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호_건축과 마감_책잡담
학교에서 설계 스튜디오가 시작되고 이번 학기 설계 주제를 알려주었다. 이번 설계 주제는 ‘근린생활시설’이었고, 교수님은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책 목록도 같이 알려주셨다.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이 목록에 있는 책 중 하나이다. 교수님께서 이 책을 읽고, 저층부를 통해 활력을 불어넣는 설계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대학교 3학년부터 붙잡고 있던, ‘어떻게 하면 도시 한가운데에 사람들이 살 수 있을까? 인사동처럼 상가만 남은 지역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50대가 되어 ‘무지개떡 건축’이라고 답했다. 젊은 시절의 물음을 잊지 않고 결국 답을 찾아낸 저자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그리고 책 속 몇몇 문장은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책을 따라가며 내가 했던 생각들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대다수의 건물은 ‘시루떡 건축’이다. 시루떡 건축은 똑같은 떡을 여러 층으로 쌓아놓은 시루떡처럼 한 가지 용도로 지어진 건물들이다. 시루떡 건축은 사는 곳에서는 오직 살기만하고, 일하는 곳에서는 오직 일만 한다는 생각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도시의 대부분을 만들었다.
저자는 책 제목의 ‘무지개떡 건축’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도 전에 ‘시루떡 건축’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던져주었다. 당황스럽기 그지없지만, 저자의 설명은 친절하다. 그런데 나는 시루떡 건축이라는 용어를 보고 한 가지 용도로 지어진 건물들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설명을 읽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용어의 직관성은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느꼈다.
자연에 대한, 그리고 도시에 대한 태도 또한 변화하고 있다. 기성세대는 도시가 좋아서라기보다 도시가 제공하는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찾아 어쩔 수 없이 도시에 살고 있을 뿐, 기회가 되면 언제고 다시 전원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라나는 세대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태어났기에 도시 밖 어딘가에 심리적 고향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도시는 제2의 자연이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는 은퇴하고 시골에 내려가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꿈이 아닌 다른 꿈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이 꿈이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자라나는 세대들은 아직 은퇴에 대한 꿈이 없기 때문이다. 아, 그러면 은퇴하지 않는 것이 꿈이 될 수도 있겠다. 자라나는 세대들의 꿈을 구체화하고 이를 건축적으로 표현해내야 하는 것이 우리 건축가들이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르겠다.
또한 나는 이 부분을 읽었을 때 타고 있던 버스가 움직이는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이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자라나는 세대의 한 명으로서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편리함에 익숙해져 그걸 떠나보내지 못하는 나태한 인간이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말한다. ‘도시가 얼마나 편해. 나 이거 못 잊어. 시골 가면 못 살 것 같아.’ 그러나 ‘자라나는 세대의 고향은 도시이다.’라는 글을 본 나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찾은 느낌이었다. 나 자신도 모르는 도시를 좋아한 이유를 누가 말해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시를 좋아하는 건 나쁜 것이 아니라며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그건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이제 그것을 인정하고 어떻게 더 잘 살아갈지 이야기해보자고 하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모든 집에 태양열 패널이 있고, 지열을 이용해 난방을 한다는 탄소 제로 마을이 친환경적이라는 생각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탄소 제로 마을 사람들 중 상당수가 기존 도시 내에서 일하고 있어 집과 직장을 오가며 배출한 탄소량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친환경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밀도가 높아야 도시의 수평적 확산을 막을 수 있고, 사회 구성원들의 평균적인 이동 거리를 줄일 수 있으며, 그것이 좀 더 효과적인 친환경적 삶의 방식이다. 이것은 사회 전체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개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주장이 효과적일 수는 있으나, 현실적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한국 사회에 대입해보자면, 이미 수도권 밀집이 심한 상태에서 도시의 밀도를 더 높이면 지방과 수도권의 차이는 더 심해질 것이다. 물론 지방마다 밀도가 높은 도시가 있어 수도권과 지방 모두 골고루 사람들이 도시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것 또한 당장 현실로 만들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집값도 문제이다. 한국 사회에서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점을 포기하고 경기, 충청권으로 나가는 이유에는 서울의 높은 집값도 한 몫을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솔루션도 같이 찾아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동 수단의 사용에서 발생하는 탄소량에 집중해 친환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건물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교통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보다 많다. 실제 서울시의 온실가스 배출량 중 70%가 건물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사실에 입각해 봤을 때 건물의 탄소 중립보다 교통수단에 의한 탄소 배출량에 더 집중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가장 확실하게 높여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을 줄여주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을 줄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저자는 직주근접의 개념을 내세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주상복합은 직주근접의 개념과는 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 해결책으로 무지개떡 건축을 제시한다. 그전에 저자는 상업시설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지개떡 건축의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 말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도 주상복합에 사는 것에 대한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을 아파트에서 살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상가는 그냥 상가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제일 처음 접한 주상복합은 1층에 음식점, 2, 3층이 주거인 작고 허름한 건물이었다. 2, 3층 주거에는 당연히 음식점 주인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작고 허름한 건물은 편견을 갖기에 너무나도 좋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런 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 혹은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느냐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생긴 편견은 저층부는 상업시설이고 상층부는 주거인 큰 규모의 주상복합에서도 나타났다. 처음엔 이런 상가 건물에 사람이 산다는 생각조차 못 했다. 이렇게 시끌벅적하고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상가에서 어떻게 거주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있었다. 그리고 주거의 유형도 원룸이나 오피스텔일 것이라고 단정 짓고, 가족끼리는 살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상업시설에 함께 사는 것에 대한 편견은 아직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편견이라는 것을 아는 것부터가 편견을 깨는 것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다공성은 건축이 얼마나 공극, 즉 비어 있는 부분을 많이 갖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건축의 공극이란 쉽게 말하면, ‘채울 수 있으나 비워놓은 곳’ 정도로 이해할 수 있으며, 실제 이렇게 만들어놓아도 이내 사람들이 막아서 쓰는 그런 곳들이기도 하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건물의 내부와 외부가 서로 만나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다공성의 개념은 이해가 되었으나, 직접 느껴보지 않고서는 이것이 무지개떡 건축에 있어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이 부분을 읽고, 다공성의 개념을 ‘사용의 여지를 주는 곳’ 정도로 이해했다. 설계 수업을 들을 때 건축주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여지는 주는 것은 중요하다고 배웠다. 이러한 측면에서 다공성의 개념은 무지개떡 건축뿐만 아니라 모든 건축물에서 사용되면 좋은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중첩된 기하학이란 한 건물 안에 서로 다른 기하학적 체계가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기하학은 역시 서로 다른 구조 및 재료, 즉 구축술과 결합하여 각 공간 안에서의 건축적 경험을 더욱 풍부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줄 수 있다. ‘중첩된 기하학’은 ‘복합’이라는 기능적 개념에 대응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훌륭한 건축적 전략이다.
어렵다. 다공성보다 어렵다.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기보단 적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느꼈다. 여기에서 건축가의 능력이 굉장히 많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기하학적 체계와 매스, 평면, 단면, 입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설계를 해내야 한다는 말로 들렸고,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설계하면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매스와 평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스에 집중하면 평면이 아쉽고, 평면이 마음에 들면 매스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을 모두 잘 해내는 것이 중첩된 기하학의 개념이라고 느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건축가의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지개떡 건축은 저층부, 중층부, 상층부 이렇게 최소 3단계로 구성되는, 주거와 기타 기능의 복합건축을 의미한다. 각 단계의 층수에 따라 저층이 될 수도 있고 중층, 혹은 고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높거나 낮아도 3단계 구성이 아니거나 주거 기능이 빠져 있으면 적어도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무지개떡 건축의 정의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는다. 즉 무지개떡 건축은 넓은 의미에서 주상복합건축의 개념에 포함되기는 하되, 세부적으로는 차이점이 명확하다. ‘중층 고밀도 주상복합’이라는 일반 명사가 아닌, ‘무지개떡 건축’이라는 말을 굳이 새로 만들어 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드디어 무지개떡 건축이 무엇인지 저자는 설명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주상복합은 말만 주거와 상업의 복합일 뿐이지 대부분 주거 전용에 가까운 건축 유형이라고 말하며 무지개떡 건축과의 차이도 설명해준다. 이 부분을 읽으며 무지개떡 건축이 주상복합의 가장 이상적이고 유토피아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주거와 상가가 함께 있으면서 이것이 잘 상호작용되고, 집값을 올리기 위한 편법이 사용되지 않은, 거기에 더하여 건축적인 아름다움까지 갖춘 주상복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지개떡 건축이 주를 이루기 위해서는 건축주와 건축법, 건축가가 모두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 같다.
저층부는 건물이 땅과 만나는 부분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길과 바로, 혹은 가깝게 연결되는 부분이다. 건물의 1층이 그 대표적인 예지만 길에서 바로 연결되는 계단 등이 있는 경우 2층이나 3층, 심지어 지하층도 여기에 포함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길에서 바로 연결되는’이라는 말이다. 무지개떡 건축에서 이야기하는 저층부가 되려면 길에서 바로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길에서 위아래로 바로 연결되는 외부 계단과 같은 존재가 매우 중요해진다.
여기에서 가로를 활성화하는 역할로써의 무지개떡 건축의 특징이 드러난다. 교수님은 이런 내용을 중점으로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해주신 것 같았다. 무지개떡 건축의 저층부는 보행자가 건물로 들어오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상가를 1층에 두고 외부 계단을 두어 2층의 상가로 들어오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이것은 건축설계의 부분에서 행해질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건축가가 이러한 유도를 염두에 두고 설계해야 한다. 또한 1층을 안쪽으로 들여내 보행자에게 공간을 내주면서 건물로 들어오도록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1층의 면적 확보를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나는 도시적인 측면에서 보행자에게 공간을 내어준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나의 설계에서 1층의 공간을 내주기도 했다.
옥상은 점차로 도시 환경 개선의 새로운 최전선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미 건물들이 다 들어선 기존의 도시에서 더는 녹지 공간을 만들어낼 여력이 없을 때, 사람들은 눈을 들어 건물의 위를 바라본다. 옥상은 옥탑방과 함께 있을 때 그 가치가 몇 배로 높아진다. 생활공간과 인접한 옥상마당을 무지개떡 건축의 핵심적 요소의 하나로 삼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중층부에는 방문객의 체류시간이 상대적으로 길며, 길과 직접 연결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시설들이 들어올 수 있고, 상층부에는 주거가 들어오기에 좋다. 무지개떡 건축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지나칠 수도 있는 옥상에 대한 이야기도 해준다. 필자는 옥상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다. 특히 주거에 속한 옥상에 대한 경험은 아예 없다. 그러나 옥상은 매우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황홀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경험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은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옥상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옥상은 항상 철문 같은 것으로 잠겨있거나, 열려있더라도 몇몇 사람들의 흡연 구역이 되기도 하고, ‘옥상으로 따라와’라는 무서운 말도 있다. 그래서 옥상에 올라가는 것을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옥상이 마당이 되어 활발하게 이용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인상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옥탑방의 옥상 마당은 옥탑방 주인만의 옥상 마당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를 위한 옥상 마당보다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옥상 마당이 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도시 한가운데 살기 위해 고밀도의 도시에서 인간의 삶을 위한 공간들이 있는 건축을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건축 양식을 무지개떡 건축이라 명명한 것 같다. 무지개떡 건축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것 외에도 도시의 밀도, 친환경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다. 특히 고밀도의 도시가 친환경적인 삶의 시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책은 사람들에게 현재 도시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건축학도라면 한번은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책 속 내용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 개념을 시작으로 우리 도시에 대한 논의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어보고 무지개떡 건축에 대해 더 알아보기를 원한다면 이 책의 저자가 쓴 <가장 도시적인 삶 : 무지개떡 건축 답사 프로젝트>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도판출처
사진 1 | 메디치미디어 (www.medicimedia.co.kr)
게재 : Vol.20 건축과 마감, 2022년 겨울
작성 : 프로잡담러 L | 조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