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로 몇 점의 사진들이 영사된다. 그리고 그 사진을 보는 사람들, 곧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나간다. <김군>의 서사는 사진 속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말을 통해 ‘김군’이라는 인물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이 탐색의 이유는 지만원의 주장에 있다. 지만원은 기하학적 분석으로 사진 속 인물들을 광수(북한군)라고 명명하며 앞서 찾고 있던 김군 역시 제 1광수로 지목한다. 이에 당시 사진 속에 존재했던 인물들은 이 터무니없는 주장에 반발한다. ‘김군’을 찾는 과정은 지만원의 주장을 부정하며 당시 사진 속 시민들의 근거를 뒷받침하게 된다.
이러한 탐색의 내러티브는 선형적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인물들의 증언과 과거의 사진들이 교차되며 시간을 넘나들게 된다. 앞선 지만원의 주장은 이 당시 사진 속 인물들의 시간을 부정하며 멈춰버린다. <김군>의 목적은 사진 속 ‘김군’을 찾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시간을 흐르게 하는 것이다. <김군>의 시간성은 공간을 보여주는 것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과거의 사진 속 공간은 당연히 멈춰 있으며 정지된 상태이다. 카메라는 당시 과거의 공간을 다시 찾아가며 바람에 날리는 나무의 모습이나 변해버린 공간을 포착한다. 현재의 공간은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배치는 표면적으로 단순히 변해버린 공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공간을 마주하며 마치 시간이 압축된 것 처럼 과거를 거슬러 현재의 시간까지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목소리를 연결하는 것 또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는데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당시 시민군 이였던 최진수의 증언이다.
과거 영상에서의 증언과 현재의 증언이 교차되며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한 상황을 진술하며 연결된다. 그것은 영화의 오프닝 부터 쫓던 김군의 행방이며 그가 신군부에 의해 사살당했다는 또 다른 증언이다. 이어지는 다음 장면은 광주 송암동의 현재 모습이다. 김군(최진수의 증언에 따른)의 시간은 죽음으로 종결됐지만 최진수의 시간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공간의 모습이 보여지는 것만으로 시간성이 나타난다. 그리고 카메라는 앞선 주옥의 증언과 배치됐던 공간을 다시 반복한다. 이 반복은 마치 이들의 증언(목소리)을 연결하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어쩌면 마지막 증언인 최진수의 증언만을 확증하는 것이 아닌 다른 증언을 다시 상기시키는 것 같다.
공간의 반복은 물론 영화 말미에 3명의 시민군이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 수미상관처럼 보이는 방식이 있다. 오프닝 장면에서 사진들은 단순히 열거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통해 영사된다. 그리고 이 영사된 사진을 보며 증인들은 과거의 기억을 쫓는다. 이들의 말은 영화의 내러티브에 있어 처음 들려지는 현재의 증언이다. 김군의 얼굴 역시 이 시퀀스에서 뚜렷하게 관객들에게 각인된다. 후반부 김군의 얼굴 또한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영사되며 3명의 시민군이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이 영사되는 사진들은 마치 관객이 사진 속 인물들과 같이 ‘본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서사가 진행되며 투영됐던 사진의 이미지성을 구축해낸다.
뚜렷한 얼굴의 모습으로 끝났던 오프닝 과는 달리 후반부 극장 시퀀스의 마지막은 흐릿하게 보이는 김군의 얼굴이다. 비록 영화는 김군의 신원을 확증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주옥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시민군들의 현재를 마주하며 그들의 시간을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