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춘기를 겪은 자들은 타인의 사춘기를 이해한다
-선생님도 사춘기가 있었어요?
-응, 있었어. 그냥 사춘기 말고 대사춘기.
이렇게 질문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때는 대학교 2학년. 아니 대학교 입학 이후 내내 나는 그다지 안녕하지 못했다. 숨막히게 공부하던 고등학생에게 대학이란 '파라다이스'와 같은 곳이었다. 무한한 자유와 가능성이 있는 곳, 지금과 달리 아름답고 새로운 내가 있는 곳, 다양하게 탐구하고 불꽃 튀기는 연애도 하고, 그렇게 눈부신 졸업장을 지니고 사회로 나가는 곳.
그러나 대학이 과연 그런 곳이던가. 네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은 대학 이후로 연기하라며, 대학을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묘사하던 어른들에게 왜 내게 거짓말을 했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대학은 스케치북의 흰 공간이었다. 아무도 나를 구속하지 않고 규제도 없었지만 그것이 되려 무섭다는 것을 곧 알았다. 초반 자유를 만끽하던 내가 정신을 차리고나서 생각한 것은 이 무구속이 너무 무섭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중고등학교라는 곳을 좋아했다. 정해진 규칙과 일과가 있으며, 내가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이 분명한 곳 말이다. 대학은 정반대의 공간이었다. 그 말은 내가 어떻게 계획을 짜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지는 곳이라는 말이기도 한데, 나는 그 곳에 적응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축이었다. 뭐 그게 대학교의 문제였겠는가. 나를 제외한 주변 사범대 친구들은 모두 대학에 완벽히 적응한 듯 보였으니.
사범대란 어떤 곳인가. 대저 선생을 꿈꾼다는 자들은 참으로 성실했다. 보통 대학교에 입학하면 흐트러지기도 하기 마련인데 과에 그런 친구들은 없어 보였다. 역시 학생들의 출결을 책임지는 충실한 예비 교사의 모습이라 할 만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고등학생의 마음으로 똑같이 공부를 하다가 서서히 공부를 놓았다. 과제를 빠트리고 수업도 가지 않기 시작했다.
난 좋은 대학교에 운좋게 입학했다. 수능에서 최약 과목이던 수학 문제를 찍어서 두 개나 맞히고, 우주의 운이 작용하여 평소보다 15점 가까이 수능 점수가 잘 나왔다. 그렇게 운 좋게 입학한 대학교에서 나는 제일 열등생이었다. 잘난 친구들, 선배들의 모습에 기가 죽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보아도 보통이 겨우 될까말까 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절망했다.
훌륭한 대학에서 만난 똑똑한 사람들. 지금 생각하면 그 또한 복이었지만 당시 어린 나에겐 그것이 몹시 괴로웠다. 좁은 집단에서 잘난 줄만 알고 살아왔던 지난 시간을 뒤로 하고 이 많은 사람들 중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은 뭔가를 잘해볼 의욕을 떨어뜨렸다. 열심히 했는데 안 되었다는 생각을 하기 싫어서였는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기 시작했다. 대학교 2학년의 성적은 형편없었다. 과 선배는 내 성적을 보더니 사범대 역사상 여학생이 이런 성적을 받은 것은 네가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왜 그랬냐고? 중고등학생 때에 사춘기라고 불릴 만한 것을 겪은 적이 없던 나는 뒤늦은 사춘기를 맞이한 듯했다. 그것도 조금이 아닌 대사춘기의 시대를 말이다. 자취를 하던 나는 집에 칩거했다. 집에 웅크리고 앉아 드라마 따위를 보거나 만화책을 보거나 하면서 시간을 흘려 보냈다. 휴대폰을 켜놓고 싶지가 않아 매일 끄고 지냈다. 세상에서 아무도 나를 찾는 사람이 없었으면 했다.
연락이 안 된 나를 걱정한 친구가 소방서에 신고를 해서 소방관들과 함께 자취방에 들이닥친 밤, 친구를 붙잡고 내내 울었다. 나도 이러고 싶지가 않은데 방에서 나가질 못하겠다고. 방만 나가면 문제 있는 내가 드러날 것 같았다. 여기 좁은 공간에 숨어 있다보면 괜찮아질줄 알았는데 더 나빠지기만 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 정신과 의사가 진단하면 '대학 부적응', '학습 이탈로 인한 무기력 확산, 우울 증대, 의욕 부진' 정도의 진단명일 텐데, 그 안에서 나는 혼자였다.
나중에야 내 사정을 안 엄마 정숙 씨는 말했다.
-네가 당장 학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대학 공부만 하면 되는데 뭐가 그리 힘들었니? 배가 불렀구나. 배가 불러 나는 병이다.
스스로도 무수히 했던 말들. 힘들 상황이 아닌데도 힘들어서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스스로 외에는. 당시 읽던 소설 '병신과 머저리'에서 환부 없이도 아플 수 있다는 말을 한 인물이 있었다. 소설 속 인물의 말처엄 환부가 없는데도 아팠다.
그 시간들이 까마득한 과거가 된 지금, 나는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가끔 내 대학교 이야기를 하곤 한다. 살다보면 감기처럼 우울이 오기도 한다고. 내 마음을 항상 잘 지켜보고 소중히 하고, 혼자 힘으로 안 될 때는 주변에 도움을 청하라고. 너희도 갑작스럽게 무기력함이, 우울이 밀려올 수 있는데 그걸 이상하다고 여기며 자책만 하지말고 잘 이겨내길바란다고. 어느새 바닥을 치고 올라오게 되니 스스로를 너무 한심하게 여기지 말라고.
중고등학교 때까지 완벽한 모범생이었으며 수업시간에 조금도 자는 모습을 삼 년 내내 보이지 않았던, 일탈이 조금도 없던 나는 대학 시절 어두운 시간을 지나고나서 일탈에 대해 관대해졌다. 그럴 수도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규칙과 일과를 벗어나고 그저 학교가 싫은 아이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과거 나를 통한 공감적 이해였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의 일탈에 관대한 교사가 되었다. 어긋나는 학생들에게 포용도가 높은 선생이 된 것으로 그 시간의 쓸모를 찾아본다. 안 그랬다면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119에 신고해줬던 친구도 교직에 있다. 친구는 가끔 교실에서 내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준다고 했다.
-샘 친구 중에 대학생 때 매일 수업에도 안 나오고 과제도 안 내고 연락도 안 하고 집에 꽁콩 숨어있기만 한 친구가 있었어. 히키코모리였던 거지. 근데 웃긴 건 그 친구가 고등학생 때는 엄청 성실한 범생이었단 말이지? 인생에는 지랄 총량의 법칙 같은 게 있나봐. 누구나 그런 구덩이에 빠진 것 같은 날도 생기는 법이지.
-샘 친구분 지금 뭐하세요?
-교사.
-그게 뭐예요~
지금은 멀쩡히 교사가 되었다는 말에 친구의 학생들은 그게 뭐냐고 어이없어했던 모양이다. 그렇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난 개과천선했지. 그런 사람도 교사가 되었으니.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늘 마음 보살피기를 열심히 하자고 권한다. 지금 너무 힘들어도 있다 보면 또 멀쩡한 모습으로 살게 될 수도 있으니까. 인생은 또 그러다가 나락으로 빠지기도 하지만, 계속된 나락은 없다는 것을 알고 나니 또 무섭지 않더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