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율로 시작하는 어둠의 오프닝은 자막으로 또렷이 시간과 공간적 배경을 제시한다. ‘1945년 베를린’이라는 텍스트 위로 붕대를 감싼 넬리의 첫 등장은 직접적인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그녀의 얼굴을 상상케 하는 것이다. 관객이 처음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수술로 다른 사람의 얼굴, 곧 ‘새 얼굴’을 가진 이후의 모습이다. 수술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넬리의 과거 모습 역시 영화는 그녀의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 그림자의 형태로 보이는 넬리와 같은 공간에 위치된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이며 넬리의 얼굴을 쫓던 서사는 남자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피닉스>의 서사는 굉장히 단순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얼굴과 사진, 기억의 파편으로 진행되는 서사는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지 그 무엇도 확언되어 지진 않는다. 앞선 넬리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것 같던 남자(조니)는 생각보다 빠르게 넬리와 마주하게 된다. 그녀의 기억과 사진 속에 존재하는 남자는 그녀의 남편인 조니이며 둘은 서로를 마주하지만 조니는 바뀐 그녀의 얼굴로 넬리를 부정한다.
또한 조니는 요하네스라는 이름으로 개명하며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 지점에서 <피닉스>는 세계 대전 이후 극명하게 나뉘는 유대인들의 삶을 보여주기도 한다. 얼굴을 잃은 많은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의 얼굴을 갖으며 새로운 삶을 살려 하지만 넬리는 다르다. 넬리는 과거 본연의 모습을 찾으려 애쓰고 수용소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 한다. 넬리와 조니의 관계와 더불어 레네와의 관계 역시 삶의 방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레네는 수용소에 갇히기 이전 넬리와 알고 있던 사이에서 조니와 공통점이 있지만 이후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 레네는 넬리에게 베를린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새 출발을 제안하며 그녀의 재기를 돕는다. 반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조니는 넬리에게 ‘외형적 재현’을 강요한다. 이 점이 둘의 욕망이 다르게 드러나는 방식이다. 조니는 넬리의 남편이었지만 넬리의 죽음으로 그녀의 상속금을 부여받는 것이 현재 그의 욕망이다. 조니(요하네스)에게 넬리는 죽고 없다. 그는 눈 앞에 실재하는 넬리를 본인이 알던 넬리로 재현하며 욕망을 채우는 것이다. <피닉스>는 재현과 응시를 통해 조니(요하네스)가 도사린 욕망을 보여준다.
<피닉스>가 다루는 욕망이 흥미로운 지점은 넬리를 부정하며 재현하는 것이 조니의 욕망이지만 이는 곧 넬리의 욕망과도 연결된다는 것이다. 조니의 응시는 탈출 후 얼굴이 바뀐 넬리를 이전의 삶으로 돌이키려는 것과 같은데 이러한 재현의 과정에서 결국 넬리의 욕망도 실현되는 것이다. 물론 두 욕망의 본질은 크게 차이가 있지만 이 서사의 끝은 정해져 있다. 넬리는 본래의 모습을 찾겠고, 조니 역시 본인이 재현한 넬리가 ‘실제’ 넬리라는 것을 비로소 바라볼 때 끝이 날 것이다.
조니의 응시가 기억의 파편 속에서 넬리를 조각하는 것이라면 넬리의 응시는 두 시선의 합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두 가지 응시는 진실의 경계에서 대립을 이루게 된다. 수용소 이전 조니는 넬리와 이혼절차를 밟은 상태였고 그녀를 밀고한 것도 조니였다는 사실이다. 사실 관객은 레네와 같이 이 사실을 의심하게 되지만 넬리가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조니의 욕망, 넬리의 재현이 이루어진 직후이다. 그리고 보이는 넬리의 클로즈업 쇼트, 조니와 넬리의 포옹, 지인들과의 만남 모든 것이 누군가에겐 거짓과 진실로 모호해진다. 조니의 응시로 쌓아왔던 넬리가 ‘Speak low’를 부르며 진정으로 본인을 증명하는 엔딩 시퀀스는 이 모호성이 해결되는 순간이다. 이 순간 조니의 응시는 무너진 것이다. 또한 조니의 응시를 무너뜨리는 넬리의 시선은 단순히 조니를 향하는 것이 아닌 죽은 유대인들, 살아있는 다른 이들에게 까지 닿게 되며 끝을 맺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