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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아주다 Jun 27. 2024

엄마의 얼굴은 마음의 거울

"거울아, 거울아. 울 엄마 얼굴 지금 얼마나 예쁘니?"

대학생 때 방학이면 고향에 내려가곤 했어요.

그렇게 부모님을 오랜만에 뵙고 나면 같이 살 때는 느끼지 못했던

엄마, 아빠에 대한 어떤 인상을 늘 받고 오게 되더군요.

그때 썼던 글을 나눠봅니다.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한국

엄마의 얼굴은

나이에 따라 늙지 않는다

기분에 따라 늙는다


웃는다는 것이 일그러지는 것 같이

마음이 괴로울 때는

한 집안의 맏며느리처럼

푸욱 늙었다가

마음 게워내 싱그러워질 때면

외할머니의 막내딸처럼 귀여워진다


오늘 본 우리 엄마는

젊고

예쁘다


아빠는 세월 따라 나이 드는데

엄마는 기분 따라 나이 든다


내가 마음이 몸보다 크게 느껴지는 것은

엄마 닮아 그런가?


오늘은 나도

예쁘고

젊다




[작가의 말]

'먹어도 먹어도 속이 허기진다'

'목이 계속 마르다'

'불쌍한 아이들 나오는 프로그램 보기 싫다'


어렸을 적 엄마는 몸으로 나타난 마음의 병을 가족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어렸던 저는 물론이고 아빠도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던 것 같아요. 아마 본인도 마음이 아파서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때의 아녀자들은 시집살이를 겪는 것이 만연했고, 뜻 모를 아픔으로 병원에 가면 모든 게 '신경성'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오던 시절이니까요. 신경을 쓰지 않는 신경을 써야 건강해질 수 있다는, 막막한 명료함을 병원비로 지불한 셈입니다.


헌데 제가 어른으로 인생을 살아갈 때, 특히 마음이 아플 때, 어릴 적 엄마가 했던 말들이 선연해질 때가 있어요.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하며 수십 년이 걸려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테면 슬픈 음악을 듣는 게 힘들어 금방 꺼버렸을 때, 엄마가 했던 "불쌍한 아이들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기 싫다"는 말을 완전히 깨달았어요. 그때서야 '우리 엄마 그때 참 힘들었었구나,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해 외로웠겠구나' 했습니다. 그래요. '이해'는 한 세대가 걸릴 수도 있는 인내심이 필요한 단어인가 봐요.


엄마는 '자신을 많이 닮은 딸'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답답할까요? 화가 날까요? 안쓰러울까요? 아니면 세월을 아끼는 방법, 현재의 질감을 느끼는 비결을 손에 더 쥐어주고 싶을까요? 이렇게 짐작해 보는 이유는, 엄마의 묵은 감정을 헤아려볼 만큼 저는 엄마를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집에 손님이 와서 안방에 박혀 있는 건 싫었지만

거실에서 엄마가 손님들과 분위기를 맞추며 크게 웃는 건 언제 들어도 좋았습니다.

그럼 40대인 그녀는 '고뇌하는 인간'에서 '귀여운 여인'이 되곤 했거든요.


그러다 대학생 때 고향에 가 이따금 부모님을 뵐 때면

아빠는 세월에 따라 나이가 드는데, 엄마가 늙고 젊어지는 것은

기분을 따라간다는 것을 선명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기분 좋게 지내고 계신 걸 보면, 저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제 앞길만 봐도 돼서 다행을 느끼다 오곤 했어요. 반대일 때는 걱정과 안쓰러움에 어렸을 때처럼 망을 부리고 까불다 왔고요.


엄마가 저를 처음 만난 나이를 넘은 지 6년이 넘었네요.

이제 저는 그녀가 지나왔던 나이를 열심히 좇고 있습니다.


만약 저도 엄마처럼, 얼굴에 마음을 투명하게 내비치는 사람이라면

지금 제 거울을 잘 닦아주어야겠습니다.

그럼 거실에 손님이 여럿 들어,

웃음을 나누고 가겠지요.

예쁘고 젊은 날을 보내겠지요.




▶ '알아주다'의 다른 이야기

청춘은 많은 시도를 통해 '처음'을 지워가는 과정입니다. 첫 해외 여행기가, 제 글쓰기의 시작이었음을 고백합니다.


20대를 갈무리한 '아프리카 여행 에세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번 보러 오세요! 당신과 공명하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저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더군요.

이 글이 당신의 삶에도
도움과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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