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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Feb 23. 2024

짧담

20호_건축과 마감_일상잡담

기초가 튼튼한 글쓰기 - T(김준우)

기교 없이 솔직하고 당당한, 그래서 조금 투박하더라도 매력이 뚜렷한 작품은 분야를 막론하고 낭만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낭만주의와는 다릅니다). 보통 남자들에겐 크고 빠르고 시끄러운 자동차가 그렇습니다. 기름을 땅에, 매연을 공중에 뿌리며 달리고, 이웃의 귀를 터뜨리는 파괴적인 쇳덩어리에 전 세계 남자들이 열광하죠. 누군가에겐 한심하게 보일 정도로 단순하고 별거 없지만, 어쩌면 본질적인 기능에만 충실한 것을 알아보기 때문일지도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사실 댐은 낭만이 넘치는 건축물입니다. 본질적인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오직 기초만으로 지어진 거대한 벽이니까요. 표면 마감이나 장식처럼 자질구레한 치장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역시 기초가 튼튼한 게 중요하겠다 싶어, 낭만적인 글을 쓰기 위해 먼저 기초부터 다지기로 했습니다. 글의 본질은 정보의 전달이고, 정보를 잘 전달하려면 정해진 분량 속에 효율적으로 내용을 배치해야겠죠. 그래서 500자 제한을 정해봤는데 그럼 그렇지 내가 제대로 할리ㄱ



아날로그 러버 – L(조민서)

저는 설계 구상을 할 때 캐드 평면보다는 러프 평면이, 3D 모델링보다는 스케치가 더 좋습니다. 그래서 설계 수업 때 러프 평면과 스케치로 발표합니다. 그걸 보신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도가 너무 느린 거 아니야? 디지털 작업은 언제 할 거야?’ 그러면 ‘이제 해야죠’라는 말만 반복합니다. 그렇게 디지털 작업을 미루고 미루다 평면과 매스가 픽스되면 그제서야 디지털 작업을 시작합니다.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때에는 손으로 그리고 만들어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툴 숙련도와 관계없이 머릿속에 있는 형상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고, 더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손으로 하는 작업이 더 빠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다 문득 한 어른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태블릿 같은 거 안 써? 요즘 시대에 디지털 안 쓰는 애가 어딨어?’, ‘그러면 세상에 뒤처지는 거야.’라는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지털을 쓰는 것은 세상에 앞서나가는 것 혹은 발 맞춰나가는 것이고, 아날로그는 세상에 뒤쳐진 것일까? 물론 절대 디지털을 쓰지 않겠다는 생각은 세상에 뒤쳐진 것이 맞겠죠. 그러나 디지털만 쓰는 것이 세상에 앞서나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고, 그것을 알고 상황에 맞게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설계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병행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가 설계한 건물은 디지털 세계가 아닌 아날로그 세계에 만들어지는데, 디지털 작업만으로 아날로그 세계에 지어지는 건물을 예측할 수는 없으니까요.



사람에 대한 의식의 흐름 - F(박소영)

사람마다 뿜어내는 분위기는 모두 달라요.

비슷하게 보여도 분명히 다른게 느껴져요.

우리는 그걸 어떤 식으로 느끼고 있을까요?

생각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건

필체, 그림체, 말일 수도 있어요.

어릴땐 친구들과 필체를 비교하며 놀았어요.

어느 순간부터 인지 모르게 필체를 본 기억이 줄어들었네요.

그래도 다행인 건 건축을 할 때는

스케치를 볼 수 있다는 것…?

볼 때마다 같은 건축물, 대상을 그려도

다 다른 그림이 나와요. 그걸 보는 것도 재밌어요.

내가 인식하지 않던 관점으로 바라보기도 하니까요.

지금 내 앞에 보이는 건물을 한번 그려볼까요?

혹시 여러분들은 어떻게 그렸을까요?  



회원님이 이런 게시물을 3초 더 오래 봤습니다 - T(김준우)

건축 공부를 위해 아무리 다양한 건축물을 찾아본다 해도, 소련 시절의 버스 정류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될 일이 있을까? 20세기의 공산국가가 뭘 남겼든 별로 관심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아마 소련의 건축물이 궁금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알고리즘’은 나도 몰랐던 내 흥미를 예측하여, 하트나 팔로우를 누르지 않아도 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점점 자주 보여준다. 나는 그저 피드를 내리다 특이한 건축물을 조금 더 오래 훑어봤을 뿐인데, 유럽을 여행하던 사진가가 발견한 독특한 소련의 유산들을 난데없이 방구석에서 발견한다. 자꾸 나를 맞히려 드는 알고리즘에 소름이 돋다가도, 점점 더 흥미로운 발견을 기대하는 자신을 보며 오히려 내가 맞춰지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 instagram@soviet_busstops  



색안경 - P

자문자답 Memo

Q1. 골목길은 한국적인(국가성을 정의할 수 있긴 한가?)것인가? 

 : 외국에 거주한 적이 없으니 알길이 없다. 해외 도시 풍경 사진만 참고해보면 한국의 오솔길, 골목길이 그리 특별해 보이진 않는데. 교토의 일정하고 적막한 길, 도로포장, 교통수단이 다니는 풍경, 높아도 2-3층 높이의 주택-주차공간이 하나씩 있다.-이 감싼 골목길은 분명 한국의 길과는 다르다.


Q2. 구불지고 길이며 건물로 둘러싸여 있으면 모두 골목길인가? 어느 정도가 정다운 골목길의 너비인가?  애초에 골목길은 정다운가? 

: 산책, 작은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오프라인의 만남 등을 건축 프로그램으로 중요하게 다룬다면 ‘골목길’이라는 공간은 실체를 가진 건축에서 추상적인 개념과 달리 구체적인 무언가로 환원할 수 있어서, ‘골목길’은 한국 정서에서 소주제로 이야깃거리가 된다. 감상적으로 덧붙여본다면, 오목조목 나 있는 길과 산업화 시기의 발전상이 보이는 오돌톨톨한 벽, 거친 콘크리트 바닥 마감, 틈 사이에 쌓여진 먼지 속에 작은 발을 내린 새싹 등의 골목길 풍경은 저예산과 도시미화가 아직 중요한 사안이 아닐 때의(2000년대 초에 들어서 도시경관에 대한 관심이 심화되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건축 고려 요소이기도 하다. 그것이 한국성을 가지고 있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기에는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많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도시건축 문화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교수님 답변 참고. 굽이지고 주름이 잡힌 길은 물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서울엔 개천, 강, 개울, 물길이 많았다고 한다. 시간의 흔적이 적층되었다는 점에서 물길이었던 길은 도시 환경의 역사적 맥락 파악에 있어 중요한 가치(지금은 비록 못생기고 편하지 않은 길이더라도)를 가진다.         

    

왜 광장은 열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광장의 사전적 정의는 그렇지 않은데 

어찌 되었든 골목길이 ‘밀접한 거리의 우연성’, ‘이웃간의 소통’, ‘사용자 중심’, ‘친근감’을 내포하는 단어로 변모하면서, 집단이 모이는 ‘광장’은 다소 차가운 공간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그 이미지와 구도는 권위주의와 산업화를 비판하려는 20세기의 영화가 만들어낸 것일 수도, 단순한 이분법적인 단어 선택이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소규모 커뮤니티를 배제하는 듯한 거대한 공터를 볼 때) 실제 쓰임새가 그런 인상을 만들어낸 것 같다. 


-광장은 거대한 골목길로 정의할 수 있다.

-광장은 열려있을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판옵티콘 같은 기능이 있는 것처럼 보이면 안된다. ( ex. 아파트 놀이터 ) 

-광장의 사전적 정의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넓은 빈터나 뜻이 모이는 자리이다. 


   

  


게재 : Vol.20 건축과 마감, 2022년 겨울

수집 : 프로잡담러 L | 조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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