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컷 젬스>가 달려가는 종착지

by archiveko

사프디 영화의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욕망과 탈피를 이야기했다. <헤븐 노우즈 왓>과 <굿타임>의 주인공들은 뉴욕이라는 공간을 벗어나는 것이 그들의 욕망이었다. <언컷 젬스>의 하워드는 이들과 비슷한 듯 다른 운동성을 보인다. 영화의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광부 이야기에서 오팔의 속, 하워드의 장으로 연결되는 오프닝은 하워드의 욕망을 함축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연결은 영화의 말미에 반복된다. 하지만 이 반복은 앞선 오프닝과 역순의 움직임을 보인다. 하워드의 신체에서 오팔의 속, 끝으로 우주까지 연결되는 엔딩은 <언컷 젬스>의 종착지인가?

하워드의 욕망은 원형의 움직임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베팅은 더 큰 베팅을 낳으며 지속되는 아르노와의 대치도 그의 욕망을 멈추진 못했다. 사프디는 단순히 하워드의 욕망을 베팅으로만 단정 짓진 않았다. 하워드를 둘러싸는 가족과 내연녀와의 관계 역시 하워드를 궁지로 몰아내거나 갈등을 극대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하워드의 욕망을 다시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 오팔과 동일시되던 그의 욕망은 오팔을 얻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오팔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누구인가.


<언컷 젬스>에 등장하는 인물 중 오팔의 역사를 바라본 것은 하워드가 아닌 케빈 가넷이다. 따라서 마지막에 오팔을 손에 쥐며 욕망이 발현된 건 케빈 가넷이다. 다시 말해 하워드의 욕망은 단순히 오팔을 갖는 것이 아닌 그 속을 유영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보아 끝이 없는 종착지가 되는 것이다. 이 점이 <언컷 젬스>가 ‘실현 가능한’ 욕망의 이미지로 차이를 주는 것이다. 하워드의 욕망은 결론적으로 끝이 없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변화한다. 이 또한 케빈 가넷과 다른 지점이다.


먼저 케빈 가넷의 욕망은 단순하다. 오팔을 손에 넣어 득점하는 것, 팀을 우승시키는 것이 그의 욕망이다. 하워드의 욕망은 케빈 가넷과 긴밀하게 연결돼있다. 케빈 가넷의 득점으로 셀틱스가 승리하는 것. 이 욕망이 실현된다면? 하워드와의 채무관계는 끝이 나고 거액을 손에 쥐며 줄리아와의 관계도 개선될 것이고 가족관계도 원만해질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욕망의 끈을 팽팽하게 조이다 잘라버린다. 마치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하워드의 욕망은 끝을 내보이는 듯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종결된다. 관객은 여기서 허무감을 느끼게 된다. 이 점이 <언컷 젬스>가 사유하는 욕망의 차이이다. 케빈 가넷과 하워드의 욕망을 연결 지으면서 하워드 욕망의 움직임을 정지시키고 그의 끝없는 욕망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 케빈 가넷의 종착지는 분명하고 오팔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욕망은 실현됐다. 하워드의 욕망 역시 셀틱스의 우승으로 발현하는 듯해 보이지만 그것은 그의 종착지가 아니다. 오팔의 이미지에서 보이는 끝없는 우주의 공간은 하워드 욕망의 내면을 비추며 끝없음을 이야기한다. 하워드의 종착지는 없다. <언컷 젬스>는 하워드의 움직임을 강조하며 종착지를 찾지만 그의 종착지가 환원될 수 있는 것은 죽음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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