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었나 보다. 온 집안에 눅눅함이 스며들고 반갑지 않은 손님, 지네도 나타난다. 며칠 전에는 밤에 누워 책을 보다가 잠깐 일어났는데, 어머나, 베개 옆에 지네가 있다. 만약 불 끄고 자고 있었으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으니 나는 그 후로도 같은 자리에서 세 마리나 더 손가락 굵기의 지네를 잡아야 했다. 암만 생각해도 그동안 물리지 않은 게 오히려 기적이다. 아니 하나님의 돌보심인가?
그리고는 오만 정이 떨어져서 침대에서 못 자고 소파에서 자다가 모기장을 주문해서 설치하고서야 그 안에 들어가서 잔다. 실정이 이러다 보니 누가 여름에 오겠다고 하면 난감하다. 살아보니 여름의 섬은 사계절 중 가장 불편하기 때문이다.
"왜 하필 여름이야?" 물으면 대답들이 한결같다."
"여름날 섬, 낭만적이잖아."
피식 웃지만 이해는 한다. 나도 안 살아봤으면 그렇게 말했을 테니까. 하지만 낭만은 허술하고 겁이 없고 때로 위험하기까지 하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낭만과 멀어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뿐일까. 하찮아 보이는 모기도 여기서는 강적이다.
첫여름이 오기 전, 모여 점심을 먹으며 내가 물었었다.
"섬에 살면서 제일 무서운 게 뭐예요?"
"모기"
"예?"
설마 했는데 진짜란다. 그리고 진짜였다.
섬마을 모기는 한번 물리면 쓰리고 아픈 게 한 달이 간다. 어쩌다 모기 물린 자리를 슬쩍 스치기만 해도 처음 물렸을 때의 그 통증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이제는 주민들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
"섬 모기 무서워, 오지 마"
섬의 여름은 습하고 뜨겁다. 창문을 열면 습기가 들어오고 닫아놓으면 펄펄 찐다. 긴 하루가 저물어 해가 질 무렵이면 다들 그런다.
"아이고, 인자 불구뎅이가 들어가네.'
그 여름이 오고 있다. 이제 이 장마가 지나가면 우리는 미역 작업을 해야 한다. 섬 주변을 배를 타고 돌며 미역을 채취하고, 미역을 간추려 모양을 내고 건조시키는 작업. 이번엔 서울에서 교회 청년들이 봉사를 오겠다고 연락이 와서 이런 애로사항들을 설명해 드리고 그래도 좋다면 오시라고 했다. 노인네들만 비글거리는 이 섬에 젊은 기운이 왁자하게 스며들면 덕분에 낭만 한 스푼 먹을 수 있으려나, 하다가도 아니 낭만이고 뭐고 지네 꼴 안 보고 모기한테나 안 물리고 무사히 지나갔으면...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