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밤의 생각
알밤은 사람의 마음을 다루고, 어루만지는 일을 합니다.
매주 화요일은 상담소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를 하는 시간입니다.
늦은 저녁, 함께하고 배우는 기쁨의 기대감 덕분인지 그리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다.
오늘 공부를 마치고 두런두런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 함께 일하는 선생님의 소감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상담자의 역할은 ‘할머니’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손녀가 실수로 넘어져 흙바닥에 부딪혔을 때,
흙바닥을 혼내주며 “괜찮다”라고 내편이 되어 말해주는 할머니처럼.
아픔을 탓하지 않고,
다치지 않았는지 먼저 살펴보는 사람.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동-청소년 상담을 마친 뒤 종종 떠올리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조금 더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저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시골의 정을 기억합니다.
언뜻 보기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각자의 자리를 내어주고, 때로는 채근하고 불평을 하면서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쓸모로 판단하지 않고 그냥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품어주던 모습들을 말이죠.
그런 기억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저를 돌보아주던 할머니가 떠올랐습니다.
할머니는 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잘못한 것을 모른 척하는 분은 아니셨습니다.
호되게 혼이 나야 할 때는 눈물이 펑펑 나고 할머니가 미울 정도로 혼이 났습니다(집을 나간 적도 있어요. 반항을 꽤 심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언제나 똑같은 곳에 서 계셨습니다. 제가 부족하든 아니든,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요.
할머니를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어설프게나마 조금씩 배워나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내담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런 마음을 건네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좋은 어른이란 무엇일까.
정의를 내리기엔 참 모호하고 어렵지만, 저는 ‘정’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사람, 말보다 눈빛으로 먼저 안아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죠.
막연히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 좋은 상담자가 된다는 것이 무척 뛰어난 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인격적으로 완벽해져야 한다는 압박감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조금은 답을 얻은 것 같습니다.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언가를 계속 채워 넣어서 더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따뜻해지는 일일지도 모른다고요.
아픔 앞에서, 먼저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할머니 같은 그런 너른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기쁘든, 아니든, 부족한 사람이든 아니든,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자리에서 알밤처럼 포슬포슬하게
내담자를 맞이하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