낌이다. 좀 더 잘 보이고 싶은 욕구와

그것을 엎어버리고 싶은 욕구.


아슬아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