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운동장에도 해사한 햇볕이 들 것이다

풋살을 시작하며 | 계속 시작해 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by 알아주다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한국 인천


헬스장에서 혼자 달린 지 4개월째, 유익하지만 무료했다. 할당량을 채우는 운동이 아니라 재밌게 하는 운동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해서 찾은 것이 풋살이었다('여자 축구'를 검색했지만 '풋살'이 나왔다).

그래, 지난여름 '재밌게 뛰고 싶어서' 풋살을 시작했다.



⚽️ 처음 갔을 때

푸른 잔디에 축구공이 쏟아졌다. 어색하지만 발을 굴려본다. 조금만 뛰어도 금세 숨이 차올랐다. 첫날은 너무 힘들어서 자꾸 팔에 닭살이 돋았다. 문득 초등학교 때 잔상이 떠올랐다. 친구들이랑 뛰어논 다음 급식실 정수기 앞에서 철맛 나는 컵으로 물을 벌컥벌컥 마셨던 기억. 책상 위에 손수건으로 싸둔 페트병... 얼음이 녹을 때마다 생긴 물로 목을 축였던 기억 말이다. 이렇게 볼이 발그랗게 터질 것 같은 운동이, 초등학교 이후 처음일 정도로 오랜만이었다.



⚽️ 잘되는 커뮤니티의 비결

분위기를 알아보려고 간 첫 운동에서, 바로 다음 주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건 순전히 사람들 때문이었다. 첫날의 설렘과 마음의 소란을 숨겼지만 나는 '함께 뛰어주셨던 분들'이 꽤 마음에 들었다. 오랜만에 큰 편안함을 느꼈다.

직장이나 공동체에서는 이지컴 이지고(Easy Come, Easy Go)의 행태, 빨리 사귀고 빨리 헤어지는 모양이 만연했다. 나 역시 사람들 사이에서 진득한 마음만을 나눴던 건 아니지만 '의무만 남은 관계들, 어차피 곧 헤어질 사람들'에 지쳐 있었던 것 같다.

또 낯가림 없이 새로운 사람들과의 사귐을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텃세를 부리는 곳은 많지 않았지만 원하는 반응이 온 적도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풋살장 내 맘이 푸근한 분들이 '1을 말해도 5의 반응을 해주니, 아주 어렸을 때 친구를 사귀는 기분이 들었다. 이 분들이 먼저 쌓은 문화는 희소해서 희귀했다.

한 주 한 번! 게임이 끝나고 헤어질 때마다 카톡 단체창은 그날의 느낌과 감상, 미안함과 감사함으로 넘쳐났다. 덩그러니 혼자 두는 반응은 없었다. 상대가 먼저 얘기하고 화답을 자주 해주니, 나도 경계를 풀고 미주알고주알 나의 부분들을 풀어놓게 됐다. 조금 '튀는 발언'도 둥그렇게 감싸 반응해 주실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왔다 갔다, 상호작용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동시에 느꼈다.

잘되는 커뮤니티는 '서로 격려도 많고, 반응을 지치지 않고 해 준다'는 것을 알게 했다.



⚽️ 가장 좋았던 시간

너무 덥거나 추운 계절, 비가 오거나 미세먼지가 자욱한 날에는 실내 풋살장을 이용했다. 그 외에는 밖에서 공을 튕겼다. 내가 선호했던 장소는 야외 풋살장이었다. 그곳에는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벤치가 있었는데, 운동 후 그곳에서 땀이 식을 때까지 사람들이랑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특히 좋았다. 무용담이나 농담, 사는 얘기를 했다. 그 천천히 식게 해주는 바람이, 건물 안 에어컨 아래서 조금씩 병약해진 현대인들을 낫게 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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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를 깨운 것

풋살화랑 축구화가 다른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풋살과 축구의 룰이 다른 것도!

풋살(Futsal)은 FIFA에서 공인한 실내 축구의 한 형태로 풋살은 골키퍼를 포함해 다섯 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대결하는 스포츠이다. 수시로 선수교체가 가능하며, 보통 축구공보다 작은 규격 4호 공을 사용해서 축구보다 더 빠른 플레이를 보여준다. 경기 규칙은 대체로 축구와 비슷하다. 다만 축구에 비해 그라운드 규격이 상당히 작고, 야외가 아닌 실내에서 이루어지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축구와 다른 점들도 다소 존재한다.



⚽️ "형광노랑은 내게 자신감을 줘!"

평소엔 단정하게 입고 싶어 하지만 운동할 때는 달랐다. 풋살화를 사야 했을 때도 왜인지 꼭 형광노랑을 사고 싶었다. 형광주황도, 형광파랑도 내게 감흥을 주진 못했다. 푸른 잔디에선 오직 형광노랑만이 내게 용기를 준다. 형광노랑 풋살화를 신으면 부스터를 단 듯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고, 상대팀과 발이 엉퀼 때도 내 발이 더 잘 보이는 것만 같았다.



⚽️ 운동할 때의 성격

학창 시절 늘 무대를 동경했다. 새로 연 백화점에서 봤던 전자바이올린 연주자가, 중학교 때 있었던 댄스부가, 고등학교 때의 기타 동아리/랩 동아리가 그 마음을 촉발시켰던 것 같다. 특히 평소엔 얌전하지만 무대 위에선 부뚜막고양이가 되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부류여서'인지 더 부러웠다. 특정 상황에서 자신을 확 풀어놓을 수 있는 게 멋졌다. 평상시와 무대 위의 갭 차이가 큰 사람에게 늘 반했던 것 같다. 나는 왜 그러지 못할까? 나도 그렇게 된다면 멋있을 텐데...

풋살을 하며 확실히 인지했다, 나에게도 이미 그런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운동할 때의 나는 '다른 자아'를 꺼낸다. 웃는 낯으로 있지만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승부에의 완전한 몰입. 그때의 내 성격이 마음에 든다. 소리도 많이 지르고 발랄해진다. 적극적으로 임하고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한다. 운동할 때만큼은 해외여행에서 나를 좋은 곳에 데려다 놓을 때보다도 더 솔직한 나를 보곤 한다. 나는 그 애가 자꾸만 보고 싶어 주마다 운동을 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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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울리는 포지션

코치님이 나는 피지컬이 좋고 위치 선정을 잘한다고 해주셨다. 스트라이커 포지션에 적합하다고! 그래서 어떤 주간에는 세 골이나 넣은 적도 있다. 내가 본업을 할 때 '공격적으로' 했던 적이 있던가. '자극적인 워딩'은 모두 빼고 순한 맛으로 세기를 늘렸던 내가 아닌가. 운동을 할 때 '공격적'이라는 말이, 회사에서 전략기획팀이나 자기 일을 공격적으로 하는 사업가처럼 승리에 전진 배치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정말 적극적인 사람이 된 기분이랄까.



⚽️ 멘털이 나갈 때

승부욕이 그렁그렁하다고 말했지만, 승리보다 중요했던 건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이었다. 풋살은 내게 일상에 활력을 더해야 하는 정도로만 필요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의 부상에도 예민해졌다. 지고 있을 때보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다쳤을 때 멘털이 가장 많이 흔들렸다. 신경이 쓰여 힘이 쭉 빠질 정도였다. 사활을 걸어야 할 게임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미숙한데 이기고 싶은 마음이 실력을 압도하면 부당하게 힘을 썼다. 나로 인해 누군가의 치명적인 다침은 없었지만 기술을 잘 익혀서 나도 남도 다치지 않는 것이 중요해졌다. "우격다짐을 줄이자, 힘 빠지기 전에 힘을 빼자" 멘털이 나갈 때마다 안으로 다짐했다.



⚽️ 몸치는 두 종류

실전 게임을 하기 전에는 늘 코치님으로부터 기술을 배웠다. 이 기술을 배울 때는 꼭 춤을 외는 것 같았다. 하여 실제로 기술을 배울 때도 춤을 추는 것처럼 바로 잘 따라하진 못했지만 어쩐지 게임을 할 때는 그런대로 잘 뛰어졌다. 춤은 못 추는데 운동은 잘한다. 몸치도 이렇게 갈래가 나뉘는 것이다.



⚽️ 뛰어야 하는 이유

재밌게 뛰고 싶어 풋살을 시작했다. 그래서 '재밌는' 풋살로 한 주 부스터를 달아놓으면 다음 운동을 하는 데도 수월했다. 더불어 헬스장 러닝머신에서 '왜 뛰어야 하는지' 그 목적도 알게 됐다. 경기를 뛸 때 공을 끝까지 쫓아가기 위해서! 아무래도 이 말이 '심혈관이 좋아지기 위해서' 뛰는 것보다는 훨씬 동기부여가 됐다.



⚽️ 말에는 힘이 있다

입으로 하는 '응원'에는 실제 힘이 있다. 누군가 응원해 주면 힘이 났다. 몸을 울려 본인에게 '파이팅!'을 외칠 때도 역시나였다.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며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이 있었다.



⚽️ 재밌고 좋아하는 걸 발견한 것

현실감각을 잃지 않으려 애쓰면 좋아하는 것이 자꾸 새어나간다. 나는 1) 기타 연주하는 재미, 2) 영상 만들고 싶은 재미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더더욱 설레고 좋아하는 게 있는 마음은 소중하다. 힘을 여러 군데로 분산해 놓고 여러 곳에서 활력을 얻어야 한다. 구기종목은 나랑 잘 맞다. 잘하니까 재밌는 거다.



⚽️ 동네 친구

이사 온 후 처음으로 동네 친구를 사귀었다. 가까이 사는 분들이라 만남이 쉽고 간소하다. 그리고 풋살은 혼자 할 수 없는 운동이기에, 같이 뛰어주는 분들에게 항상 감사했다. 감사한 마음이 매번 드는 것은 다시 새로웠다. 해서 "같이 뛰어주셔서 감사하다"라는 인사를 빼놓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것이 비록 상투적인 인사였을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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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힘들 때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힘들다"

후반전으로 갈수록 달리다 보면 숨이 너무 차 "딱 죽겠다" 싶은 순간이 있었다. 그럼 그냥 허리에 손을 올리고 걷고만 싶었다. 그런데 재밌는 건 힘을 쥐어 짜내 상대를 쫓아갔을 때 웬걸?! 상대도 다리가 풀려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래서 힘들 때 한 번 더 힘을 내 상대와 붙어보는 게 유의미했다. 모두가 지칠 때는 아주 조금만 힘을 더 내도 상대와 맞먹을 수 있었다. 땀으로 알아낸 이 지점이 나에게 시사하는 바는 컸다. 운동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적용할 수 있을 터였다.

경제가 어렵단다 = 모두가 힘드니까 같이 주저 않기보다는, 한 번 더 힘을 내도 된다.

어떤 분야가 블루오션이란다 = 모두가 블루오션이라 생각하고 진입을 망설일 테니, 더 늦기 전에 한 번 더 시도해 봐도 된다.

새로 시작하는 일이 경쟁률이 세단다 = 모두가 경쟁률이 셀 것을 알고 주저할 테니, 한 번 더 시도해 봐도 된다. 나만의 평균치를 올려 실력이 쌓이면 경쟁률이란 단어가 희미해진다.

앞으로도 인생에 힘든 순간이 있을 때마다 후반전 몸으로 받았던 느낌을 다시 기억해 낼 것이다. 숨이 차서 그만하고 싶을 때 상대의 다리도 풀려있었단 사실을, 좀만 더 힘을 낸다면 넘어낼 산이었음을, 삶에 적용해보고 싶다.



⚽️ 어쩌면 무력한 사람들이 운동을 한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특유의 활력이 있다. 그들에게 탄탄한 몸의 이미지를 연상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럽다. 몸과 마음은 연결돼 있기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멘털 역시 굳셀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나를 빌어 그 반대를 생각한다. 어쩌면 약함을 알기에 운동으로 단련했을 강인함을 헤아려본다. 끝과 처음이 붙어있듯 약함과 강함은 공생한다. 나 역시 "재밌게 뛰고 싶어서"라고 유쾌하게 이야길 꺼냈지만, 사실 풋살의 시작은 편안함을 역행해야 할 만큼 무력한 날들을 깨기 위함이었다.

하여 운동을 생활화하고 육체미를 뽐내는 이들을 무례하게 짐작해 본다. 강해지기 전에 약했을 몸과 마음을, 그렇게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본 이유를.



그리고 이 많은 글을 쏟아내면서 알게 됐다.

'새 분야에 들어섦은 이렇게나 느낄 게 많은 거구나' 하고 말이다.


청춘은 많은 시도를 통해 '처음'을 지워가는 과정이다.

처음은 늘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감상을 선사한다. 그것만으로 충분한데 살아갈 힘도 준다. 지나고 나서는 무용담이 입술을 뚫고 나오고, 추억은 영원히 회자된다.

나이 듦에 따라 경험이 많아지더라도

처음을 찾듯 계속 시작해 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좋아하는 것을 기어코 찾아내 활력 있게 지내고 싶다.


그럼 내 안에 운동장에도 해사한 햇볕이 들 것이다.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한국 인천

[작가의 말]

스스로 취미가 꽤 많은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보통의 어른처럼 현실에의 과업을 해내는 것, 난제를 해결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하는 것, 새로움보다는 기존을 고수하는 것이 우선순위였습니다. 늘 꿈꾸면서 살지만 현실적인 사람도 되고 싶었어요. 꿈을 정하는 덴 몽상가(Dreamer)가 제격이지만 꿈을 이루는 데는 리얼리스트(Realist)가 돼야 마땅하니까요.


'좋아하는 것'이 많으니 그 애호(愛好)가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원래 좋아했던 것이, 흥미가 시들시들해져 제게 자극을 주지 못할 때 당혹스러웠습니다.

저는 한 번 시작하면 오래 좋아하는 데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아, 나라는 사람도 변하는구나" 알아차렸습니다.


새롭게 좋아하게 된 풋살을 통해 활력을 얻게 돼 기뻤습니다.

새로움은 새로움을 불러오던가요.

이를 계기로 시작해 보는 분야가 생겼습니다.

새 분야에서도 숨이 찰 만큼 고비가 올 때,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

'한 번 더' 힘을 내야 하는 이유를 풋살에서 힌트 얻어갑니다.




▶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은요.

작사가, 인터뷰어, 카피라이터, 시인, 작가, 콘텐츠 크리에이터, 포토그래퍼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또... 미안하다를 적게 말하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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