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이런 고통스러운 경험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지각하려는 제한된 방식에서
스스로 풀려나는 감춰진 문을 열게 될지도 모른다.
위기에서 위는 위험을 뜻하고
기는 기회를 뜻한다.
우리가 자신의 고통에 저항하거나 분노하는 대신
고통에서 좀 더 위대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러면 그러한 노력이 바로 우리의 고통을 얼마쯤이라도
재구성하는 힘을 갖게 된다
톤둡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강한 긍정적인 에너지가 고통을 예방하거나 덜어줄 수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태도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고통이 일어나는 걸 막아준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생겨나더라도
그것이 부정적인 힘이 되지 않도록 막아준다는데 있다'
타라 베넷 골먼의 < 감정의 연금술> 448쪽
내가 사는 섬에는 이런 사람들이 산다.
자신이 겪는 고통에 저항하거나 분노하는 대신
이런 날도 있지라, 하며 받아들이고
또 좋은 날도 올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
그들 속에는 나는 이런 일을 겪으면 안 된다는
잘난 오만도 없고
나는 이런 일을 당해도 싸다는 자기 비하도 없다.
그저 오는 일은 받아들이며 견디고
그러다 보면 지나간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신기하게도 또 그렇게 살아진다.
걱정하지도 않고 불평하지도 않고
그저 웃으며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살아온 날들은 힘겨웠지만 이들에게는 부정적인 기운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