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좀은 힘들어요.
본 투 비 내향인
-샘은 엠비티아이가 뭐예요?
십여 년 전 처음 검사를 하던 때만 해도 수많은 성향 검사 도구 중 하나였던 엠비티아이는 요즘은 마치 예전 혈액형을 묻던 것처럼 맹복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라떼는 말이야, 혈액형으로 성격을 추측하곤 했어~). 그것이 조금은 불편하고, 검사 결과를 말하면 그 잣대로만 나를 볼 것 같아 결과를 말하기를 꺼려왔다. 또 내 ISTJ라는 성향은 남들이 보기에 지루하고 사무적인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어(사실, 편견이 사실이긴 하다) 떳떳하게 먼저 말하지는 않았다. 좋은 말로 칭하면 '세상의 소금'형 인간. 소금처럼 두루 쓰이며 제 할 일을 묵묵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듣기도 하지만, 동시에 몰개성적이고 창의성이 부족하며 감정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박한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중학교 담임 교사로 일하면서 나는 수시로 가면을 쓰고 있다고 여겨왔다. 원래의 나는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내 사람들'이라고 칭한 이들 외의 타인에게 관심이 크지 않으며 내게 주어진 일을 완수하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하지만 교사, 더더욱이나 여자중학교 담임 교사가 되면서부터는 원래 성향대로 살기란 어려웠다. 내게 요구되는 역할이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 여중에 와 본 주변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다 다정했다.
-같은 말을 해도 어쩜 저리 다정하게 할 수 있지?
-저렇게까지 하나하나 물어보고 챙겨야 하는 것일까? 참나...
-아니 생일을 왜 챙겨줘? 생일은 가족과 함께지.
나로서는 어리둥절한 일이었다. 좀 과하다고 할 만한 관심과 보살핌이었다. 직전 학교는 남학교였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남학생들에게 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 웃음을 삼가고, 지시적이고 단답형 지시를 주로 하며, 교과 수업만 제대로 하는 것에 최선을 다했는데!! 여중의 교사에게는 완전히 다른 역할이 주어졌다. 그리고 여중에서 일한 지 근 5년째, 나는 어느새 '여중화'되어있었다.
-선생님 엠티티아이는 E와 F가 있을 줄 알았어요!!
-사실 수업하는 모습과 협의회 때의 모습이 너무 달라서, 선생님이 학생에겐 다른 모습을 보이고 싶으신가 보다고 생각했어요.
-와, 너 말 너무 매끄럽게 잘해서 요즘 무슨 말하기 강의 다니는 줄 알았어.
외향적이고 감정이 풍부한 사람인 줄 알았다는 학급 학생들의 말이나, 원래의 모습인 협의회 때 모습과 수업에서의 모습에 갭이 크다는 교생샘의 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말을 듣고, 나의 체화된 가면을 인지했다. '외면화된 모습'의 가면이 너무 습관이 되어, 이제는 가면을 쓴다는 의식도 없이 원래와 다른 모습으로 '연기'하며 살아가는 수준이 되었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내 원래 에너지만큼 쓰면서 수업하면 왠지 대학교의 노교수처럼 아주 차분하게 수업이 진행될 테고, 그럼 학생들을 다 재우지 않을까? 또 내향적인 원래의 모습일 때보다 외향적인 모습일 때 사람들이 날 더 편안하게 느끼고 환대한다는 것을 느낀 이후로, 원래의 모습을 내보이는 것이 두려웠다. 내향인인 담임은 애들에게 별로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한켠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여중의 담임 교사이자 국어교사에게 기대되는 모습을 철저히 연기했다. 학급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그래서 원래 모습보다는 활달한 모습으로 다정함을 연기하며 그들을 챙겼다. 어쩌면 육아를 하다 보니 그 보살핌 성향이 학교에서도 이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게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 찬찬히 뒤돌아 보니, 이제는 그다지 그 연기가 힘들지 않다. 연기인지, 그냥 내가 원래 이런지 분간이 안 가게 되었다.
정체성이란 바뀌지 않는 듯하지만 또 바뀐다
첫 엠비티아이 검사 이후 십칠 년만에 다시 검사를 했다. 시간도 많이 흘렀으니 검사 결과도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여전히 ISTJ.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는군 하며 수치를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상당히 큰 변화가 있었다. I/E(내향/외향)의 달라진 수치가 특히 달라졌다. 스무 살 때의 나는 I가 그래프 끝까지 치우쳐진 극 내향인이었다. 혼자 있는 것이 너무도 좋았고,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울렁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올해의 나는 I의 수치가 꽤 낮았다. E쪽으로 뚫고 가진 못했지만, 상당히 E에 가까워진 I 점수를 보며 나의 '본투비 내향인'으로서의 정체성도 바뀐 것일까 생각해 본다.
사회 생활을 하고 밥벌이를 하고 나이를 먹고 아이를 키우며 성숙해진(닳아버린) 것일까. 필요에 의해 내향성을 철저히 숨기고 연기하며 살아온 것일까 자문해 보았다. 몇 년 전에는 후자라면 좀 슬프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뭔들 무슨 상관이랴 싶다. <내향인의 행복>, <QUIET> 같은 책도 찾아 읽고, 심리상담 전공인 친구에게 나같은 사람은 직업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고 울면서 상담하기도 했건만, 그런 시간을 지나 지금은 내향인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내 직업에 그리 중요한 변인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향인이라서 교사를 해도 될지 묻는 후배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괜찮다고, 그런데 초반엔 좀 힘들 수 있다고. 그런데 나는 내향인이면서 외향인을 연기해서 힘들었던 것인데, 반드시 나처럼 외향성을 연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내향인인 정체성을 인정하고 그냥 아이들을 대했어도 아이들은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았을까...지금은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어쩐지 선생님과 이야기하면 편하고 어떤 이야기든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해준 아이들의 말을 떠올리며, 내 안의 내향성이 혹시 여기에 기여한 것일까, 고개를 갸우뚱해 본다.
필요에 의해 내향성을 숨겨온 것이든, 흐른 시간과 경험이 나를 자연스럽게 변모하게 만든 것이든, 난 내 변화가 조금 기껍고 신기하다. 아이 엄마들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말을 주도하는 것을 느끼고 자제하면서 조금 웃었다.
-안돼, 여긴 교실이 아니야. 말하지 마! 여기선 교사인 걸 들켜선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