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적 면죄부와 자기 착취의 구조를 중심으로
오늘날 대중문화와 미디어 서사는 그 어느 때보다 진일보한 젠더 의식을 표방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 수동적이고 청순가련했던 캐릭터들은 자취를 감추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며 사회적 성취를 향해 돌진하는 주체적인 인물들이 스크린의 중심을 차지했다. 대중은 가부장적 굴레가 마침내 타파되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일상과 미디어 속에 깊게 뿌리내린 '시선(Gaze)'의 역학과 소비의 기저를 들여다보면 현대 사회가 직면한 기묘한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대상화의 이중잣대와 '서사적 면죄부']
타인의 육체를 대상화하여 소비하는 행위에 대해 우리 사회가 들이대는 잣대는 극단적으로 비대칭적이다. 남성이 여성의 육체를 시각적으로 소유하려는 시도는 대상의 인격을 소거하고 한낱 사물로 환원시키는 '폭력'으로 엄격하게 단죄받는다. 반면, 여성이 남성의 육체를 탐닉하거나 매체 속 인물을 향해 강렬한 소유욕을 드러내는 행위는 종종 무해한 팬심이나 로맨틱한 갈망으로 치부되며 사회적으로 쉽게 용인된다.
이러한 이중잣대의 기저에는 가부장제의 역사와 자본주의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서사적 면죄부'가 작동하고 있다. 오랫동안 가부장제는 여성의 원초적인 성적 욕망과 공격성을 철저히 금기시해 왔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여성의 소비 권력이 커지면서 이 억눌린 욕망이 대중문화를 통해 폭발하기 시작했지만, 사회는 여전히 여성의 직접적인 시각적 욕망을 투명하게 마주하기를 불편해했다. 그 결과, 사회는 여성이 누군가를 시각적으로 욕망할 때 "저것은 단순한 육체적 쾌락의 탐닉이 아니라, 관계와 서사를 향한 모성애적 혹은 낭만적 갈구일 것"이라는 편견을 덧씌워 주었다. 이것이 바로 미디어 자본이 대중의 욕망을 상품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위선적인 면죄부의 정체다.
[자기 착취의 구조와 자본의 착취]
미디어 자본의 영악함은 단지 시각적 욕망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사회의 구조적 피로감까지 교묘하게 착취하며 또 다른 형태의 모순을 만들어낸다.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현대 사회가 찬양하는 '능동성'이라는 상징적 자본은 그 반대항인 '수동성'이라는 타자가 존재할 때만 우월한 가치를 획득한다. 능동성이 삶의 고단한 기본값이 되어버린 신자유주의의 자기 착취 구조 속에서, 대중의 무의식에는 모든 책임을 내려놓고 누군가에게 온전히 의탁하고 싶은 본능적인 욕망이 자라난다. 이성적으로는 억압적인 구조를 부정하면서도, 감정적으로는 누군가 제공하는 절대적이고 안전한 보호를 갈구하는 인지부조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최근의 드라마들이 보여주는 '선택적 능동성'은 이 자본의 영악함을 증명한다. 주인공은 극 중반까지 주체성을 뽐내지만, 극복할 수 없는 위기 앞에서는 결국 압도적인 권력을 가진 구원자에게 의존한다. 미디어 산업은 이 원초적인 갈망의 도덕성을 묻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대중에게 "나는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사람"이라는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당찬 겉포장을 제공하고,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전능한 해결사를 투입하여 억눌린 수동적 욕망을 달래주는 방식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할 뿐이다.
[폭력의 등가성과 윤리적 보편성]
그러나 대상화의 본질을 윤리학적으로 해부해 보면, 미디어가 제공하는 서사적 면죄부나 카타르시스는 가해자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자기 기만일 뿐 폭력의 본질을 결코 희석하지 못한다. 철학자 칸트와 마사 누스바움이 공통으로 지적했듯, 악의적인 대상화의 핵심은 상대를 내 문제 해결이나 욕망 충족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자율성의 부정'에 있다. 가해자의 내면적 동기가 '순수한 시각적 자극'이든 '관계의 환상을 위한 서사적 몰입'이든, 피해자 입장에서는 "나의 동의나 고유한 인격적 맥락이 완벽히 무시된 채, 내 존재가 타인의 쾌락이나 기능적 자원으로 조립되고 소비되었다"는 폭력의 결과가 완벽하게 동일하다. 물리적 폭력과 불법 촬영이 심각한 범죄이듯, 순수한 팬심이나 카리스마라는 포장지 아래에서 실존 인물의 인격을 엮어내고 거세하는 자본주의적 소비자 폭력(예: 극단적 사생활 침해, 알페스 등) 역시 타인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동등한 층위의 폭력이다.
[억압을 넘어 진정한 상호 주체성으로]
그렇다면 우리는 이 거대한 미디어 기계와 위선의 사슬을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가? 특정 주체가 미디어의 표현을 선별하는 온정주의적 검열은 대중의 비판적 사고 능력을 억압하는 한계를 지닌다. 진정한 해결책은 대중 스스로 비판적 담론을 형성하는 집단 면역, 즉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를 확보하는 데 있다.
우선, 우리 사회가 부여해 온 기만적인 서사적 면죄부를 걷어내고 인간의 본연적인 욕망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여성에게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타인을 시각적으로 즐기려는 원초적인 욕망과 공격성이 존재함을 투명하게 인정할 때, 역설적으로 젠더 간의 폭력성은 감소한다. 한쪽 성별의 욕망을 억압하고 포장할 때 고착화되었던 '포식자(욕망하는 자)'와 '먹잇감(대상화되는 자)'이라는 비대칭적 권력 프레임이 붕괴하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가 서로를 욕망하고 대상화할 수 있는 투명한 주체로 무대에 설 때, 타인을 향한 시선은 일방적인 착취가 아닌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한다. 대상화는 더 이상 은밀하고 폭력적인 억압이 아니라, 상호 동의하에 서로의 몸을 바라보고 권력을 교환하는 '쌍방향적 시각 소유'이자 유희로 승화될 수 있다. 우리의 이성과 감정 사이의 기만적인 모순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소비되는 객체가 곧 타인을 소비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주체임을 모두가 인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일방적 폭력의 시대를 종식하고 누구도 일방적인 도구로 전락하지 않는 동등한 '상호 주체성'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