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엄마는 몸으로 나타난 마음의 병을 가족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어렸던 저는 물론이고 아빠도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던 것 같아요. 아마 본인도 마음이 아파서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때의 아녀자들은 시집살이를 겪는 것이 만연했고, 뜻 모를 아픔으로 병원에 가면 모든 게 '신경성'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오던 시절이니까요. 신경을 쓰지 않는 신경을 써야 건강해질 수 있다는, 막막한 명료함을 병원비로 지불한 셈입니다.
헌데 제가 어른으로 인생을 살아갈 때, 특히 마음이 아플 때, 어릴 적 엄마가 했던 말들이 선연해질 때가 있어요.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하며 수십 년이 걸려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테면 슬픈 음악을 듣는 게 힘들어 금방 꺼버렸을 때, 엄마가 했던 "불쌍한 아이들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기 싫다"는 말을 완전히 깨달았어요. 그때서야 '우리 엄마 그때 참 힘들었었구나,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해 외로웠겠구나' 했습니다. 그래요. '이해'는 한 세대가 걸릴 수도 있는 인내심이 필요한 단어인가 봐요.
엄마는 '자신을 많이 닮은 딸'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답답할까요? 화가 날까요? 안쓰러울까요? 아니면 세월을 아끼는 방법, 현재의 질감을 느끼는 비결을 손에 더 쥐어주고 싶을까요? 이렇게 짐작해 보는 이유는, 엄마의 묵은 감정을 헤아려볼 만큼 저는 엄마를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집에 손님이 와서 안방에 콕 박혀 있는 건 싫었지만
거실에서 엄마가 손님들과 분위기를 맞추며 크게 웃는 건 언제 들어도 좋았습니다.
그럼 40대인 그녀는 '고뇌하는 인간'에서 '귀여운 여인'이 되곤 했거든요.
그러다 대학생 때 고향에 가 이따금 부모님을 뵐 때면
아빠는 세월에 따라 나이가 드는데, 엄마가 늙고 젊어지는 것은
기분을 따라간다는 것을 선명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기분 좋게 지내고 계신 걸 보면, 저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제 앞길만 봐도 돼서 다행을 느끼다 오곤 했어요. 반대일 때는 걱정과 안쓰러움에어렸을 때처럼 잔망을 부리고까불다 왔고요.
엄마가 저를 처음 만난 나이를 넘은 지 6년이 넘었네요.
이제 저는 그녀가 지나왔던 나이를 열심히 좇고 있습니다.
만약 저도 엄마처럼, 얼굴에 마음을 투명하게 내비치는 사람이라면
지금 제 거울을 잘 닦아주어야겠습니다.
그럼 거실에 손님이 여럿 들어,
큰 웃음을 나누고 가겠지요.
예쁘고 젊은 날을 보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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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많은 시도를 통해 '처음'을 지워가는 과정입니다. 첫 해외 여행기가, 제 글쓰기의 시작이었음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