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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Y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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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파스 Y Jul 28. 2024

12cm 도시미학

작은 단위로 바라보는 도시 단상

세상에서 처음으로 말 위에 올라탄 사람은 누구일까? 그로 인해 우리는 ‘속도’를 얻게 되었고 그 후로 전문화에 걸쳐 속도를 중심으로 도시는 발전하여 왔다. 전쟁 또한 그 형태가 바뀌게 되었는데 속도전에 유리하도록 말을 중심으로 짜인 전술과 군량의 이동 등이 재편성되었다. 식민지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서도 속도는 정말 중요한 고려대상이 되었다. 

산업혁명 이후엔 당연히 자동차를 중심으로 형태를 변화시켰다. 빠른 유통이 곧 도시경쟁력이 되었고 도시는 유통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왔다. 유통을 위한 도로는 사회의 간접자본이 되어 중요한 관리대상이 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현대식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자동차와 사람이 같은 길을 써서 제 속도를 낼 수 없자 자동차가 원활하게 다닐 수 있도록 인도와 차도를 구분 지었고 12cm 위의 길은 인도, 아래는 차도로 오늘 우리가 익히 아는 도로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솔직히 로마제국 시대의 도로와 별반 차이는 없지만 위, 아래 단차를 두어 인도와 차도를 구분 지은 부분이 다르다.)


도시의 거리는 더 빠른 속도를 위해 디자인되어 왔다. 속도를 빨리 낼 수 있는 운송수단에 맞추어 자동차, 대중교통, 자전거, 사람에 순으로 도로의 면적이 배분되었다. 

차도엔 자동차, 대중교통이 다니고 인도엔 사람과 가끔 자전거가 지나다닌다. 높이 12cm로 나누어진 한 도로 위에서.

이번 시간엔 이 12cm로 도시를 논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효율적인 이동의 첫째 조건은 거침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침이 없다는 건 이동을 방해하거나 멈추게 하는 요소가 최소화되어 있다는 상태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길을 걷다가 건너편 인도로 건널 때를 생각해 보자. 내가 서 있는 곳의 단을 내려와 횡단보도를 거쳐 다시 단을 올라야 한다. 길 하나 건너는데 두 번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거쳐야 한다. 

반면 자동차는 신호대기로 멈췄다가 출발해도 같은 레벨의 이동일 뿐이지 오르내리는 경우는 과속방지턱을 제외하고는 없다. 

단을 오르는 수고가 운전대와 액셀레이터를 밟는 수고보다 결코 더 가볍지 않다. 다시 말해 이는 도시의 거리는 사람의 이동에 대한 배려가 없다 걸 의미한다. 

 혹시 12cm 높이의 단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도시의 거대함에 묻힌 이 작은 단위의 높이를 두고 우리는 단을 오르는 사람들의 수고를 생각해야 한다. 특히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이나 지팡이를 짚는 거동이 불편한 분들에겐 결코 작은 단위의 높이가 아니다. 

만약 우리의 도로가 빨리 가고 싶어 하는 자들만 단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거치게 하고 급하지 않은 사람은 같은 레벨이 끊기지 않고 이동하게 하면 어떨까? 단을 오르는 수고는 차량에만 주면 안 될까? 횡단보도를 인도 레벨에 맞추어 배치하고 자동차가 단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지게 하는 것이다. 만화나 영화에 나올법한 감정을 느끼는 자동차가 아닌 이상 힘들어하는 자동차는 한 대도 없을 것이다. 또한 과속방지턱과 같은 역할도 겸해서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없는 경우도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존의 횡단보도에서 단을 오르내리는 수고가 사람에게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횡단보도의 높이를 인도에 맞추고 자동차도로를 변형하는 것이다.



걷고 싶은 거리는 무엇일까? 내 생각엔 적어도 내가 원하는 만큼 걸어 다닐 수 있고 한번 걷기 시작하면 내가 멈추기 전까지 다른 요소에 의해 걸음이 끊기지 않으며 이동하는 중간중간에 쉴 수도 있고 이벤트도 일어나는 살아있는 풍경이 가득한 거리다.

인사동 전통문화거리, 신사동 가로수길, 홍대 앞 거리 그리고 삼청동길 등 친구들과 혹은 혼자서 걷기를 목적으로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늘 특정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친구들과 걷고 싶으면 집 근처를 걷는 것이 아니라 차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한 시간 이상을 이동해서 그 장소에 가야만 비로소 걸을 수 있는 기이한 현상이 생겼다. 거리 자체의 길이는 짧은 구간이지만 위에 언급한 조건들이 충족되어 있기 때문이다. 


파리는 거리의 풍경이 상당히 풍부하다. 출퇴근의 모습만 봐도 자동차를 모는 사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 걷는 사람 등, 상당히 다채롭다. 재밌는 건 내가 이동하는 속도에 따라 내가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 또한 늘 바뀐다. 늘 버스를 타고 지나가던 거리를 자전거나 걸어 다닐 때 눈에 들어오는 거리의 풍경은 같은 장소를 지나가나 싶을 정도로 사뭇 다르다. 모두가 빠른 이동을 위해 빠른 속도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로 하는 속도를 이동수단으로 취하고 그로 인해 거리의 풍경이 바뀌는 것이다.


빠른 속도 하나만을 추구하는 거리의 풍경은 우리 눈에 늘 단조롭다. 거리마다 다양한 속도를 두면 그에 맞춘 풍경 또한 다양해진다. 다양한 속도를 두기 위한 시작으로 먼저 횡단보도 앞 12cm의 단높이를 사람에게서 자동차에 넘겨주면 안 될까? 그 작은 수고를 덜어줄 수 있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우리의 거리 풍경이 전과 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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