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을 붙인 월급을 받은 지 오래네요. 저는 홍보대행사 인턴으로 받았던 것이 첫 월급이었는데요. 인턴의 월급은 정말 작고 소중해서 남들에겐 넉넉하게 저한테는 소박하게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비싼 삼계탕 대신 기분을 낸 반계탕을 사 먹던 한여름 복날의 점심시간이 떠오르네요.
그 밖에도 여러 첫 월급이 있었어요.
회사를 옮길 때마다 그 회사에서 처음 받는 돈이 첫 월급일 테니 말이에요.
처음 저에게 떨어진 돈으로 무엇을 했냐면요.
고장 난 물건을 수리하고, 손목시계에 새 건전지도 넣었어요.
사무실에 갈 때 입을 옷과 신발을 숙제하듯 사고
오래 벼르던 어쿠스틱 기타와 디지털 피아노를 사기도 했었네요.
수습이 끝나곤 적금을 시작하고 암보험도 새로 들었고요.
공동체에 보낼 돈을 책정해보기도 했습니다.
오래 휴식하다 다시 직장생활을 했을 즈음에는
"계속 받기만 해도 된다"며 한없이 밥을 사준 친구들에게 크게 한턱냈어요. 크게 쏴도 제가 더 자주 얻어먹어 다 갚진 못했지만요. 그리고 결혼식 축의금을 조금밖에 못주었던 친구에게 "취직했다" 알리며 축의금을 추가로 더 보내기도 했어요. 제때 마음만큼 내지 못한 게 저에게도 아쉬웠거든요. 그 친구는 "취업 축하한다"며 제게 다시 뷰티 제품을 선물했고, 그렇게 주고받은 마음은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첫 월급을 받고 쓰면서 가장 마음이 좋았을 때는 '부모님께 고기를 사드릴 때'였던 것 같아요. 저는 행복이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요. 부모님이 언제고 사드실 수 있지만 제가 대접해 드릴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특히 제가 돈을 내도 부모님이 가만히 계시는 게 좋았어요. 부담스러워하시지 않는다는 뜻이니까요. 내가 잘되길 바라며 자립할 수 있도록 가장 나를 오래 기다려주는 사람들... 부모님은 아마 제가 이때 정말 행복해했다는 사실을 잘 모르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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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월급에 첫 월급을 지나고 나서는
남에게도, 저에게도 조금은 투자할 수 있는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친구들, 가족들에게 무언가 선사할 때 가장 기뻤던 걸 보면
저는 참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살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계를 유지하고 또 새로 만드는 데도 윤활유처럼 참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어떤 마음은 돈을 씀으로 표현되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경제가 어려울 때 문화생활을 가장 먼저 줄이는 것처럼
생활이 어려워지면 인간관계에 대한 지출을 줄이게 되는 것 같아요.
한 회사의 마지막 월급을 받은 지도 오래 되었을 때
돈보다 더 큰 가치를 좇느라 인색함이라는 것이 저의 주된 특징이 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곳에서 첫 월급이 들어오니 다시 구겨진 마음이 펴지더군요.
받은 만큼 주지 못해 애잔했던 관계에도 활력이 생겼고요.
돈을 벌고 가장 좋았던 건
그 관계를 궁색하지 않게 하는데 돈을 쓸 수 있다는 것.
저는 그게 가장 기뻤습니다.
아직도 월급으로 빨간 내복을 사본 일은 없습니다.
대신 빨간 내복을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빚들을 갚았어요.
나에게도 빨간 내복만큼 남들에겐 보이지 않지만 내 안에 있어 좋은 것들을 선물해 주었습니다.베개나 잠옷, 신선한 채소와 계절 과일, 운동 배우기 등으로 말이죠.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월급이 아니더라도 주체적으로 번 돈으로 누군가를 책임지는 일도 감당해보고 싶어요.
나에게만 집중된 삶이 아닌 넓은 미래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제가 이런 마음이 드는 걸 보면 첫 월급을 포함한
모든돈을 버는 일은
참 숭고한 반복 동작인 것 같습니다.
일어나고 일어나고 일어나고 걷고 앉고 뛰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참고 참고 참고 힘내고 힘내고 힘내고
아자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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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많은 시도를 통해 '처음'을 지워가는 과정입니다. 첫 해외 여행기가, 제 글쓰기의 시작이었음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